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니를 뽑고 삼시세끼를 차리면서
사랑니를 뽑았다. 일제강점기 고문이 이랬을까, 싶을 정도로 강렬했다. 간호사가 내 얼굴을 위에서 눌렀다.간드러지는 목소리로 ‘얼굴 좀 잡을게요.’라고 말했다. 나도 모르게 주기도문을 외웠다. 잇몸 속 생이빨을 밖으로 꺼내는 일은 치료를 넘어서는 생지옥의 작업.
하얗고 고운 뽑힌 이가 놓여 있었다. 가여울 정도로 내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집에 가져갈까, 잠깐 생각했다.
세번째 뽑는 사랑니였음에도 나는 치과를 나오면서 다신 이 문으로 들어가지 않으리라, 다짐이 들 정도로 유난히 힘들었다. 눈은 하루종일 내리고 마음은 헛헛했다.
하지만 사랑니보다 더한 일들이 있다. 미리 국이라도 끓여놓고 갔어야 했는데, 집에 오니 배고픈 아이들이 올망졸망 나만 본다. 급하게 떡국을 끓였는데 간을 볼 수 없어 그냥 상에 올렸다. 방학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일하는 것보다 집에서 삼시세끼의 임무를 수행하는 게 더 어렵다.
예전엔 꽤 잘 맞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는데, 아이들이 자라면서 삐걱대는 일들이 더 많아진다. 마냥 귀엽기만 했던 두 아이는 슬슬 엄마 아빠 없는 걸 더 좋아하고, 때론 편 먹고 날 속이기도 하며 단결한다.
이를 뽑은 충격과 고통때문인지 오늘은 아이들이 더 말을 듣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머피의 법칙처럼 야근이라는 남편의 카톡. 화를 낼 기력이 없어 둘이서 알아서 해결책을 찾아보라고 했는데 몇 시간 후, 또 같은 일은 반복된다.
입 속에 흐르는 피 사이로 커피를 넘긴다. 괜찮을 수 있는, 다른 것은 생각나지 않았다. 기나 긴 겨울이 지난다.
지혜롭지 못한 하루였다. 아이들은 별 잘못이 없다는 생각이 들자, 밀려오는 왠지 모를 한심함, 어른이나 엄마로서 한참 모자람, 마음은 어려지고 몸은 늙어가는 것 같은 두려움같은 것들이 슬픔같이 다가왔다.
다시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슬픔의 근원은 끝내 찾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