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the Company Thinks #1
회사원일 때 이해되지 않았던 많은 것들이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이 되자 이해되기 시작했다.
운 좋게도 회사원으로서의 경험과 창업가로서의 경험을 모두 갖게 되자 양쪽의 입장이 얼마나 극단적으로 다른지 누구보다 잘 알 수 있었다. 일의 목표가 나 개인의 장기근속 또는 연봉상향이었을 때와, 전체 회사의 성장과 발전이라는 목표로 달라졌을 때 스스로도 180도 바뀐 모습에 놀랄 정도였다.
가장 재미(?) 있었던 부분은 근속연수와 이직률을 보는 관점이었다.
직원의 시선으로 바라볼 때는 근속연수가 짧고 이직률이 높아 사람들이 자주 바뀌면 그 회사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근무여건이 안 좋거나 회사가 이상해서 사람들이 들어왔다 얼마 안 있어 나갈 테니까 당연히 그렇겠지. 그래서 이직할 회사를 고를 때 직원들의 근속연수와 이직률은 중요한 지표였다.
그런데 이 경우 내가 어떤 회사를 찾고 있는가에 따라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같은 기준이라도 어떤 단계의 회사인가에 따라 좋은 지표가 되기도 하고 안 좋은 지표가 되기도 한다는 걸 알게 됐다.
당연히 '아니 내 동료가 자꾸 사라지는데 이게 좋은 회사의 모습이 될 수 있다고?'라고 반문할 것이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회사의 성장 메커니즘을 좀 더 알게 되니 조금 다른 관점에서도 바라보게 되었고, 이는 회사원이든 회사든 서로를 더 잘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이미 수익모델이 안정화되었고 매출과 이익이 꾸준한 중견기업이나 대기업이 있다. 이 회사 직원들의 근속을 결정하는 것은 정말로 회사가 일하기 좋은가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좋은 조건의 급여와 환경을 제공한다면 직원 입장에서는 굳이 이직을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도성장을 하는 초기 기업, 우리가 스타트업이라 부르는 회사의 경우에는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보통 이 시기 기업들은 매년 최소 2~3배의 성장을 이뤄내며 하루가 다르게 변화해 간다.
이런 스타트업에서는 성과에 대한 기대치가 매우 다이내믹한데, 보통 회사가 성장하는 만큼 직원들의 역량에 대한 요구치도 높아지기 마련이다. 회사가 성장하면 더 많은 기능들을 요하고, 더 많은 역할들을 다뤄야 하며, 더 높은 목표치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다이내믹한 환경에 노출되면 직원들도 여러 태스크를 해결해 가며 스스로를 발전시킬 기회를 얻는다. 그런데 문제는 거의 모든 경우에 회사의 성장속도가 개인의 성장속도보다 빠르다는 데에 있다.
예를 들어 창업초기 회사의 마케팅은 키워드 마케팅이 전부였을 수 있지만, 회사가 3배 성장해 버린 지금은 브랜드도 해야 하고 SNS도, 바이럴도 해야 한다. 하지만 키워드 마케팅만이 유일한 솔루션이었을 시절에는 그 역량만 충족시키는 사람을 채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처음부터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뽑으면 되는 거 아니냐고? 하지만 당신이 마케팅 전 영역을 귀신같이 다룰 줄 아는 뛰어난 인재면 이름도 없고 미래가 불확실한 초기기업에 선뜻 오려고 하겠는가? 나 같아도 가지 않을 것 같다.
더구나 초기 스타트업은 높은 연봉을 줄 수도 없다. 모든 스타트업들은 자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우수한 사람을 뽑는 것은 언제나 크나큰 고민거리다.
