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성, 박정철
세상 삼라만상 아래 모든 기저에 만일 게임이 있다면? 사실 우리의 인생조차 게임 속 세상이고 우리는 출생을 통해 "게임에 로그인"을 한 뒤 왕년의 불후의 명작 게임 ‘프린세스 메이커’와 같은 롤플레잉 게임처럼 우리의 삶을 살아가며 점차 캐릭터를 발전시키며 살고 있는 것이라면? 이 모든 것이 게임이라면, 사실 이렇게 아웅다웅하며 치열하게 살 것 없이 그저 아주 영리하고 현명하게 우리의 캐릭터를 잘 성장시킬 방법을 궁리하고 실천하며 살 수 있을 것이다. 내 인생은 단 한번뿐이니 제대로 누리고 가야 한다는 모종의 스트레스 (You Only Live Once, YOLO라는 개념과 비슷하겠다.)도 없이 마음 편하게 인생을 대면할 수 있지 않을까. 죽음이라고 하는 것조차 단순한 '로그 아웃'이 되는 것이니 죽네 사네 발버둥 칠 것조차 없을 것이다.
이 얼마나 산뜻하고 가벼운 세상인가.
비록 우리의 인생이 실제 게임은 아니고 치열한 생존의 현장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우리들은 그다지 마음 편하게 게임을 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이러한 게임의 법칙이 우리 인생 기저에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면 내 인생의 발전에도 도움이 되고 심지어는 다른 사람들도 내가 희망하는 방향으로 잘 유도할 수 있지는 않을까?
공자도 이런 것을 알고 계셨는지 논어에서 아래와 같은 말씀을 하신 바 있다.
'아는 이'가 이를 '좋아하는 이'만 못하고, 좋아하는 이는 그 것을 '즐기는 사람'만 못 하다.
여기서 '즐기는 이'란 결국 대상을 심각하게 바라보기보다 게임처럼 받아들여서 재미있게 즐기며 플레이 하는 사람이라고 보아도 의미가 통하지 않을까? 이 세상에 게임처럼 재미있는게 어디있던가. 몇일 밤낮을 새면서도 (심지어는 게임을 하다 죽는 이들도 종종 있다.) 세상 모르고 빠질 수 있는 것이 게임아니던가. 그 정도 집중력이면 세상에서 못 이룰 일이 없을 것이다. 반대로 게임의 법칙을 잘 적용하면 어쩌면 세상 모든 일을 다 이룰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그 것이 지루하기 짝이 없는 공부라면 말이다.
여기서 잠깐
롤플레잉 게임 (Role playing game) 이란?
롤플레잉 게임은 참가자가 가상 세계에서 가상의 캐릭터 역할을 연기하는 게임이다.
초기에는 참가자들이 하나의 테이블에 모여앉아 하나의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게임마스터가 제공하는 가상의 세계를 모험하는 방식이었다 (TRPG: Table-talk role-playing game). 게임을 진행할수록 캐릭터는 점점 더
강한 적들을 맞닥뜨리게 되고 다른 플레이어들과 협력하여 물리치면서 능력을 얻고 장비를 갖추면서 성장해나간다. 오늘날에는 PC와 함께 온라인 모바일 환경이 급속도로 발전하여 대규모 다중 사용자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 (MMORP: Massively Multiplayer Online Role-Playing game)이 대중화 되었다.
경제학 분야에서는 오래 전부터 이런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이에 대한 고찰들이 많이 보고 되어 왔다. 커피 한잔을 먹을 때 마다 도장을 하나씩 받아서 10잔을 채우면 무료 조각 케익을 준다는 이유만으로는 우리는 딱히 커피가 마실만한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커피를 마시러 간다. 10잔까지 도달하는 길이 너무 길다고 불평하는 이들이 생기니 5잔째에 무료 커피 한잔을 더 넣어준다. 그리고 아무 생각없이 커피를 마시러 온 사람에게도 게임에 함께 참여할 동기를 부여해 주기 위해 미리 첫 잔째 도장을 찍어서 줌으로서 2잔부터 시작할 수 있도록 해주면 이 게임에 동참할 확률이 현저히 높아진다. 이 것이 바로 게임의 법칙을 게임이 아닌 영역에 도입하여 사용자의 흥미를 유발하고 사용을 촉진하기 위해 게임의 규칙을 적용하는 게이미피케이션 (gamification) 을 의미한다.
게이미피케이션(Gamification)이란 무엇인가?
