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잔소리에 대처하는 불효녀의 자세

할머니의 재채기

by 당근

"너도 얼른 좋은 사람 만나서 시집가야지."


우리 할머니가 일주일에 적어도 한 번은 하시는 말씀이다. 할머니의 최대 관심사는 결혼. 내가 친구와 약속이 있다고 하면 할머니는 어김없이 "그 친구는 결혼했냐?"고 물어보신다. 티비에 유명인, 정치인이 나올 때에도 할머니의 관심사는 오로지 결혼이다. "저 사람은 결혼했냐?"


할머니와 함께 살기 시작한 초반엔 무조건 하루에 한 번 이상은 결혼 이야기를 하셨다. 할머니의 결혼 잔소리에는 다양한 배리에이션이 있는데.. "결혼을 해서 빨리 애 낳아야지. "요새 사람들이 애를 안 낳아서 큰일이야. 너도 빨리 결혼해야지" "직장에 남자 없냐?" 등등이다. 사실 나는 할머니의 결혼+출산 잔소리에 거의 타격을 받지 않는다. 90대 할머니와 30대 손녀라... 결혼 잔소리가 너무나 납득되는 조합 아닌가? 불손한 손녀인 나는 오히려 할머니의 탓을 한다. "할머니 기도가 부족한 거 아니예요?“


나는 괜찮지만 할머니의 결혼 잔소리는 가깝지 않은 사람에게도 이어져서 문제다. 한 번은 먼 친척에게 결혼 잔소리를 했다가 사달이 난 적도 있다. 위 사건을 계기로 자녀들의 할머니 입단속은 더 심해졌다. "어머니, 그런 얘기하면 사람들이 싫어해. 어머니도 참...", “할머니가 그런다고 결혼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왜 그런 말을 해요!" 만나는 사람마다 할머니에게 싫은 소리를 하니 할머니는 “알겠어 알겠어 알겠어”라며 이제 아무 소리도 안 하겠다고 하신다.


아무 소리도 안 하시겠다던 할머니의 다짐이 무색하게, 저녁 식사로 된장찌개를 끓이고 있는 내게 할머니는 말씀하신다. “너도 이제 시집가야지."


아... 할머니에게 결혼 잔소리는 마치 무릎반사, 재채기와도 같은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번 설에는 할머니가 손주들에게 결혼 잔소리를 하지 않으셨다. 재채기를 참은 할머니. 대단해.


할머니께 어떤 내용으로 기도하시냐고 여쭤보니 "맡은 바 책임을 다하게 해달라"고 하신다고 한다. 아무래도 할머니 기도 내용이 잘못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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