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약혼중지’

그 시대의 테토녀 할머니

by 당근

우리 할머니는 1933년생이시다. 할머니가 어릴 적, 친구들은 다 열 여덟 살 이전에 시집을 갔다고 한다. 할머니는 열 아홉 혹은 스무 살이었던 해, 둘째 오빠가 전도사님으로 계시던 교회의 한 장로님 아들과 선을 보게 됐다. 상대는 약사였다고 하는데, 할머니보다 두 살이 많고 키는 할머니와 비슷했다고 한다. 그렇게 약혼 날짜를 잡아놓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할머니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고 한다. 시누이가 다섯이고 아들이 하나인데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었다고도 하고, 약혼 상대가 뭔가 믿음직스럽지 않았다고도 한다.


그래서... 우리 할머니는 10km 정도 되는 거리의 우체국으로 혼자 걸어가서 전보를 부쳤다. 전보의 내용은 '약혼중지.'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은 독단적 행동이었다. 지금도 그 우체국이 있는 동네로 가끔 운전해서 할머니랑 같이 갈 때가 있다. 운전해서도 15분은 걸리는 거리다. 나는 “이 거리를 어떻게 걸어서 가실 생각을 하셨어요? 진짜 대단햐..." 하면서 다시금 할머니의 결단력/고집/자율성에 감탄하곤 한다. 그러면 할머니는 약혼중지 썰을 다시 풀어주신다. 이 얘기는 들을 때마다 이입하게 되는 관점이 달라지는데, 가장 최근엔 약혼중지를 통보받은 선 상대가 얼마나 상처와 충격을 받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또 이입되는 사람은 할머니의 둘째 오빠다. 둘째 오빠는 할머니를 위해 도배지까지 사놓았는데, 할머니가 약혼중지 전보를 부치는 바람에 앓아누우셨다고 한다. 상대가 교회의 장로님 아들이었으니 얼마나 면목도 없고 골치가 아프셨을까. 할머니는 그때도 싫은 건 절대로 할 수 없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 할머니가 선택한 사람은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보다 아홉 살 많은, 오빠의 친구였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한 동네에서 원래도 알고 지내던 사이였고, 할아버지의 부모님도 할머니를 오랫동안 며느리 삼고 싶어했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만주로 가 일을 해서 돈을 벌어 아버지 백내장 수술까지 시켜드렸고, 할머니의 아버지가 625 전쟁 중 돌아가셨을 때 시신을 수습한 사람이기도 했다. 할머니 눈에는 이런 할아버지가 얼마나 믿음직스럽고 어른스러워 보였을까.


그렇게 약혼을 하고도 돈이 없어 방 두 개가 있는 집을 못 얻어,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3년이 지나서야 결혼을 할 수 있었다. 할아버지 나이 서른 셋, 할머니 스물 넷의 나이였다. 약혼중지를 거쳐 선택한 사람이어서일까, 할머니는 한 번도 결혼을 후회한 적이 없다고 하신다. 그리고 할머니 때문일까, 우리 가족엔 테토녀의 피가 흐른다...


할아버지가 생전에 입으시던 셔츠를 아직도 입으시는 할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