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극복기1
이전 이야기: 발 밑에서 누가 잡아당기는 것 같고, 의욕도 없고, 죽음에 대한 생각까지도 했지만 혼자 상담센터를 찾아가지 못하고 있던 나는 카페에서 알게 된 한 소녀의 도움으로 상담센터에 가게 되는데...
스크리닝 인터뷰에서 눈물을 펑펑 쏟은 나는 줌 워크샵에 배정됐다. 워크샵 제목은 Getting Unstuck. 대충 '빠져나와라'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내 정확한 상태를 몰랐던 나는 워크샵에 들어가서 나를 괴롭게 하던 그것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정해진 시간에 줌에 들어가자 퍼실리테이터 선생님이 계셨고 나 말고 두 세명 정도의 학생들이 더 있었다. 퍼실리테이터 선생님은 활동지를 다운로드할 수 있게 해 주었는데, 첫 활동은 여러 증상을 4x7=28 빙고판처럼 나열해 놓고 내가 해당하는 것에 체크해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나는 28개 중 2, 3개를 제외한 거의 대 부분의 항목이 해당되었고... 그 모든 증상은 우울증에 관한 것이었다. 내가 경험하고 있는 것에 대해 이름을 붙이는 것만으로도 뭔가 명쾌해지고 왠지 한 단계 나아간 느낌이 들었다. 나는 머리로 이해가 돼야 하는 스타일인 것 같다.
이 워크샵은 세 세션 동안 진행되었는데, 매주 우리에겐 과제가 주어졌다. 우울한 상황이 오면 이걸 신체적(몸의 감각), 감정적(느낌), 인지적(생각), 행동적 반응으로 나누어서 적어보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사고방식이 어떠한 패턴을 가지고 있는지 객관적으로 돌아보는 것이었다. 이건 도움이 되지 않는 패턴일 가능성이 큰데, 예를 들면 흑백논리("난 완벽하지 않으니까 실패자야"), 과도한 일반화("아무런 좋은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야"), 감정적 추론("당황스럽게 느꼈으니까 나는 멍청해"), 개인화("이건 내 잘못이야"), 라벨링("나는 낙오자야, 쓸모없어"), 마음 읽기("저 사람은 이렇게 생각할 거야")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우울한 감정과 생각에 빠져들 때 의식적으로 이것을 신체, 감정, 인지, 행동으로 나누어보고, 그것에 어떠한 패턴이 있는지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연습을 하는 것은 확실히 그 상황으로부터 빠져나오는 데 도움이 되었다.
한 가지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워크샵 세션을 마무리할 때마다 나의 좋은 점 한 가지를 돌아가면서 말해보는 것이었는데, 다들 "나는 친절하다" 같은 내용들을 거리낌 없이 말하는데, 나는 정말 아무런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당시 나는 엄청난 자기비판과 부정적 생각에 빠져있었기 때문에, "나는 친절하다" 같은 말도 이게 과연 내가 진짜 친절해서일까? 가식은 아닐까? 같은 생각을 하느라고 나에 대한 어떤 주관적 평가도 내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때 내가 했던 말이 "이번 주에 운동을 했다"였다. 워크샵에서 우울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규칙적 수면과 규칙적 운동 둘 중 하나는 꼭 하는 것을 과제로 내줬기 때문이다. 운동을 했다는 건 객관적 사실이기 때문에 나의 좋은 점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워크샵에서 들었던 유용하고 신박했던 조언은 무조건 사람들 주변에 있으라는 거였다. 그때의 나는 외출을 정말 하지 않았고, 내가 해야 할 일만 마치면 바로 집으로 들어와 침대에 누웠다. 해야 할 일이 많아도 그냥 침대에 누워서 시간을 보냈고, 계속 잠을 잤다. 그대로 깨어나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 워크샵에선 침대에서 일어나 빨래 한번 돌리는 것만이라도 큰 성취라고 독려해 주었다. 그리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사회적 활동을 하지 않더라도, 카페나 도서관에 가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것만으로도 우울증이 나아지는 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 그동안의 나는 공부도 주로 집에서 하고, 혼자서 카페도 잘 안 가는 편이었지만, 우울증을 낫게 하기 위해서라도 일부러 도서관과 카페에 가서 공부를 했다. 효율은 떨어질지 몰라도, 정신이 아프다 보니 모든 것을 내 정신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게 됐다. 좋은 변화였다.
그즈음해서 나는 상담사 선생님과의 개인 상담도 시작했다. 상담 선생님을 잘 만나는 게 굉장히 중요한데, 나에게 배정된 제시카 선생님은 다행히 나와 잘 맞는 분이었다. 언어적 한계로 인해 내 모든 상황을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 답답할 때가 있었는데, 내가 말을 마치고 나면 제시카 선생님이 다시 내 말을 정리해 줄 때, 그 말이 정확히 내가 하고 싶은 말이라 속이 시원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제시카 선생님과 이야기하고 나면 vulnerability hangover라고 하는 소위 '숙취'가 남지 않았다. 저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내가 너무 많이 울어서 이상하다고 하진 않을까 같은 생각이 제시카 선생님과의 상담 이후엔 들지 않았다. 상담실 안에서 나는 완전히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었다.
