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동거인에게 바치는 글
대학에 가고나서부터 나의 삶은 늘 동거인과 함께였다.
대학교 신입생 때 기숙사에서 만난 하우스메이트, 룸메이트 셋과는 10년이 넘도록 여전히 정기적으로 만나고 있다. 그 밖에도 나는 2인 1실, 4인 1실 등 다양한 기숙사에 살며 동거 생활을 경험했다. 불편한 점은 딱히 없었다. 생활패턴이나 청결 상태가 안 맞아 어려웠던 적도 없었고, 어떤 하우스메이트/룸메이트와는 방을 공유하는 그 이상으로 친한 친구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유학생활 중 하우스메이트로 인해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를 겪고 깨달음을 얻게 되는데....
나의 동거는 호기롭게 시작됐다. 나는 조교를 하며 격주마다 학교에서 들어오는 스타이펜드(stipend)로만 생활을 유지했고, 차도 없었으므로, 주거 양식의 선택지가 애초에 많이 없었다. 학교를 걸어서, 혹은 셔틀버스를 타고 다닐 수 있는 거리여야 했고, 월세가 내 예산보다 낮아야 했다. 혼자 살려면 월세로 스타이펜드를 거의 다 써야 했고, 같이 살면 월세가 거의 반 값이었다. 무엇보다 그동안의 기숙사 생활에 비추어봤을 때 나는 단체생활에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룸메이트와의 갈등으로 스트레스 받는 경우를 종종 듣기는 했어도, 그게 내 일이 될 거라곤 정말 상상도... 못했다.
유학생활 첫 하우스메이트 A와는 여러 문제가 있었다. 그때의 내 주된 생각은 'A를 이해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해할 수 없으면 화가 났다. 살면서 누군가에게 그렇게 화가나 본 적이 있었나? 괴로웠다. 그렇지만 내가 받는 스트레스를 A에게 그대로 표현하지는 못했다. 그래도 나는 A와 잘 지내보려고, A를 이해해보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첫 번째 깨달음은 우린 ‘다르다'는 것이다.
난 한 번도 동거인으로 인해 이렇게까지 스트레스를 받아본 적이 없으니, 이건 분명 A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더 편했고, 그게 내 본심이었다. 하지만 A가 그렇게 이상한 사람이라면, 친구가 없어야 되는 거 아닌가? A는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친구들과 잘 지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도 A와 하우스메이트로 만나지 않았더라면 친구가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다르다'고 느끼는 데에도 깊이가 있다면, 나는 땅을 파고 파다가 마침내 더이상 파내려갈 수 없는 지점에 도달해서야 ’다르다‘의 의미를 진심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A는 잘못되거나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와는 아주 잘 맞을 수도 있는, 나와 다른 사람일 뿐이었다. 내가 이전 동거인들로부터 스트레스를 받지 않은 건 운이 좋게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을 만나서였을 수도 있고, 그들이 나의 다름을 참아주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나도 A가 싫기만 했느냐? 그건 아니었다. 좋은 부분도 있었고, 그랬기에 나도 A를 이해해 보려, 잘 지내보려 노력을 했다. 내가 먼저 베풀면 상황이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내 본심과 다르게 오버해서 잘해주려 해보기도 했고, 그러다가 또 예상치 못한 반응과 결과에 실망하기도, 분노하기도 했다.
그렇게 유학생활 절반을 A, 그리고 다른 하우스메이트 n명과 함께 살았다. 혼자 살 수 있을 만큼의 재정적 여유도 없었고, 새로운 집을 찾는 것도 상황상 어려웠다. 다른 것에 시간 쓰기에도 바쁜 학위과정 중 누군가를 싫어하는 데 쏟는 에너지가 아까웠고, 그 상황을 바꿀 수 없는 내 자신도 싫었다.
A와의 동거는 허무하게 끝났다. 대판 싸우거나 어떤 극적인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상황이 맞아 떨어져 자연스럽게 마무리됐다.
