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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아름 Jul 20. 2023

조개잡이로서 한 마디 하자면

나는 표류 중, 이 도시에서.

주말이면 으레 바다로 나간다. 조개를 캐기 위해서다. 팔이 아파 정형외과에 다녀 온 다음 날도 손목아대를 하고 갯벌에 나갔다.


조개캐기에는 이상한 열망과 욕망이 뒤섞여있다. 무인도에 남겨져 식량을 구하는 표류인같은 본능에 이끌린 행동처럼. 미친듯 호미질을 하고 수확물인 조개들을 바구니 가득 담을때 쌓였던 내면의 찌꺼기들이 서서히 소멸된다.


팔은 빠질 것 같고, 허리가 아프고, 햇빛에 목덜미는 뻘겋게 익어가는데 한 번의 호미질로 두 개의 조개가 나왔을 때, 예상외 진짜 큰 조개를 캐 하늘로 치켜들 때의 기분은, 그 환희와 기쁨, 쾌감은 깊은 숨을 참다 박차고 나와 호흡하는 고래와 비슷할까.

한 가득 동죽을 캐 집으로 돌아와 아이스팩을 갈아주며 해감을 했다. 여러 공부와 경험을 통해 해감에 성공했었는데,


< 가장 좋은 방법은>

1. 날씨가 더운 경우, 아이스팩을 교체하며 상태를 본다.(냉장고에 두어도 됨)

2. 바닷물을 큰 페트병에 담아와 하루 있다가 바꿔준다.

3. 물의 색이 흐리거나 조개가 입을 희미하게 벌리면 바로 씻어 소분해 냉동한다.

4. 보통, 만 이틀이면 해감 완료


그런데 이번에 2번, 3번을 하지 못했다. 물이 흐려졌는데 해감을 위해 좀 더 두었더니 일어난 대참사. 우린 왜 그랬을까. 가여운 조개들이 반은 죽었다. 남편과 나는 참 침통해했다. 죽음의 비린내는 하루내내 문을 열어두어도 빠지지 않을 만큼 강한 흔적. 우리에게 왜 그랬냐는 바다생물들의 처절한 향변.

그날 저녁 베란다에서 만찬. 목살에 새우와 조개까지 구웠다. 비가 와서 조금은 덜 덥게 바깥의 여름을 즐긴다. 해가 지고 모기에 벌레들에  아이들은 기겁해 달아나고 남편과 나만 남았다. 아무말도 없이 어둔 밤에 앉아 과거도 현재도 아닌 이야기를 나눈다. 소설같은 미래가 넘실거렸다가 다가오지도 않은 피곤한 날들을 떠올려 목마른 풀처럼 사그라져버린다.


분명한 건, 끝까지 살아남은 조개들은 맛있었다는 것. 남은 여생을 좀 더 즐겁고 가치있게 우리가 살아내고 싶다는 것. 우리 아이들이 행복한 사람으로 자라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


조개구이를 먹으며 어울릴 듯,

아닌 듯 꽤나 심오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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