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소수자에게 바치는 글
미국. 미국. 미국... 어떤 곳인가?
나는 미국병에 걸려있었다. 미국에 살고 계신 고모 덕분에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즉흥적으로 미국을 몇 주간 다녀왔었고, 대학생 때 교환학생도 한 학기 다녀왔었다. 두 번 모두 영어 듣기&말하기에 대한 자신감이 없어 미국을 백프로 즐기지 못했다는 것이 아쉽긴 했어도, 자본주의로 점철된 그 풍요로움과 화려함이 좋았다. 차를 타고 다닐 때마다 보이는 개성 가득하고 아기자기한 주택들이 환상적이었고, 마트 쇼핑을 하며 한국에선 보지 못한 음식(팝 타르트를 너무 좋아했다), 화장품을 구경하는 게 좋았다.
그 두 번의 경험만으로 자신만만하게 미국 유학길에 오른 나는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되는데...
추위를 많이 타서 늘 따뜻한 곳에 살고 싶었던 나는 미국 남부에 있는 학교를 택했다. (물론 지도교수님과의 핏도 좋았다.) 고모가 살고 있는 주와는 차로 16시간, 비행기를 두 번 갈아타야 하는 곳이었다. 학교를 정하고, 왜 같이 상의하지 않았느냐고 말씀하시는 고모와 통화하며, 나는 '유학생활 원래 뭐 혼자 하고 그러는거지..' 하는 안일한 생각을 했다.
처음 비행기에서 내려, 마중 나온 선배의 차를 타고 선배의 집으로 향하는 길, 생각보다 너무 휑한 주변 풍경과 앙상한 야자나무를 보며 "어..? 이거 뭔가 잘못 됐다" 하는 첫 직감을 했다. 이제까지 내가 경험했던 미국은 고모가 살고 계신 뉴저지 교외와 그 주변 대도시들. 모두 미국에서 가장 발전된(?) 곳들이었다. 나는 몰랐다. 미국은 굉장히 넓고, 어디에 사느냐에 따라 굉장히 다양한 스펙트럼의 삶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을...
그렇게 나는 도마뱀이 발에 치이는 미국 남부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하게 됐다.
아시안 싱글 20대 후반-30대 초반의 여성으로서 미국 남부에 산다? 이것은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었다. 미국은 굉장히 자유로운 곳일 것 같지만, 그건 뉴욕 같은 대도시에나 해당되는 말이고(사실 뉴욕 잘 모른다), 내가 살았던 미국 남부는 굉장히 보수적이고 가족 중심적이다. 대학 졸업하고 바로 결혼하는 경우도 흔하고, 자녀를 많이 낳는 경향도 있다. 게다가 내가 살던 곳은 미국 중에서도 아시안 비율이 낮고, 백인 비율이 높았다. 그렇다. 그곳에서 난 마이너리티였다.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다고 느꼈다. 코스트코에 가면 다들 가족 또는 커플로 장을 보러 왔고, 학교 주변 마트에는 학부생들이 삼삼오오 장을 보러 왔다. 나는 학부생도, 기혼자도 아니었다. 비슷한 사람들끼리 어울리는 방법도 있었겠지만, 그런 모임(예컨대, 한인 교회라든지...)에서는 오히려 나의 비주류성(?)이 더 크게 다가왔다. 결혼한 커플들은 커플들끼리 모이는 경향이 있어 어울리기가 어려웠고, 싱글들과의 모임에선 열심히 짝을 물색하는 분위기가 잘 안 맞아 피하게 됐다.
소수자로 살아가다 보니 일상에서 겪는 모든 일들을 내 정체성과 연결시켜 생각하게 됐다. 마트에서 캐셔가 불친절하면, '내가 아시안이라서?' '내 영어가 이상해서?' 하고 나를 의심했다. 그렇지만 아시안도,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것도, 내가 바꿀 수 없는 나의 정체성 그 자체였다. 만약 한국에서였다면 나는 당연하게 '저 사람 기분 나쁜 일 있나 보다.' '성격 이상하네'하고 그 사람 탓을 했을 것이다.
자기 의심은 내 본업에서도 불쑥불쑥 고개를 들었다. 강의를 듣다 잘 못 알아들으면 당연히 내 영어실력을 탓했다. 그런데 수업이 끝나고 그 내용에 대해 원어민 친구에게 물어보면 그 친구도 잘 못 알아들었다고 할 때가 종종 있었다. 나도 한국에서 강의를 들을 때 한국말이어도 모든 내용을 알아들을 수 있는 건 아니었듯, 내 영어 실력과 상관없이 내용 자체가 어려운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반대로 내가 강의를 할 때 딴짓하는 학생이 있다면, '내 영어가 이상한가?' '내가 아시안이라 무시하나?'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하지만 내가 한국에서 학생으로 수업을 들을 때도 늘 집중해서 듣진 않았다. 그것이 교수자를 무시해서인 것도 아니었다. 이처럼 누구나 일반적으로 겪을 수 있는 상황에 대해서도 나는 내 정체성을 통해 이해하고 있었다. 일상부터 본업까지 침투한 자기 의심은 서서히 내 자존감을 갉아먹었다.
내가 민감한 사람인 것도 있다. 나보다 더 오래 미국생활을 한 중국인 친구는, 미국에서 단 한 번도(!!!) 인종차별을 당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나랑 같이 걸어갈 때 어떤 사람이 멀리서 “어디서 왔어? 한국? 중국? 일본?" 하고 물어봤던 것이 유일하게 경험한 인종차별이라고 했다. 그럼 나는? 1년에 100번은 크고 작은 인종차별을 당했다고 생각한다. 같은 상황을 겪었어도 그 친구는 무던하게 넘어갔을 것이고, 나는 인종차별이라며 분해했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소수자성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내가 바꿀 수 없는 정체성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그 정체성을 탓하는 일을 멈추자. 제가 해봤는뎁숑.. 너무 힘드러요..
모두들 러브 유얼셀프. 두 낫 의심 유얼셀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