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아이디어는 어디에 있을까
광고 일을 20년 넘게 하고 있지만, 책상에 앉아 "좋은 아이디어를 내야지" 하고 생각해서 떠오른 적은
거의 없었다(책상 앞도 꽤나 자주 발견되는 장소긴 하지만). 신입시절 좋은 아이디어는 어떻게 찾느냐고
선배들에게 물어도 그들은 친절하게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의 행동을 유심히 살폈고, 아이디어를 내는 방식을 모방해 보기도 했었다.
다양한 외국잡지, 월간광고잡지, 해외광고, 디자인잡지, 국내월간지 등 사진, 영상, 글이 있는 모든
매체를 스펀지처럼 스크랩했었다. 신입 카피라이터 때는 지금처럼 클릭 한 번으로 수많은 콘텐츠들을 얻을 수 없는 시기였다. 길을 걷다가, 식당에 갔다가, 운전을 하다가, 운동을 하다가 떠오른 팁들은 모두 메모로 정리하거나 벽에 붙여두곤 했다. 일상 전체가 '소스'의 우물이었다.
광고인들끼리는 아이디어를 어떻게 찾아내는지 서로 묻지 않는다. 선수끼리 왜 이래.
그저 결과물로 말할 뿐이다.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오리엔테이션 자료와 기획 쪽 전략 방향을 공유하고 나면 그때부터는 오로지 단독 돌파다. 중간에 몇 번의 전체 회의를 거치지만 대부분은 어시스트 없이 홀로 드리블해야 한다. 제작팀 스태프들은 각자의 루틴이 있고 각자의 노하우가 있다. 자기만의 아이디에이션 스타일이 있는 것이다. 핑핑 노는 것 같아도 머릿속은 손흥민 보다 더 빠르게 전력질주하는 노련한 아트디렉터가 있고 하루 종일 열심히 궁리하는 것 같아도 키워드 하나 못 찾는 신입사원도 있다.
대체 아이디어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출몰하는가.
아르키메데스의 '유레카'를 외치던 목욕탕처럼 유니크한 곳으로 가야 할까. 아니면 포스트잇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정갈한 내 책상 앞일까. 맑은 정신으로 리셋되어 달려가는 중랑천변일까. 그도 저도 아니면 영감들이 뛰어노는 근사한 미술관 같은 곳일까. 결론은 모두 다였다.
아이디어는 어디에나 있다. 누가 먼저 줍고 캐치하고 듣고 메모하고 머릿속에 녹화하느냐의 문제다.
중요한 프로젝트를 시작하든 간단한 배너광고 아이디어를 내든 아이디어는 결국 근성 있는 사람의 눈과 귀에만 걸려든다. 기획 OT를 듣고 10분 만에 유레카를 외치기도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도 건질 게 없는 경우가 다반사다. 머리가 점점 굳어지나 하면서 자책해도 소용없다. 끝까지 고민하는 수밖에.
출근길 지하철을 타고 갈 때도, 점심 후 사무실 근처를 산책할 때도, 동네 마트를 갈 때도 늘 과제를 생각하곤 했다. 사무실을 나오면 그때부터 머리를 비우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 경우 고민은 퇴근 후에도 계속 이어지고 만다. 오히려 더 깊게 파고든다. 모든 동선에서 목격하는 문자와 간판, 광고, 영상, 음악, 소음, 영화 대사 등을 찬찬히 입력하고 과제와 오버랩시켜 본다. 먹고사는 건 피곤한 일이다. 하지만 광고주의 문제를 해결하는 아이디어를 찾는 일이 내 직업인 것이다. 만에 하나 건져 올린 카피나 아이디어가 없다면 회의실에서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야 한다. 광고회사 회의실에서의 침묵은 죽음과 같다. 이거 어때하며 꺼낼 게 없으니 남의 것을 지적질할 수도 없다.
"늦은 나이에 이런 폭염 속에서 경기를 하는 게 힘들지 않습니까?"
통산 34승을 차지한 만 63세의 레전드 골퍼 김종덕 프로에게 어느 기자가 물었다. 그는 이렇게 답했다. "전혀요, 이것은 우리의 직업입니다." 요즘도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연습을 시작한다는 그는, "프로 골퍼에게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프로 골퍼가 연습하는 건 당연하다. 골프를 업으로 삼고 있는 만큼 나는 지금도 골프에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골프채를 놓기 전까지는 지금의 삶을 계속해서 살아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프로로서의 근성과 직업의식은 이런 것이구나 감탄했었다. 꾸준함은 직종을 떠나 리스펙이다.
오늘처럼 눈발이 흩날리던 지난 1월 어느 주말 오후.
주말이었지만 머릿속은 온통 프로젝트 생각뿐이었다.
프레젠테이션을 일주일 앞둔 채 초조한 맘으로 잠시 집을 나섰다. 키워드야 어디 있는 거니, 제발 좀
나타나주라! 문 밖을 나온 지 7분 여가 지났을까. 핫도그집 옆을 지나는데 '그분'이 오시고야 말았다.
그렇게 찾았던 단 여섯 글자.
"피부에 OOO"
금세 달아날세라 핸드폰에 입력해 놓고, 곧바로 아트 디렉터에게 전화를 걸었다. 항상 경험하는 순간이지만
희열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프로젝트의 모든 문을 여는 마스터 키이자 핵심 아이디어였다.
아이디어는 어디에나 있다. 그러나 찾는 사람은 24시간 노려보고 있어야 한다.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근성. 타고나지 않은 내가 그나마 업계에서 버텨온 이유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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