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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아름 Nov 27. 2023

빈 공간 채우기

마음에 구멍이 났네요.

수업 또 수업, 집에 오면 준비 또 준비. 그리고 밥하기, 청소하기, 정리하기 반복.

그런 1년이었다.


바빠지면 특별한 기쁨과 슬픔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런 나는 일년 동안 서정없이 문학을 가르친 셈이다.


수능만 끝나도 큰 일은 해결되니 진짜 바랄것없이 좋을 줄 알았다. 그런데 갑자기 비어버린 이 시간에서 주인없는 강아지마냥 깨갱이며 그 자리에서 서성이는 나.


며칠은 홍이삭 음악도 듣고, 연인 재방송을 보며 눈물 펑펑 쏟고, 몇 달 쓰지 않은 다이어리를 펼쳐 낙서를 했다. 여유로운 삶은 이런 것이라고 꿈꾸고 기다려왔는데, 상상만큼 기분은 날아가지 않고, 내 속을 야금야금 차지하는 이 허무. 아, 개뿔.


더 큰 일은 이제 이번주만 하면 마침내 끝이 나고야마는 초등학교 독서토론 수업이다. 병원에 다닐 정도로, 밥 먹다 눈물이 날 정도로 스트레스였던 일. 그런데 이 일이 끝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좋든 나쁘든 우릴 채웠던 뭔가가 빠져나간 이후의 허무는 꽤나 무서운 녀석이다. 그러고 보니 어제 설교 중, 이방땅에서 남편과 두 아들이 죽은 나오미의 심정이 좀 이해가 갔다. 그녀는 무엇으로 이 가슴을 채웠을까.


드디어 만난 자유앞에서 어이없게 무기력의 골짜기로 미끄러졌다. 이곳은 생각보다 더 어둡고 침침하다. 그토록 갈구하던 것이었는데, 이런. 문제는 빈 공간이 생각보다 더 크다. 깨작거리는 보통의 취미로는 되질 않을 것 같다.


내게 봄볕같은 따뜻한 12월이 다가오는데, 이 빈 공간 채우기로 고민하다보니 하나도 기쁘지가 않고 서럽다. 예상하지 않은 일들을 가장 싫어하는데 이건 불가항력.


여행이나 휴양은 일시적이란 걸 알고,  찬양가사처럼 성령으로 채우소서, 하며 내내 홀리홀리만 할 자신도 없다. 빈 곳을 채워갈 이번 겨울을 잘 보내고 싶어서 일단 나는 쓴다. 읽는다.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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