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은 정말 따뜻해진 걸까
우리 할머니는 요즘의 겨울은 많이 따뜻해진 거라고 하신다. 옛날에는 문고리를 손으로 잡으면 손이 딱딱 달라붙고, 냇가에서 빨래를 하면 손이 얼어서 피가 "쩔쩔" 날 정도로 추웠다고 한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안 추운 거라고 하시는 할머니. 겨울은 정말 따뜻해진 걸까?
할머니는 세 살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아파서 돌아가셨다는데, 1930년대만 해도 많이 아프면 손 써볼 새 없이 돌아가시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엔 열 살 차이 나는 첫째 언니가 세 명의 남동생과 막냇동생인 우리 할머니를 엄마처럼 키웠다. 아직 아기였던 할머니를 업어 키우고, 시집을 갈 때도 할머니를 데리고 가려고 했다고, 아직도 할머니는 돌아가신 언니 얘기를 하신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니에게는 새엄마가 생겼다. 할머니는 친엄마가 기억나지 않기 때문에 그리운 것도 없다고 하지만, 알게 모르게 서러움은 있었던 것 같다. 할머니가 국민학교를 다니던 어느 날 선생님이 집에 오셨는데, 걸레로 마루를 닦고 있던 할머니는 할머니부터 친딸이 아니라고 얘기하는 새엄마의 말을 듣게 되었다. 원래부터 새엄마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 말이 굉장히 서러우셨다고 한다. 할머니는 그 얘기를 듣고 친엄마가 묻혀있는 산을 바라봤다.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친엄마를 그리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그 산을 바라보는 것 아니었을까? 새엄마는 여동생 셋, 남동생 하나를 낳았다. 엄마 같았던 언니는 시집을 갔고, 이제 할머니가 큰딸이 되어 밥도 짓고, 냇가에서 남동생의 똥기저귀도 빨았다.
할머니가 국민학생일 때는 1940년대이니까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일으켜 특히 수탈이 많던 시기였다. 6학년 1학기에는 수업을 듣는 대신 산으로 송진을 구하러 다녔다. 6학년 여름에는 우리나라가 해방되어, 할머니는 1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기간 동안 한글을 배울 수 있었다. 공부를 잘했던 할머니는 군산여중에 합격했는데, 교복까지 맞춰놓고 결국 중학교를 가지 못했다. 할머니의 바로 위 오빠가 군산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 아버지는 오빠와 할머니 둘 다 학교를 보낼 형편이 되지 않는다며 나중에 근처에 있는 중학교를 보내주겠다고 하셨다.
하지만 그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다. 교회 전도사였던 아버지는 6.25 전쟁 중 예배 금지령이 내려졌을 때 교회 밖에서 기도를 드리다가 공산당에게 발각되어 연행되었고, 유치장에 갇혀있다가 북한군에게 학살당했다. 사람들을 일렬로 세워놓고 뒤에 구덩이를 파서 그대로 총을 쏴서 죽였다고 한다. 그때가 할머니 나이 18살이었고, 돌아가신 아버지의 시신을 수습한 오빠 친구 중 한 사람이 몇 년 뒤 할머니의 남편, 그러니까 우리 할아버지가 되었다. 할머니 대신 고등학교를 다닌, 가장 똑똑했다던 그 오빠는 6.25 전쟁 중에 서울에 있다가 행방불명되었다.
나였으면 몇 번이고 부모를, 세상을, 그리고 하나님을 원망했을 것 같은데, 할머니는 그런 말씀은 절대 하지 않으신다.
"왜 할머니만 학교를 안 보내냐고 아버지한테 따지지는 않았어요?"
라며 열을 올리는 나에게 할머니는
"아버지도 어쩔 수 없으니까 그렇지. 돈이 없는데 그럼 어떡하냐?"
하고 말씀하신다.
어린 날 할머니의 겨울은 그리움, 서러움, 두려움으로 유달리 더 추웠을 것 같다. 할머니의 겨울이 따뜻해져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