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은 리얼이다
'번아웃? 그런 건 그냥 나약한 사람들의 핑계 아닌가...?' 지난 날 나의 어리석은 생각이다.
유학 이전의 나는 내가 기울인 노력에 대해 언제나 그에 합당한 결과를 얻으며 살아왔다. 대학에서의 전공을 살려 전문성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들어간 석사과정. 모두가 그렇듯 연구와 프로젝트로 인한 압박, 금전적 후달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등등 어려움은 있었어도 나에겐 모두 극복 가능한 어려움이었다. 석사 졸업 후 바로 취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석사를 마치고 나니 여전히 내가 충분한 전문성을 쌓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이 생각은 박사를 마친 지금도 마찬가지다. '충분한 전문성'이라는 건 허구이다...!) 주변의 친구들은 제각기 자신의 진로를 선택해 용기있게 나아갔고, 그 중에서는 박사 진학을 선택한 친구들도 있었다. 안정적인 선택지 같아 보였다. 연구도 적성에 맞는 것 같고, 언젠가 박사까지 하고 싶어질 것 같다면,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시작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이왕 박사를 할 거면 금전적 지원이 더 잘 이루어지고, 대학원생에 대한 처우도 더 나은 미국으로 가고 싶었다.
그렇게 시작된 유학 생활. 나는 곧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되는데...
호기롭게 시작된 유학생활. 그러나 연구도, 인간관계도, 나 자신도 모두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열심히 글을 써가도 지도교수님의 피드백은 받을 수 없었다. 인간관계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게 뭔지 몰랐던 나는 인간 때문에 극도의 스트레스를 겪었다. 해야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은 많은데 그걸 할 힘이 도무지 나지 않았다. 나는 이전과 똑같은 것 같은데, 오히려 노력을 더 했으면 더 한 것 같은데, 그에 따른 '합당한' 보상은 주어지지 않는 자잘한 실패의 경험이 축적되어갔고, 그럴수록 나는 더 무기력해져갔다.
내가 도피성으로 박사과정을 선택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렇지 않다고, 나는 내 미래를 위해 더 나은 결정을 한 것이라고 스스로를 합리화했었는데, 실패의 경험이 축적되어가며 깨달았다. 아, 드디어 내 한계를 정면으로 마주해야 하는 순간이 왔구나. 이제 정말 피할 수 없구나. 그게 고시가 됐든, 로스쿨이 됐든, 취업이 됐든, 실패하고 싶지 않으니까 상대적으로 긴 시간이 걸리는 박사과정을 통해 내 실패를 유예하고 싶었던 거였구나(하지만 그땐 몰랐다. 박사과정은 고통과 실패를 길게 늘려서, 여러 번 경험하는 과정이라는 걸..하하하).
박사과정 3년차, 그러니까 운전을 시작한 지 1년 즈음 되어 갈 때였을까? 나는 i-10 고속도로 위에서 5시간 정도 걸리는 장거리 운전을 하고 있었다. 1차선을 달리고 있었고, 내 오른쪽으로는 큰 트럭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때 내 머릿속을 스친 생각.
"이 핸들을 꺾어서 내가 다치는 게 아니라 죽는 거라면, 괜찮을 것 같은데?"
나는 대학원 동기 S에게 이 이야기를 대수롭지 않게 했다. S의 반응은 진지했다.
"너 상담 받아봐야 되는 거 아니야?"
S는 코로나가 시작되고 모든 수업이 온라인으로 옮겨가면서 캠퍼스가 위치한 도시를 떠나 남자친구와 함께 살고 있었다. 그당시 우리는 종종 박사과정의 스트레스를 문자메시지로 공유하고는 했는데, 대부분 S가 먼저 대화를 시작했다. 그렇게 이야기하다보면 언제나 대화는 S가 나를 걱정하고 격려하며 마무리됐다. 묘하게 내가 더 불행해지고, S는 나의 불행을 통해 위로받는 것만 같은 대화의 패턴이 점점 불편해질 즈음이었다. 상담을 받아봐야 되는 거 아니냐는 S의 조언이 나를 더 불행한 사람으로 프레이밍하는 것 같아 자존심이 상했다(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이 시기에 내가 S에게 느끼고 있던 경쟁심도 작동했을 것이다. 꼬일 대로 꼬여있던 나 자신...). 나는 S의 말을 진심어린 걱정으로 받아들이기보다, 부정해야 할 어떤 것으로 여겼다. 그렇게 나는 죽음에 대한 내 찰나의 생각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 우울의 그림자가 점점 짙어지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다음 편은 <천사를 만나본 적 있나요?>입니다.
번아웃은 의지의 문제라고 생각했던 나... 매우 반성합니다. 번아웃은 리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