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할머니는 '빵 파는 여자'

할머니의 삶

by 당근

우리 할머니는 20대부터 60대까지 빵집에서 일하셨다.


그 당시 대전에서 꽤 큰 빵집이었는데, 시대를 앞서가셨던 할아버지가 1950년대에 빵집을 내셨다고 한다. 오복당, 태극당에 이은 '아세아제과'가 그렇게 탄생했다.


할머니는 그래서 성심당의 시작도 기억하신다. 성심당은 우리 할머니 빵집의 후발주자였는데, 이북에서 피난 오셔서 대전역 앞에서 꿀빵장사를 하다가 자식들 교회 잘 다니라고 성당 옆에 가게를 차리셨고, 남는 빵들은 고아원에 기부하셨다고 한다.

(그럼 우리는 남은 빵 어떻게 했어요? 물으니 "다음 날 팔았지"라고 하신 건 비밀)

하나님이 복을 내리신 건지, 원래 우리 빵집 앞으로 다니던 버스 노선이 공사를 하면서 성심당 앞으로 지나가게 됐다고 한다. 역시 사람은 베풀어야 해 ㅎㅎ


대전의 은행동 대로변에 있었기 때문에 우리 빵집은 장사가 잘 됐다고 한다. 빵집에 레코드판으로 클래식을 틀어놓았는데, 그 당시엔 카페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만남의 장소로 쓰였다고 한다. 그 덕분에 빵집에 얽힌 재밌는 이야기도 많다. 큰아빠가 군대에서 돌아와 앉은자리에서 앙꼬빵을 여러 개 먹어치운 이야기나, 친구들 줄 세워 놓고 빵을 나눠준 이야기 등등. 빵집에서 일하다가 만나 결혼한 커플도 있다.


빵집은 할머니가 늘 지켰다고 한다. 시대를 많이 앞서가신 할아버지는 빵집을 할머니한테 맡기고 하이프로 사업도 하고(오늘날로 치면 단백질 셰이크 같은 건데 할머니 말씀으론 그게 팔리겄냐?고 하신다), 냉면 가게도 열고(그당시 냉면그릇이 아직도 우리 집에 있다), 이것저것 해보려고 하셨다. 그러다 보증으로 인한 빚이 생겼고, 이걸 갚으려고 할머니는 매일 열심히 빵집에서 일하셨다.


할머니는 늘 한복을 입고 장사를 하셨는데, 당시엔 통금이 있어서 통금 직전까지 장사를 하다가 뛰어서 집으로 돌아오셨다고 한다. 여름엔 얼음을 갈아서 팥빙수를 만들어 팔았고, 겨울엔 단팥죽을 팔았다. 빚진 사람이 열 사람인데 순번을 정해놓고 한 사람씩 갚아나갔다고 한다.


최근에 할머니한테 물었다.

"그럼 할머니가 빵집 사장님이었던 거네요?"

"아녀~ 늬 할아버지가 사장님이지.".

"그럼 할머니는 뭐예요?"

"나는 그냥 빵 파는 여자지."

나는 푸하하 웃었다. "빵 파는 여자가 뭐예요!!"


'그냥 빵 파는 여자' 할머니는 빵집을 운영하며 자녀들을 넷이나 낳고 그들을 대학까지 보냈다. 출산 후 하루 만에 가게로 복귀했다. 빚도 갚아나갔다. 자녀들은 할머니의 희생을 기억한다. 그리고 할머니를 힘들게 하는 것만 같았던 할아버지도 이제는 이해한다.


빵집 손녀인 나는 빵을 매우 좋아하는 빵순이인데... 가끔 타임슬립을 통해 할머니 빵집으로 가서 손님 1이 되어 빵을 먹는 상상을 한다. 그리고 나는 쪽지를 하나 남길 것이다. "저는 미래에서 온 할머니 손녀인데요. 오늘 만든 빵 남으면 다음 날 팔지 말고 주변에 어려운 이웃들한테 나눠주면 어때요?" 평상시에도 질문 많은 나를 귀찮아하시는 할머니는 "뭐여 이건?“하고 찢어버리지 않았을까..


아직도 한복이 너무 잘 어울리는 우리 할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