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9시, 크림치즈를 잔뜩 바른 플레인 베이글에 커피 한잔으로 시작.
아이들이 돌아올 2시 이전에 전체적으로 한 번 보고 교정을 하는 것이 오늘의 목표다. 읽어도 읽어도 나온다. 어색한 문장, 맞춤법, 꼭지와 맞지 않는 내용들이 윙윙거린다.
점심은 얼큰한 너구리로 가뿐히 때우고 기지개를 켠다. 내 책을 교정 보면서 알았다. 남의 글 교정하는 것이 더 즐겁다는 사실을. 잡지사에서 매달 교정을 밤늦게까지 일주일 정도 봤었는데, '아, 그만 읽고 싶다!' 느낄 때쯤 오타가 "띵!"하고 나왔었다. 그래도 남의 글은 일주일 정도 보면 끝났지만, 내 글은 이미 넉 달째.
읽으면 읽을수록 유치한 듯도 하고, 이래서 책이 되겠나 싶고 누구나 이 정도 국어수업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남편에게 말했더니 "별 걱정!"이라며 나를 차에 싣고 바다로 떠난다.
바다에 가니, 모든 것이 정리된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야 생각은 사라지고 비워진다. 칼국수에 해물파전을 먹으며 아이들과 "개꿀맛"을 외친다. 그리고 갯벌로 나간다. 아이들은 꽃게를 잡고 나는 조개를 캔다.과도한 호미질로 손바닥에 물집이 터질때까지. 까만 모시조개는 해감만 잘하면 해물 스파게티를 만들 때 요긴하게 쓰인다. 파란 양동이 안에 조개들를 보니, 노동으로 얻은 값진 수확물에 흐뭇한 미소.
다음 날 다시 교정 시작, 아침부터 오후까지 6시간. 그리고 늦은 저녁부터 새벽까지 6시간을 읽고 또 읽고 고친다. 제일 열심히 교정한 날이었는데 '무리다.'싶을 정도로 퇴고했던 이유가 있다. 살다 보면 가끔 오는 '지금이야.'라는 순간이 왔기 때문이다. 되든 안되든 부딪치다 보면 어느 날, 갑자기 '그 날'이 오는데 그것이 소리 없이 온 것이었다.
오늘은 글이 읽힌다. 고쳐야 하는 문구가 떠오른다. 이럴땐 멈춰선 안된다. 아이들이 말을 걸지만 진지한 얼굴은 "오늘은, 잠깐만"이라고 양해를 구한다. 그리하여 새벽 2시. 처음부터 끝까지 교정을 다 보고 난 후, 피곤함과 섞인 개운함.
다음날 출판사로 메일로 보내고, 쉰다. 하시다 스가코의 '나답게 살다 나답게 죽고 싶다'를 읽는다. 오싱의 작가인 그녀는 92세로 안락사로 자신의 죽음의 방식을 정하고 싶다는 에세이를 썼다. 툭툭 던지는 문장에서 연륜과 함께 웃음이 터진다. 에세이는 이렇게 써야 하는 거구나, 싶다. 쉽고 재미있고 의미도 있다.
내용도 없이 잘 쓰려고, 있어 보이려고 하는 문장은 아무에게도 감동을 주지 못한다. 올 초, 그렇지 쓰지 말자고 스스로 다짐하고 글쓰기를 시작했는데 어느새 점점 예전 패턴으로 돌아가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가을 날씨가 너무 좋아서 원고를 싸들고 어디론가 가고 싶은데, 밖에 나가면 글이 읽힐지가 의문이다.
만약에, 지금 훌쩍 떠나고 싶다면 어디로? 상상만 해도 기분 좋은 질문.
당신은 지금 어디로 떠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