게임은 게임을 재미있게 만들기 위하여 게임 스토리 속에 다양한 동기 부여 기법을 이용한다. 이 전통적인 게임의 동기 부여 기법을 게임이 아닌 분야에 목적에 맞게 설정하여 사용자가 쉽고 재미있게 몰입하도록 유도하고 참여하게 만드는 것을 게이미피케이션이라 한다. 이 때 사용되는 기본 게임 기법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고 한다:
- 빠른 피드백: 즉각적인 피드백 혹은 행동에 대한 반응
- 투명성: 모두의 순위 및 진척도
- 목표: 달성하기 위한 단기 및 장기 목표
- 뱃지(badge): 성취의 증거 (아마 교육 분야에서 가장 쉽게 적용할 수 있는 컨셉이다.)
- 레벨 업(level-up): 집단 속에서의 나의 지위
- 탑승(onboarding): 매력적인 학습 방법 / 쉬운 인터페이스
- 경쟁: 비교 방법의 직관성
- 협업: 협력을 통한 목표 달성
- 커뮤니티: 성취를 공유하는 집단
- 포인트: 성취를 확실하게 측정 가능
물론 이 외에도 다양한 방식들이 존재하고 이러한 분야의 연구는 전세계적으로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한국게임산업협회게이미피케이션 협회 등이 활발히 활동을 하고 있고 다양한 분야에서 게임화 이론이 적용되고 있다. 그리고 시기가 무르익어 교육 현장에서도 이러한 적용 사례를 흔히 볼 수 있게 되었다.
국내의 어린이들을 위한 영어 학원들은 웹사이트와 스마트폰 앱을 구축하여 학생이 책을 읽어 나가는 과정을 마치 게임 상에서 길을 찾아가며 하나 하나 미션을 수행하는 형식으로 꾸며 두었다. 여기서 얻어진 포인트로는 한달에 한번 열리는 장터에서 작은 장난감들을 살 수 있고, 리더 보드 (leader board)에 올라가는 고득점자가 되기 위해 집에 와서 기를 쓰고 책을 읽곤 한다. 꿀을 발라 놓고 공부해라 해라 해도 할까 말까한 아이들이 장난감을 사기 위한 포인트를 적립하기 위해 자기 스스로 책을 읽는 모습을 보면 정말 이 게이미피케이션이라는 것이 기가 막힌 전략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러한 게이미피케이션은 스마트 교육의 방식에서 사실 손쉽게 도입할 수 있는 방식이다. 디지털 도구 자체가 이러한 보상 체계에 매우 최적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칸 아카데미 (Khan academy)나 기타 온라인 수업의 경우는 수업을 들을 때 마다 배지나 레벨을 부여하여 동기 부여를 하고 있는데 이 것이 상당한 자극원으로 학생들에게 다가가는 것 같다. 칸 아카데미의 경우 자신의 캐릭터를 진화시킬 수 있다는 관점에서 마치 포케몬 트레이너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주고 있고 등급의 분류는 운석, 달, 해 등을 거쳐서 블랙홀까지 만들어 두었는데 아주 재미있게도 블랙홀은 아무나 될 수 없고 오로지 창업자 살만 칸만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아쉬운 점은 이러한 좋은 아이디어들은 한국도 상당히 빠른 시기에 도입을 하는 편인데 시장이 작아서 인지 아니면 워낙 새로운 것들이 많이 등장을 해서인지 강력한 파급효과를 보기에는 늘 한계가 있는 것 같다. 아래는 네이버 지식인에서 사용하는 등급 체계이다. 네이버 지식인은 사용자들이 올린 질문에 다른 사용자들이 답변을 달아주는 시스템인데 이 과정에서 답변이 채택되거나 답변을 많이 다는 경우 그 등급이 올라가도록 되어 있다. 어찌보면 네이버 입장에서는 돈 하나 안 들이고 막대한 컨텐츠를 제공해 주고 있는 셈이다. 이 것이 바로 게미피케이션의 사례이다. 재미있는 게임의 요소를 도입해주면 사용자들이 알아서 자신들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봉사할 수 있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니 게임의 기법이 이 얼마나 큰 무기인지 새삼 느끼게 된다. 문득 드는 생각은 남녀 관계의 소위 밀당 (밀고 당기기) 역시 게임 이론에 근간을 두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만일 이러한 전산 시스템이 도입되어 있지 않은 오프라인 교실에 적을 두고 계신 교육자분들이라면 게임화 이론을 가장 손쉽게 시도하실 수 있는 방식이 있다. 바로 배지를 기술 (skill)과 등급별로 스티커의 형태로 만들어 두고 학생들이 특정 과제들을 마칠 때 마다 배지나 스티커를 나누어 주는 것이다. 이 스티커들은 디자인이 복잡하지 않고 이미 제작되어 있는 디자인들을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스티커 제작도 인터넷 업체를 통해서 3-4만원이면 기본 1000장씩 인쇄할 수 있으니 그리 큰 부담도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의 반응은 정말 뜨겁다. 자신의 교과서 앞에 붙이거나 노트북에 붙이는 것은 기본이고 이 스티커 사진을 SNS에 올려 인증샷을 열성적으로 올리는 모습들도 흔히 보곤 한다.
