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없어도 괜찮은데,
나없이 괜찮아질때까지 있으려고 해.
몇 시간째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중1 아들의 무덤덤한 멘트. 진심이 느껴져서 더 머릿속이 하얘진다.
#1 4시간 전, 거실
나: 아들, 아빠가 엄마보고 대학원 가서 공부를 해 보라고 하는데. (아들이 당연히 붙잡겠지라고, 엄마가 저녁에 있는 게 좋다고 할 멘트를 기대하며) 그러면 평일 저녁에 엄마가 없는 날이 있을꺼야. 6-11시 정도?어때?
아들: (핸드폰을 보며) 난 상관없는데. 엄마 없어도 괜찮은데.
나:(식탁 모서리를 한 손으로 잡으며 격앙된 목소리로) 뭐라고?
아들, 엄마쪽을 흘깃 보고 다시 핸드폰.
#2 2시간 전, 돈가스 집
나:(마음을 가다듬고) 근데 왜 엄마 없어도 괜찮다는거야?(굉장히 다정하게) 엄마가 있어야 저녁도 차려주고 하지.
아들: (돈가스를 입에 넣으며) 아빠 있잖아. 그리고 엄마 없으면 잔소리도 없고. 엄마는 스펙쌓아서 좋은 거 아냐?
나, 돈가스를 씹는건지 샐러드를 씹는건지 도통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돈가스 반을 남긴다. 아들은 돈가스 한접시를 다 비운다.
#3 치과
치과 의자에 앉아 윙윙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나: (독백) 분명히 초등학교 때는 엄마 일가지 말라고 그렇게 애원했었는데, 혼자 두고 일을 갔었어. 그 조그만 얘가 전화와서 무섭다고, 엄마 언제 오냐고 하면 책 읽으면서 기다리라는 아무 도움 안되는 말만 했어. 아, 이제 돌이킬수 없게 다 지나가버렸네. 어긋난 사랑마냥.
......
아들과 대화하다 지금은 공부할때가 아니란 걸 확실히 알았다. 공부에 대한 의지도 별로 없었지만, 애절한 둘째와 무덤덤한 첫째를 보며 아직은 저녁부터 밤까진 별 도움이 안되도 곁에 있는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둘 다 나 없이도 괜찮을 아무렇지도 않을 시간이 곧 오겠다,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