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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아름 Sep 02. 2022

다른 플랫폼에서 기차를 갈아탔다

'달려라 지브라' 공연을 성황리(?)에 마치고 갓 작가

8/30 화요일 7시 30분, 안양아트센터 수리홀

‘달려라 지브라’ 공연.


남편과 아이들과 4시에 출발. 대표님, 그리고 연출하시는 분들과 배우분들, 악기연주팀에게 커피라도 사 드리고 싶어서 부랴부랴 출발했다. 그동안 잘 오지도 않던 비가 그날은 하루 종일 내렸는데 나쁘지 않았다. 비 오는 날 공연, 분위기 있잖아!라고 스스로 위로를 해 주었다. 그리고 대표님부터 무대 관련 분들을 처음 만나는 자리라 무척이나 설레고 긴장되는 상태. 줌으로 회의를 한 번, 그리고 전화통화 몇 번, 실물 영접은 처음이었다.


열다섯 잔의 커피를 사들고 분장실로 가, 배우분들에게 인사를 했다.


“누구? 신지…”

“작가입니다.”


'작가'라는 단어를 이름에 붙여 처음으로 말해보았다. 여덟 글자를 말하는데, 너무 떨려서 커피 놓칠 뻔했다. 내가 쓴 대본의 동물들이 실제 눈앞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고, 이것이야말로 현실 같지가 않았다. 내가 대본 속으로 들어간 느낌이랄까.


공연장은 생각보다 더 아늑하고 예뻤다. 정성스럽게 만들어진 소품들을 보니 정말 고생의 손길이 느껴지고, 대본이 뼈대이긴 하나 극이 하나 만들어진다는 것은 한 사람도 허투루 있지 않고 애정을 담아 땀을 흘리며 완성해나가는 과정. 그리하여 아이가 태어나듯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50분의 대본에 날개가 달아지고 살아있는 것으로 변하는 탄생의 순간.

싱크로율 100% 이상의 배우분들의 연기에 애드리브에 아이들 눈높이에 맞추어 바꾸어진 연출님의 능력치에 나는 감동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뒤에서 들릴 때마다 울컥해서 웃어야 할 타이밍에 울 뻔했다.


누구보다 열심히 “힘내라!”와 “달려라, 지브라”를 아이들과 함께 외치면서 무대 위 곰과 호랑이, 얼룩말과 양과 토끼를 응원했다. 사랑스러운 토끼와 양은 다시 만나면 꼭 안아주고 싶을 만큼 내가 상상한 그 귀여움과 발랄함의 캐릭터. 대본보다 더 징징거리는 역할을 잘해 준 호랑이 덕에 아직도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고, 얼룩말의”내가 남을게.” 대사에 친구들과 함께 울던 장면은 생각보다 더 감동이 전해져 왔다. 그리고 곰은 대본 그대로 나의 상상 속 곰처럼 목소리 톤도 춤추는 장면도 완벽하게 대본을 살려주었다.


아이들을 좋아할 만한 대사와 행동들을 더해준 연출 선생님께 많이 배웠다. 어린이 연극은 '고상'해서는 안된다는 진리도 깨달았다. 무대 끝나고 나서 찾아와 “대본이 좋아서, 연극이 좋았다.”라고 말씀해주신 조연출님께 나는 연극이 계속 공연되고 그때마다 커피를 사 들고 달려가겠노라, 말씀드렸다.


대표님께는 "제가 공연 좌석 몽땅 다 사고 싶었는데, 돈이 없어 못했습니다."라고 했더니 "제 맘이 그 마음입니다." 하시며 웃으셨다. 공연을 하나 이렇게 완성하고 사람들 앞에 올리기 위해 얼마나 애를 쓰셨을까, 생각하고 대표님을 보니 옆얼굴이 무척이나 수척해 보이시더라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리 아이들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팩트체크는 무엇보다 아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정확하니까. 아이들의 답을 듣기 전에 마음의 준비를 해야 했다. 혹여 ‘재미가 없다’ 거나 ‘그저 그랬다’라는 말을 듣는 순간 화를 내지 않도록 으른답게 행동할 수 있도록.


“얘들아, 연극 어땠어.”

(침이 꼴깍꼴깍, 남편과 눈 마주침)

“한 번 더 보고 싶어요. 또 안 해요? 재미있었어요!”


진짜?”냐고 묻는 나는 그때서야 참아왔던 긴장의 덩어리들이 스르륵 풀리는 , 어깨에 힘이 빠지고 눈시울은 붉어졌다.


이제 다른 플랫폼으로 이동해 기차를 갈아탔다. 그런데 어디로 가는 기차인지 정확히는 모르는 상황. 일단  달려봐야 알지만,  밖에 보이는 풍경은 마음에 든다.


이 기차를 타고 어디까지 가게 될지, 또 다른 플랫폼을 갈아타게 될지는 모르지만, 그때까지 열심히 쓰고 또 쓰고, 읽고 공부하고 고민하고 묻고 답하고 그렇게 가 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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