그렇다면 A와의 동거생활 종료 이후 내 삶은 평안해졌을까? 슬프게도 그렇지 않았다. 나는 내가 정말 인간적으로 좋아하던 친구 B와 같이 살게 되었고, 그래서 더 힘든 생활을 하게 됐다.
B와의 동거생활은 초반부터 어긋나기 시작해, 나중엔 거의 집만 공유하는 남남처럼 살게 되었다. B는 나에게 이유를 말해주지 않은 채 거리를 두었다. B는 그것이 나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고 했다. 내가 좋게 생각하는 사람이 나를 불편해하며 거리를 둔다는 점이 너무 괴로웠다. 소음? 말투? 생활패턴? 나의 어떤 것이 B의 불편함을 자극한 것인지 안다면 고치고, 피해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너의 이런 부분이 힘들다'고 얘기하는 것 또한 상당한 에너지가 들고, 어느 정도 그 사람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학위과정 중에는 대체로 나 하나 제대로 건사하기도 힘들기에, B의 상황도 이해가 됐다.
그러면서 얻은 두 번째 깨달음은,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고칠 수 있는 기회를 주자는 것.
나는 B와의 경험을 통해 수동공격이 얼마나 상대방의 피를 말리는 일인지 알게 됐다. '내가 뭘 잘못한 걸까'를 곱씹으며 자기 검열을 반복했다. 그러다 이것이 나에게 너무 해로운 일이라는 데까지 생각이 닿았고,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 아니다'라는 간단한 명제만을 적용하기로 했다. 그리고 나도 더 이상 B를 이해하거나 잘 지내보려 애쓰기를 포기했다. 대판 싸우거나 한 것도 아니고, 그냥 그렇게 서로를 포기한 채 살아갔다.
세 번째 깨달음은 기적의 역지사지.
B와 거리를 두게 되며 A와의 관계가 생각났다. 내가 A를 그렇게까지 힘들어했던 것처럼, B도 내가 힘들었을 수 있겠구나. 누가 잘못해서가 아니라 다르기 때문에. 또 B의 수동공격적 태도로 인해 내가 상처받았던 것처럼, 나 또한 A에게 비슷한 태도로 상처를 줬을 수 있겠구나...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와 나에겐 새로운 하우스메이트가 생겼다. 내 인생 최고의 하우스메이트, 할머니!
서로의 생활에 간섭하지 않고, 역할 분담을 분명히 하지 않았음에도 설거지면 설거지, 청소면 청소, 빨래면 빨래, 그때그때 필요를 느끼는 사람이 했다. 그러면서 서로에 대한 애정도 있고, 서로를 정서적으로 지지한다. 이 얼마나 이상적인 하우스메이트인가!
그러다가 얼마 전 깨달았다. 아. 할머니가 더 희생하고 계셔서 내가 편하다고 느끼는 것일 수 있겠구나. 내 입장에선 ‘내가 원하는 만큼만 집안일을 해도 생활이 굴러간다'라고 느꼈지만, 그 이면엔 할머니의 조용하고 부지런한 배려와 움직임이 있었을 것이다. 간섭받지 않는 생활을 유지하는 데엔 할머니의 인내가 서려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 할머니는 90대. 내가 더 불편함을 감수해야 마땅한 상황인데, 난... 너무 편하게 지내고 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나부터 좋은 동거인이 되자. 내가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없듯, 그도 나를 이해할 수 없다. 그렇지만 그 사람이 날 너무 힘들게 한다면, 잘 지내기 위해 나 자신을 검열하려 너무 애쓰지는 말자. 그리고, 아직 그 사람에 대한 애정과 희망이 남아있다면... 뭐가 힘든지 말해줘서 고칠 수 있는 기회를 주자.
하지만 유학 중 하우스메이트/룸메이트와 함께 사는 건... 선택지가 있다면 정말 비추입니다. 좋은 사례를 본 적이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