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을 시작하다

내 인생을 바꿔놓은 운전

by 당근

내 인생에 운전은 없을 줄 알았다.


많은 사람들이 면허를 딴다는 수능 이후 겨울방학에도 난 운전을 하고 싶은 마음도, 해야 한다는 생각도 없었다. 성인이 되어 서울에 살면서도 자가용에 대한 필요를 한 번도 느낀 적이 없었다. 오히려 이렇게 막히는 곳에서 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걱정될 뿐이었다.


하지만 미국 시골에서 운전은 선택사항이 아니었는데...




먼저, 유학생에겐 운전면허증이 신분증으로 사용될 수 있다(매번 여권을 들고다니기엔 불안하니까). 또 미국 시골은 대체로 대중교통 배차간격이 매우 넓기 때문에 운전을 하지 않으면 기본적인 생활이 어렵다. 따라서 나는 유학길에 오르기 전, 오락실 같은 시뮬레이션 운전면허학원에 등록했다. 나는 운전을 못 하기도 하고, 재미도 못 느끼고, 무서워했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겨우겨우 20대 후반의 나이에 운전면허를 땄다.


그렇게 한국에서 발급해 간 국제운전면허증으로 미국 운전면허증을 받을 수 있었다(주에 따라 시험을 또 봐야하는 곳도 있다). 하지만 미국에 도착하고 처음 2년은 운전을 하지 않았다. 차를 살 목돈이 없기도 했고, 차를 산다는 건 굉장히 큰 일이기에 일단 한 번 살아보고 결정하자는 생각이었다. 학교는 도보, 버스, 자전거 등의 수단을 이용해 통학했고, 웬만하면 해가 지기 전에 집에 돌아왔다. 미국의 밤거리를 걸어 다닌다는 건 목숨을 내놓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남부의 작열하는 태양 밑에서 걷는 것도 목숨을 내놓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와 하우스메이트 K언니는 매주 토요일 아침, 해가 아직 완전히 뜨지 않았을 때 백팩을 메고 마트로 향했다. 가까운 마트까지는 20분 정도가 걸렸는데, 4차선 도로에 두 사람 겨우 나란히 걸을 수 있을 만한 좁은 인도를 지나고, 두 번의 신호등을 건너야 했다. 우린 일주일치 식량을 야무지게 쇼핑해서 꽉 찬 배낭을 메고, 양손 가득 비닐봉지를 든 채 떠오르는 태양을 피해 빠른 걸음으로 집까지 되돌아왔다.


이 짓을 2년 정도하고 나니 차 생각이 정말 간절해졌다. 방학을 맞아 한국으로 돌아간 나는 이를 악물고 다시 한번 빡센 주행과 주차 훈련을 했다. 그렇게 반드시 차를 사고 말리라는 마음으로 미국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그때는 전 세계적으로 찻값이 최고가를 찍은 때였다. 그럼에도 차 없는 미국 생활에 신물이 난 나는 미래의 나를 믿으며 기어이 할부로 차를 구매했다.


나의 첫 차. 보고 싶다 롤라야..


첫 차를 운전하며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겪었다. 예를 들어 셀프 주유 후에 주유구를 안 닫고 출발해서 뒷차가 빵 해줘서 알아차렸다든가... 주차하다가 혼자 차 옆을 긁는다든가... 그렇게 점차 운전에 익숙해졌고, 기동성이 생긴 나는 날아다녔다. 내 행동 반경은 학교에서 동네 카페로, 집 근처 마트에서 코스트코로 넓어졌다. 몇 달 뒤엔 다른 주로까지 확대되었다.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나는 하루 코스로 16시간 거리를 운전해 친척 결혼식에 참석하고, 그 근처에서 공부하고 있는 친구집에도 들렀다. 비록 돌아오는 길에 속도위반으로 걸리긴 했지만... 비로소 진정한 어른이 된 것 같은 뿌듯한 경험이었다(인자한 경찰관분들은 나를 아무런 조치 없이 놓아주셨다. "해 지기 전에 집에 도착하고 싶어서 그랬어요"라는 나의 말에, "그러다 평생 집에 못 갈 수도 있어"라는 명언을 남기시고는...).


내 장거리 운전의 친구는 단연 멋진 미국의 하늘, 풍경, 그리고 팟캐스트였다. <송은이 김숙의 비밀보장>을 들으며 피식피식 웃으면서 운전하다 보면 기름이 떨어졌고, 그러면 주유소에 들러 주유도하고 화장실도 가고, 주전부리도 샀다. 그렇게 몇 번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해 있었다. 친구들에게 좋은 휴게소나 맛있는 로컬 커피집을 추천받으면 중간에 고속도로에서 빠져 잠시 여유를 즐기기도 했다. 나에게 장거리 운전은 즐거운 여행이었다.


친구네 집에서 우리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추천받은 카페에 들렀다.



바쁜 벌 휴게소와 그곳에서 산 주전부리


인기 휴게소 버키스. 규모가 어마어마하고 온갖 주전부리와 귀여운 굿즈를 판매한다.


운전을 시작한 지 1년 즈음 되어 갈 때였을까? 나는 i-10 고속도로 위에서 5시간 정도 걸리는 장거리 운전을 하고 있었다. 1차선을 달리고 있었고, 내 오른쪽으로는 큰 트럭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때 내 머릿속을 스친 생각.


"이 핸들을 꺾어서 내가 다치는 게 아니라 죽는 거라면, 괜찮을 것 같은데?"




다음 편은 <유학(대학원)과 정신건강>입니다.


저의 유학생활은 운전하기 전과 후로 나뉩니다. 당연히 운전 후가 훨씬훨씬!!! 삶의 질이 올라갔습니다. 아예 운전을 안 해본 저에게는 면허를 따는 것부터 차를 사는 과정까지 높은 진입장벽이 있었지만, 그래도 운전, 용기내어 도전해보는 걸 강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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