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운 사랑의 맛
어느 날 아침 마당에 나가보니 도라지가 대야 한가득 있었다. 할머니의 서프라이즈 선물이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비염이 있는데, 할아버지도 비염이 있으셔서 할머니가 배즙을 해주시면서 나에게도 보내주시곤 했다. 그게 내가 중학생 때였는데, 그렇게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나는 배즙을 하루 두 포씩 먹고 비염이 몰라보게 좋아졌다. 할머니에게 그 때 배즙 먹고 기관지가 많이 좋아졌다고 했었는데, 할머니가 그걸 기억해두시고는 마을에서 도라지 키우는 분에게 도라지를 사오신 것이다.
아침부터 도라지 씻기 노동이 시작됐다. 원래 나는 도라지 양에 압도되어 일주일에 걸쳐 도라지를 씻을 계획이었지만, 부지런한 뒷집 아주머니는 그런 나를 두고보지 않으셨다. 시범을 보이시는 뒷집 아주머니를 보며 나도 게으른 몸을 움직였다. 커다란 구멍 바구니에 담긴 도라지를 손으로 눌러가며 빨래하듯이 박박 씻고 또 씻다보면 어느새 도라지 씻은 물이 맑아진다.
이왕 만드는 거 생강 넣어서 만들라는 뒷집 아주머니 말씀에 나는 하나로마트에서 생강도 싹쓰리해왔다. 마침 집에 배가 있어서 씨를 대충 발라내고 크게 숭덩숭덩 잘라서 잘 씻은 도라지가 담긴 바구니에 쏟아부었다. 할머니가 예전에 다니셨던 약방이 있다는데, 거긴 문도 닫고 전화도 안 받아서 뒷집 아주머니께서 추천해주신 '털보네'로 향했다. 시간은 벌써 늦은 오후. 털보네는 주인 아저씨께서 털이 많아서 그렇게 부르는 거라고 하는데, 지금은 아저씨가 돌아가시고 주인 아주머니 혼자서 일하고 계셨다. 주인 아주머니께서는 배가 너무 부족하다며 배를 더 사오라고 하셨다. 그렇게 2차 하나로마트행...
다음 날, 배즙이 완성됐다는 전화를 받았다. 기대되는 마음으로 털보네로 향했다. 폭이 좁고 긴 즙 상자 두 개 가득 배즙이 나왔다.
집에 도착해 배도라지즙을 먹었는데... 악. 너무 맵다. 도라지나 생강이 너무 많이 들어간 것 같다. 이전에 먹었던 배즙은 주로 배의 시원하고 단맛이 났다면 이건 너무 알싸하게 매웠다.... 으아.... 너무 아쉬웠다.
할머니는 이제 내가 기침할 때마다 배(도라지생강)즙을 먹으라고 말씀하신다. 이제는 기침을 할 때마다 눈치가 보인다. 너무 매워서 먹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주무시다가도 내가 기침하는 소리가 들리면 잠꼬대인지 알 수 없는 소리로 말씀하신다. “당근아!! 도라지 먹어!!" 아직도 배즙은 잔뜩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