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밥그릇으로 무럭무럭 자라난 손녀
할머니랑 살고 있다고 하면 "할머니가 당근이랑 살아서 좋으시겠네~"하는 말을 자주 듣는다. 하지만 사실 할머니랑 살아서 좋은 건 바로 나다.
유학생활로 몸도 마음도 피폐해져서 돌아온 나에게 할머니는 할머니식 사랑을 쏟아부었다.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다니게 된 직장에 좀처럼 적응하기 어려웠던 나는 퇴근하면 할머니께 하소연을 하곤 했다. “저 일 그만두고 싶어요..." 소파에 누워 눈물을 주루룩 흘리고 있는 내게 할머니는 말씀하셨다. "그래도 직장은 계속 다녀야지. 일어나서 밥 먹어!" 약 40년을 한 직장에서 근속한 할머니에게는 통하지 않는 엄살일 뿐이었다.
내가 계속 무기력하게 누워있자, 할머니는 내 손을 잡아 일으키시며 말씀하셨다. “밥은 먹어야지!!" 90대임에도 여전한 손 아귀 힘과 쩌렁쩌렁한 목소리를 갖고 계신 할머니는 내 손을 붙잡고 억지로 식탁에 앉히셨다. 눈물을 흘리며 못이기듯 숟가락으로 밥을 푸고,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을 할머니께 이야기하다보면 눈물이 멈춘다. “할머니,들어보세요.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어쩌고저쩌고.." “몰라. 나는 한 번도 그런 적 없어.” (네.. 우리 할머니는 완전 쌉 T입니다)
미국에 있을 때의 난 아무리 힘들어도 거의 울지 않았다. 무기력이 극에 달했던 유학 막바지, 외출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침대에 누워 아무 감정도 없이 핸드폰만 계속해서 스크롤링했다. 유튜브로 한국 예능도 보고, 사랑과 전쟁이나 순풍산부인과 재방송도 봤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현실에서 시선을 돌리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았다. 그렇게 누워있다가 식사 때를 건너뛰기도 하고, 배가 고프면 그냥 아무거나 손에 잡히는 대로 먹거나, 간단한 요리를 해먹었다. 보통 내 주식은 미역국에 만 밥, 카레라이스, 볶음밥, 라면 같이 그릇 하나로 해결되는 것들이었다.
할머니가 차려주신 밥상을 보면 웃음이 터진다. 식당에서 볼 수 있는 납작한 밥공기를 위로 하나 더 얹어놓은 듯한 왕밥그릇에 꾹꾹 눌러 담은 밥. 냉장고의 모든 반찬은 언제나 다 꺼내놓으신다. 매번 다 못 먹는다고 말해도 할머니는 아랑곳하지 않으신다. "할머니. 저 이거 절대 다 못 먹어요." "먹고 냄겨~" 그렇게 먹다보면 아까워서 남기지 못하고 다 먹게 된다. 어쩌다 나 혼자 파스타나 감성 브런치라도 만들어 먹는 날이면 할머니는 어김없이 말씀하신다.
"먹고 밥 먹어~"
......
그렇게 나는 할머니의 사랑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나 8키로가 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