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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아름 Sep 26. 2023

신은 왜 인간에게 음악을 주었나

플랫폼에서 천사를 만나다

3-3 인천으로 가는 플랫폼.

흰 모자를 눌러 쓴 그의 옆에는 검정 큰 캐리어가 있다. 낡고 닳은 연주책. 기타 튜닝하는 소리. 그리고 연주가 시작됐다.


아무도 그를 의식하지 않는다.

그는 투명한 천사다.


비가 내리고, 습기가 기타음을 누른다. 눈을 감으면 스페인 세비야 거리에 서 있는 듯 기타의 여리고 센 음들은 적당한 강약을 조절하고 세밀한 음악들이 공중으로 흩어졌다 바닥으로 떨어지고 상공으로 치고 올라가기도 한다.


우리는 뒤돌아 있지만, 서로를 알고 있고 플랫폼을 채워가는 기타소리는 못내 서글프다. 이 땅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 같았지만, 끝내 바닥을 뚫고 나온 들꽃처럼. 나는 기차를 두 대나 보내고 다시 인천행 5전역. 나는 이제 10분동안 그의 음악을 들을 수 있다.


갑자기 그의 곁에 앉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축축하고 따뜻할 것 같은 그의 옆자리. 그리고 철로의 쇠덩이들을 두드리는 것 같은 바깥의 소리.  


화물열차가 지나가고 다시 시작되는 소리.

신은 왜 인간에게 음악을 주었나.

이토록 지독하고 허무하고  무력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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