제시카 선생님과 상담하며 나는 나 자신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다. 먼저, 나는 ~해야 사랑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공부를 잘해야, 성격이 좋아야, 예뻐야 사랑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누군가 적극적으로 나에게 그런 생각을 주입한 것은 아니었지만, 굳이 따지자면 늘 모범생으로 살았고 그만큼의 성취가 따라왔기 때문에 부모님도 "너 자체로 괜찮다" 같은 말을 해줄 기회가 없었다고 해야 할까? 내가 알아서 잘한 것도 있지만, 나로선 부모님도 그걸 당연하게 여긴다고 느꼈다. 내가 힘들다는 얘기를 하면 내가 그만 둘까 걱정되기라도 하는듯 오히려 모진 말을 늘어 놓는 식이라 난 힘들다는 얘기를 하지 않는 편이었다.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은 "포기해도 된다" "건강하기만 해라" 같은 말이었다. 그 말을 듣고 옳다구나 포기하려는 것이 아니라, 결국 모든 결정은 내가 하는 거지만, 내가 언제든 실패해도 돌아갈 곳이 있고 비빌 언덕이 있다는 사실을 부모님의 입에서 듣고 싶었다. 반면 부모님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부모니까 너에게 진정 도움이 되는 말을 해줄 수 있다며 내가 듣고 싶어하는 말을 해주지 않으셨다. (이것과 관련해선 나중에 쓸 일이 있으면 더 자세히 써보겠지만, 지난한 눈물의 투쟁 끝에 부모님이 변화해 나가셨다.)
~해야 사랑받을 수 있다는 생각은 내 오랜 신앙생활에도 적용되었다. 나는 기독교 집안에서 나고 자란 모태신앙인데, 내 신앙의 기저엔 내가 무언가를 해야 좋은 신앙인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었다. 이러한 생각은 왜곡된 결과를 낳아, 내가 이렇게 교회에서 봉사를 했는데, 기도를 하고 성경을 읽었는데 그만큼의 보상이 따라오지 않는다는 억울한 마음을 갖게 했다. 그리고 심지어는 나보다 신실하지 않아 보이는(?) 주변 사람들이 나보다 일도 더 잘 되고 행복해 보일 때 그것을 인정할 수 없는.. 일그러진 마음을 갖게 했다. 그리고 이런 못생긴 마음을 가지고 있는 나 자신이 혐오스럽고 싫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신앙이 흔들리게 됐고, 내 삶을 지탱해 온 큰 기반 중 하나가 흔들리며 겪은 혼란도 우울증에 큰 영향을 주었다.
상담을 하며 나 자신에 대해 더 잘 알게 되고, 운동을 통해 몸의 건강을 회복하면서 내 우울은 점차적으로 괜찮아졌다. 무의식적으로 나 스스로에게 "바보 같아" "미친" 같은 말을 하던 나였는데, 내 휴대폰 배경화면을 내 어릴 적 사진으로 바꾸고, 내가 나의 엄마라고 생각하면서 이 2살짜리 어린애한테 내가 과연 "미친" 같은 말을 할 수 있을 것인가를 의식적으로 떠올리면서 스스로에 대한 부정적인 말을 하지 않는 연습도 했다. 나와 상담을 할 때 제시카 선생님은 임신 중이었는데, 내 상태가 점점 괜찮아지고, 선생님도 출산휴가에 돌입하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상담을 종결하게 됐다. 나중에 졸업을 하고 제시카 선생님에게 이메일을 보내서 덕분에 졸업할 수 있었다고 감사 인사도 전했다. 선생님은 프로페셔널한 답장을 보내주셨는데, 그 이메일 안에서도 선생님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상담에 대한 좋은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제시카 선생님과 개인 상담을 마치고 나서 그룹 상담에도 배정이 되었는데, 그룹상담에 한 4회 차쯤 갔을 때 그 그룹 다이내믹에서 느껴지는, 백인 미국인들이 외국인들을 계몽하려 하는 것 같은 분위기가 힘들어서 상담에 더 이상 나가지 않았다. 퍼실리테이터에게 전화도 오고 이메일도 왔음에도 나가지 않았다. 나에게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있었다면 그 부분 또한 그룹 상담에서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부분이었겠지만, 그럴 에너지가 없어서 포기했다. 이렇게 긍정적인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님에도, 상담은 내가 우울증을 극복하게 된 계기가 되었고, 앞으로도 기회만 된다면 꾸준히 상담을 받고 싶다.
우울한 마음이 든다면 혼자 해결하려 하지 말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합시다! 도움을 요청하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든 일이고 그 과정에서 오히려 더 상처받을 때도 있지만, 분명 우울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해주는, 나와 잘 맞는 사람, 방법이 있습니다. 내가 나의 엄마라고 생각하고, 나 자신을 그냥 방치해 두기보다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