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딘 라바키, <가버나움> 2019
가버나움. 지금 중동의 레바논.
성경 속 솔로몬 시대 백향목이 푸르르고 페니키아 상단의 무역으로 부유하던 곳. 하지만 지금 수많은 서류 없는 자, 곧 출생신고도 되지 않아 공식적으로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또는 체류증 없어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불법체류자들이 벌레취급을 받으며 살아가는 땅.
"자인"은 살인을 했고, 부모를 고소했다.
고소 이유는 "날 태어나게 해서".
날 지옥 같은 세상에 태어나게 하고 살인자로 만든, 11살 여동생 사하르를 돈 받고 시집보내 죽게 한, 나와 똑같은 서류 없는 부모를 고소하기 위해서. 하지만 그는 법정에서 말한다.
"이게 전부 다 우리 부부의 잘못인 겁니까?
저도 이렇게 나서 자랐을 뿐이에요...
여기서 나가면 다를 저한테 침을 뱉을 겁니다.
.....
남자라면 자식이 있어야 하고, 자식이 있으면 든든하다고 하던데
전 등골만 휘고 마음고생만 했습니다.
가정을 꾸린 게 후회스럽습니다."
자인은 집을 뛰쳐나와 티 게스트라는 가명을 쓰는 케냐 미혼모 불법체류자 라헬을 만난다. 자인은 라헬의 아이를 돌봐주고 라헬은 자인에게 은신처를 제공해준다. 둘은 서로를 점점 신뢰하게 되고 같이 살아갈 수 있는 꿈을, 서류 없는 자의 삶을 청산하고 유럽으로 넘어가 합법 체류자가 되는 꿈을 꾼다. 길거리에서 자인이 만난 또래 여자가 꿈꾸는 합법체류의 삶은 자신 만의 공간을 갖는 것.
"이 구역은 다 너 가져. 난 떠날 거야."
"어디로 갈 건데?"
"스웨덴. 거기 시리아인 동네가 있대. 왜 왔냐고도 안 하고, 귀찮게 구는 사람도 없어. 내 방도 있어서 들어올 땐 노크해야 해."
자인은 라헬이 1천 달러를 집에 숨겨둔 것을 알고도 훔치지 않는다. 라헬이 (불법체류자로 잡혀) 사라진 후에도 아이 요나스를 돌본다. 마치 여동생 사하르는 무력하게 보냈지만 이 아이는 보내지 않겠다는 것처럼. 하지만 결국 자인도 어쩔 수 없는 상황과 스웨덴 이민의 희망으로 요나스를 불법이민 브로커 아스프로에게 넘긴다. 마치 그의 부모가 그렇게 했듯이.
아스프로는 신분증 위조로 라헬에게 1천5백 달러를 요구하며 마치 구세주인양 말한다.
"난 널 도우려는 거야.
가명도 내가 지어줬잖아."
라헬은 그를 증오한다. 하지만 그가 절실히 필요하다. 레바논 정부는 이들의 불법을 알고 있지만 일부러 잡지는 않는다. 이 불법 브로커의 도움으로 레바논 사람들은 터키, 유럽으로 이주를 하고, 이들이 자국에 송금해 주는 금액은 연 GDP의 25.1%를 차지한다.(레바논 외채 상환 지출액은 GDP의 16.1%이다. 사스키아 사센, "세계 경제와 도시", 푸른길, 2016, p345)
자인은 감옥에서 (집에서 볼 수 없었던) TV를 본다. 그리고 한 프로를 통해 부모를 고소하고, 세상을 고소하고, 신을 고발한다.
"지옥 같은 삶이에요. 통닭처럼 불 속에서 구워지고 있어요...
자라서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존중받고 사랑받고 싶었어요.
.....
하지만 신은 그걸 바라지 않아요.
우리가 바닥에서 짓밟히길 바라죠!"
이 영화는 레바논의 한 아이 자인에 대한 이야기인가?
레바논의 현실을 고발하는 영화인가?
"신은... 우리가 바닥에서 짓밟히길 바라죠."라는 말에서 당신은 자유로울 수 있는가?
2018년 500여 명의 예멘 난민이 제주도로 입국해 난민신청을 했지만, 우리는 그들을 거부했다. 누군가는 한국에 태어나고, 누군가는 내전 속의 레바논에, 누군가는 예멘에 태어난다.
어떤 자격으로 우리는 한국에 태어난 것인가?
신 앞에서 우린 그들보다 어떤 우월감을 가진 것인가?
지금은 이주의 시대이다. (스티븐 카슬 , 이주의 시대, 참조) 앞으로 원하던 원하지 않든 더 많은 이민자들이 한국에 올 것이다. 중국인, 베트남인 뿐 아니라 많은 중동 및 아프리카 무슬림들도 들어올 것이다.
우리는 그들을 동등한 인간으로 받아줘야 하는가, 아니면 두려움으로 막아내야 하는가?
코로나19 전파가 한참인 상황에서 중앙일보 3월 13일 자 신문에 한국의 간병인의 대부분이 중국 교포라고 지적한다. 이어서 "코로나 사태는 한국의 인간 안보에 여러 숙제를 던져주고 있다."라는 말로 마치고 있다. "인간 안보"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뜻하는가? 그들이 외계인이라도 된단 말인가?(한국 코로나 사태에서 중국 조선족이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는 증거는 없다)
재판관은 자인에게 마지막으로 부모에게 할 말이 있는지 묻는다.
"애를 그만 낳게 해 주세요!"
"더 낳지 않을 것 같네요."
"배 속에 있는 얘는요?"
"저 얘는 태어날 거잖아요?"
한나 아렌트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근원적인 힘은 '다음 세대의 탄생'에 있다고 했다.
우리는 '다음 세대의 탄생'을 희망으로 만들어 갈 준비가 되어 있는가?
-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