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텔레비전에서 어린아이가 심리치료를 받는 모습을 보았다. 강아지와 아이가 서로 교감하며 시간을 보내는 방식의 치료였다. 강아지를 껴안거나 쓰담쓰담 하게 하면서
강아지와 아이가 서로 친해지는 시간을 가진 뒤 상담사는 아이에게 그간 하지 못하고 담아두었던 말들을 털어놓게 했다.
그리고 상담사는 아이에게 이렇게 물었다.
“루이(강아지 가명)가 뭐라고 말하는 것 같아?”
아이는 이렇게 답했다.
“괜찮다고. 다 괜찮다고 말해줬어요.”
사실 루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아이의 곁에 있어 준 게 전부였다. 하지만 아이는 루이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대답까지 해 주었다고 느꼈다. 작은 존재에게 위로받는 일은 이 아이에게만 국한된 일일까?
어른이 바라보는 아이, 아이가 바라보는 강아지와 고양이,
그리고 강아지와 고양이가 바라보는 사람. 스스로가 작은 존재라고 느껴질 때, 서로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또 다른 작은 존재가 있었다. 온기를 그리워하는 우리는, 함께 있을 때 서로 이런 메시지를 주고받는다.
‘너도 이렇게, 나처럼, 이곳에 있구나. 그러니까 괜찮아. 그래서 다 괜찮아졌어.’
서로가 서로를 감싸며 서로가 서로의 부분이 되는 순간은 그저 함께하는 그 순간이었다. 작은 존재가 작은 존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우열이 없었다. 더는 누가 더 작고 큰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지 않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