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의미
어느 초여름 아침에 강아지와 산책을 하다가 깨밭에서 풀을 뽑고 계신 이모할머니를 봤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하고 힘차게 인사를 하니, "너는 참 멋있다"라고 하시며 내가 쓰고 있는 모자를 칭찬하신다. 그러면서 이제는 풀하고 싸우는 것도 지겹다고 하신다.
"풀하고 싸우는 게 아니라 함께하는 거죠!"라는 나에게 "함께하기는 뭘 함께하는 거냐"고 하신다.
"이제 깨농사 안 지으시면 안 돼요?" 라고 묻자, 둘째 딸 참기름 만들어주려는 거라고 하신다. 문득 "풀하고 함께하는 거죠!"라며 철모르는 소리를 한 내가 부끄러워진다.
여기 이사와서 산책할 때마다 늘 지나치게 되는 꽤 좋은 벽돌집이 있는데, 이제는 아무도 살지 않아 마당에 풀이 무성하다. 여기 사시던 할머니는 자식들을 다 키워놓고, 아들이 사법고시를 합격했는데도 계속 쉬지않고 깻잎농사를 짓다가 어느 날 쓰러져서 돌아가셨다고 한다.
우리 뒷집 아주머니도 어깨, 발, 허리 다 수술해서 아프신데도 매일 아침 저녁으로 부지런히 농사를 지으신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일 쉬엄쉬엄 하세요! 아프신데 좀 그만 하시면 안 돼요?" 하고 가볍게 말하지만, 아주머니에게 농사가 어떤 의미인지 그 무게를 깊게 생각해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내가 하는 일만 일인 것처럼 생각하고 살아왔던 것 같아 너무 부끄러운 아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