이러한 게임화 방식이 인기를 끌다보니 아예 제대로 게임을 도입하는 경우도 등장하였다. 필자가 현재 수업에서 활용하고 있는 것은 구글 클래스룸 (G Suite for Education)이라는 플랫폼인데 이후에 자세히 언급하겠지만 이 것은 최근 가장 각광받는 learning management system, LMS로서 현재 미국의 100위권 대학 중 80개 대학이 사용하고 있고 국내에서도 일부 초등학교와 방송통신대학, 경희대, 단국대 등이 도입한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과 연동이 되는 클래스 크래프트 (class craft)라는 게임에서는 학생들이 자신의 캐릭터를 가지고 친구들과 팀을 짜서 수업을 듣도록하고 있는데 그 내용들이 정말 재미있다.
여기서 잠깐
Classcraft란?
Classcrast는 Shawn Yaoung이라는 고등학교 물리 강사가 만든 gamification 툴로 수업을 롤 플레잉 게임으로 바꾸어 가르치는 접근법이다. 컴퓨터와 프로젝터만 있다면 이용가능하며 보상과 벌칙을 통해 학생들에게 수업에 참여하도록 동기를 부여하고 몰입할 수 있도록 만들고 있다. 팀원들은 협력할수록 많은 점수를 벌 수 있으며, 조용하던 학생들이 말문을 열고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만들 수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수업 중에 얻거나 잃는 점수에 따라서 보상이나 능력을 얻거나 벌칙을 받을 수 있으며, 각자 고른 클래스에 따라 얻을 수 있는 능력도 달라진다. 예를 들면
전사: “수업 중 간식 먹기”, “시험에 대한 힌트 얻기”, “과제 제출 미루기” 등
마법사: “자리 바꾸기”, “수업 중 나갔다 오기”, “팀원의 벌칙 바꾸기” 등
치유사: “시험 중 문제의 답이 맞는지 확인하기”, “수업 내 과제 중 인터넷 사용”, “팀원의 벌칙 면해주기” 등
벌칙: “30 분 동안 해적처럼 말하기”, “모든 팀원을 구체적으로 칭찬하기”, “30분 간 침묵”, “동요 부르기” 등
위 내용은 한 학급의 교사가 설정한 게임 내용의 일부이며 교사가 어떻게 꾸려나가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
얼마전 필자는 수업에서 '방탈출 게임'을 도입하였다. 학생들에게 미션을 주고 제한된 시간 내에 미션을 마친 경우 교실 뒷문 앞에 있는 필자에게 와서 결과물을 보여준다. 만일 성공적인 미션완수가 확인되는 경우 이들은 교실을 조기에 빠져나갈 수 있으며 (탈출!) 제한된 시간 내에 학교 매점으로 달려갈 경우 필자가 미리 어레인지 한 대로 음료수 내지는 아이스크림을 택일 할 수 있게 된다. 단, 6층 매점까지는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다. 하루 종일 수업만 듣느라 정신없었던 학생들이 아이스크림 하나를 이해 허벅지가 터져라 계단을 올라가고 시원하게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즐거워 하는 모습은 학교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신선함이었다.
앞으로의 미래 교실에서는 웃고 떠들고 발표하며 놀다 공부하다 귀가하는 장난같은 교육 환경이 생길 것이라 기대된다. 더 많은 게임 기법이 도입될 것이다. 또한 기존의 엄숙주의는 다소 사라지고 배움은 즐거운 것이라는 깨달음이 널리 퍼질 것으로 기대된다. 따라서 게이미피케이션은 교육에서 큰 흐름이 될 것이 확실하다. 아쉽게도 국내에서는 게미피케이션, 특히 교육 분야로의 적용에 관해서는 많은 자료가 없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 좀 더 공부하기를 원하시는 분이시라면 유데미 (udemy) 사이트에서 강원대학교 김상균 교수님께서 진행하시는 강의를 들으시면 이해하시는 데 큰 도움이 되시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