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천사 이야기
원래의 내 기분보다 한 단계 낮은 기분이 꾸준히 유지되고 있던 어느 토요일 낮, 나는 카페에서 K언니와 공부를 하고 있었다. 우린 넓은 책상에 앉아있었는데, 친구들과 함께 온 대학생쯤 되어 보이는 아시안 소녀가 나에게 옆에 앉아도 되겠냐고 물어봤다. 그렇게 시작된 대화는 5분 정도 남짓 이어졌고, 우리는 번호를 주고받았다. 그녀의 이름은 티나. 우리는 언제 한 번 밥 한 번 같이 먹자는 굉장히 한국적인 인사와 함께 헤어졌다.
우리는 실제로 밥 약속을 잡았다! 티나는 굉장히 바쁜 사람이어서 일정을 맞추려면 한 달 뒤에나 밥을 먹을 수 있었다. 당시 나는 티칭을 한 과목 하고 있었기 때문에 수업이 끝나고 우리가 만나기로 한 학생회관으로 향했다. 내가 가르치는 수업이 있던 건물에서 학생회관까지는 걸어서 10분 정도 되는 거리였는데, 밝은 태양 아래에서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하겠고 바닥에서 누가 나를 잡아당기는 것처럼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고 학생회관으로 걸어가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 나는 그게 졸려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남미음식을 먹었다. 리모델링한 지 얼마 안 된 학생회관은 점심시간을 맞아 학생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우리는 겨우 높은 테이블에 빈자리를 찾아 옆에 나란히 앉아 밥을 먹었다. 주변은 어수선하고 자리는 불편하고, 첫 만남에 그리 좋은 환경은 아니었지만 우리는 개의치 않고 조잘조잘 이야기를 나눴다.
티나는 정말 사랑스러운 사람이었다. 티나는 대만 출신으로 어릴 때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며 자신의 가정사에 대해서도 짧게 얘기해주었다. 학부를 졸업한 지 얼마 안 됐고, 지금은 학교에 소속돼 일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티나에 대한 이야기를 모두 듣고 나니 이 사랑스럽고 기특한 티나가 내 동생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밥을 다 먹고 자리를 뜨기 전 티나가 나에게 너의 "hope"가 뭐냐고 물었다. 살면서 처음 받아보는 질문이었다. 나는 별다른 생각 없이 "원래 내 기분 상태로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평상시 내 기분이 이 정도였다면 지금은 한 단계 아래에 있다고 손으로 그래프를 그리면서. 그리고 상담센터를 가야 할 것 같은데 계속 가지 못하고 있다고 얘기했다.
내 얘기를 들은 티나는 아무렇지 않게 "지금 가자!"며 나를 이끌었다. 상담센터는 내가 수업하는 곳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였음에도, 나는 그동안 내 발을 움직여 그곳에 가질 못하고 있었다(나중에 알고보니 이것도 우울의 한 증상이었다). 그렇게 티나는 학생회관에서 상담센터까지의 약 5 거리를 나와 같이 걸어서 가주었다. 그리고 내가 상담센터에 등록하는 과정을 지켜봐 줬다. 그리고 짧게 기도를 해줬다.
나는 컴퓨터로 설문지를 작성하고 곧바로 한 상담사의 방으로 안내됐다. 정식으로 상담을 시작하기 전 스크리닝 프로세스 같은 것이었는데, 어떻게 오게 됐느냐는 질문에 내 상태를 설명하면서 나는 눈물이 터져버렸다. 그렇게 첫 상담이 끝날 때까지 계속 울면서 이야기를 했다. 나도 내가 왜 그러는지 모르겠고 우는 내가 너무 싫었다. 상담을 하면서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계속 얘기했던 기억이 난다. 아무튼 그렇게 나는 무사히(?) 스크리닝을 통과했다. 나는 줌으로 진행되는 워크샵에 배정됐고(워크샵 제목은 "Getting Unstuck." 알고 보니 우울증에 걸린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워크샵이었다), 내 인생 최고의 상담사 제시카 선생님과 매칭됐다.
이 얘기를 나중에 엄마에게 했더니 엄마는 티나가 천사였나 보라고 했다. 그 말이 정말 맞는 것 같았다. 그날 이후 티나에게 문자로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가끔씩 안부를 주고받긴 했지만, 우린 둘이 따로 만나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더 내가 경험한 일이 실제 있었던 일인지, 티나는 실존하는 인물은 맞는지 신비로운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 글을 작성할 때 티나 이름도 기억이 안 나서 옛날 폰을 켜서 연락처를 확인해봐야 했다. 검색해 보니 티나는 아직도 그 학교에서 잘 일을 하고 있다. 티나는 실존인물이 맞았다...)
그 밖에도 미국에 있는 5년 동안 이런 우연히 만난 사람들과의 에피소드가 많다. 한번은 12월 31일인지 크리스마스인지에 큰 프랜차이즈 베이커리 카페 파네라에서 혼자 공부하고 있는데 맞은편에 앉아있던 흑인 할머니가 나를 보며 입모양으로 "Are you okay?"라고 하시는 것이다. "Yes...?"라고 하면서도 왜 저런 걸 물어보는 거지..? 내가 안 괜찮아 보이나..? 하고 잠시 뇌가 정지됐다. 할머니는 뭐 먹고 싶은 거 없냐고 물어보셨다. 괜찮다고 거절하는 나에게도 재차 물어보신 걸 보면 진짜 사주실 기세였다. 아들이랑 손자인지 손녀인지랑 같이 오셨는데, 내가 이런 휴일에 혼자 있는 게 안쓰러워 보였는지 가족들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나에게 말을 거신 거였다. 나는 내 가족들은 다 멀리 있다고, 그리고 괜히 나 Okay라는 걸 증명하려는 듯이 원래 교회 가야 하는데 안 갔다고 얘기를 했다(아니면 교회를 갔다 왔다고 했는지 기억이 잘 안 난다). 그러자 할머니는 자신이 목사님이었고 지금은 은퇴를 했다고 하셨다. 그리고 곧 자리로 돌아온 가족들과 함께 나에게 God bless you를 외치며 나가셨다. 그리고 끝까지 나에게 뭐 먹고 싶은 거 없냐고 물어보셨다(그냥 맛있는 거 사달라고 할걸...).
티나가 나를 상담센터에 데려다준 그 일 이후로 오래 알고 지낸 사람보다 때론 그냥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 내 인생에 엄청난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는 걸 배웠다. 나도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 알아챌 수 있는 기민함과 기회를 놓치지 않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
대부분의 학교에 상담센터가 있고, 학생들은 상담센터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힘들 땐 상담센터를 가보길 초초 강추하는 바입니다. 물론 상담 경험은 상담사가 누구냐에 따라 매우 달라질 수 있지만, 자기와 맞는 상담사로 바꾸는 걸 요청할 수도 있다고 하니 한 번의 경험이 안 좋았다고 포기하지 말고 꼭 상담의 이로움을 누리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