그럼 회사가 3배 성장하는 동안 개인도 3배 성장하면 되지 않나? 이 부분이 불편한 진실인데 안타깝게도 그런 경우는 8년간 회사를 운영하면서 거의 보지 못했다. 경력이 많아질수록 경험치는 늘어나지만 문제해결능력과 같은 역량 자체가 높아지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역량을 높이려면 할 줄 아는 일을 계속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어려운 일에 계속 도전하고 학습을 해야 하는데 이는 편안함을 추구하는 인간 본성에 어긋난다. 우리는 더 편해지고 싶고 일보다 퇴근 후의 약속이 더 기다려질 때가 많다.
나는 한 명의 개인일 뿐이지만 회사는 여러 명이 모인 조직이라는 점도 잊지 말자. 조직은 또 개인들의 합 그 이상이다. 그러니 이들이 뭉쳐서 만들어내는 결과는 내가 회사에 미치는 영향보다 훨씬 빠르게 커질 수밖에 없다.
분명 스타트업 초기 마케팅 직원은 그간 본인의 역량을 펼쳐서 회사를 성장시키는데 많이 기여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덕에 훌쩍 성장해 버린 회사의 기대치를 충족시키기는 점점 어려워진다. 회사는 성장을 향해 움직여야 하는 존재기 때문에 역량이 더 뛰어난 사람을 채용하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고, 이 과정에서 실망한 기존 직원들이 이탈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하게 된다.
당연하다. 그동안 뼈 빠지게 노력한 나에게 승진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설령 이러한 배신감을 정신승리로 극복했다고 하더라도 새로 온 신참 상사와의 핏이 맞기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내가 이 회사의 역사와 업무에 대해서 훨씬 더 많이 알고 있는데 신참 상사에게 그걸 다 떠먹여 줘야 하니, 나는 그동안 왜 그렇게 열심히 일했나 싶을 생각이 들 정도다.
이게 표면적으로 고도 성장하는 스타트업의 근속연수는 짧아지고 이직률은 높아지는 이유다.
회사의 성장속도를 따라가는 개인은 정말 없었을까? 아니다, 정말 간혹 있었다. 비율로 보면 5%가 채 안 되지만 이들은 회사의 속도와 본인의 성장 속도를 나란히 했다. 도대체 이들은 어떤 차이가 있었을까. 내가 봐온 바로는 그들에게는 초등학생 때 가장 많이 들어보고 머리가 커버린 지금은 꼰대로 치부할 그 단어, 주인의식이 있었다.
맞다, 주인이 아닌데 주인의식을 가지라는 건 억지다. 하지만 이들은 회사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자기 일처럼 생각하며 회사 내의 지식을 스펀지처럼 흡수했다. 본능적으로 내가 속한 곳에서 진행되는 모든 것들이 다 자기 것이라고,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러고 나서 이들은 실제로 나가서 창업을 하거나, 다른 회사의 최고경영진으로 이직했다. 창업하기나 의사결정권자가 되는 연습을 우리 회사에서 한 것과 다름없었다. 얄밉지만 또 감탄스럽다.
이제 짧은 근속연수와 높은 이직률을 꼭 나쁘다고 할 수 있을까? 만약 한동안 이직 고민을 안 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적합하지 않을 수 있지만 성장욕구가 있는 사람에게는 더없이 좋은 회사다. 내가 가만히 있어도 내 주변은 모두 성장하고 뛰어난 사람들이 계속 채워지기 때문에 스스로를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실제로 자기보다 더 뛰어난 사람들 속에 있을 때 성장할 수 있다. 또 변화가 없는 편안한 환경보다 하루가 다르게 빠르게 변화하는 상황에 매 순간순간 적응할 때 어느새 나 자신이 훌쩍 성장해 있음을 느끼게 된다. 물론 이러한 가정도 회사가 건강하게 성장하고 좋은 인재들을 유치하고자 하는 회사일 때에만 성립한다.
이런 메커니즘을 직접 경험해 본 후로, 대기업이 아닌데 직원들의 근속연수가 평균 5년이 넘어간다고 하면 이제는 조금 다르게 보인다. 직원들이 모두 2배씩 성장하는 슈퍼루키들이거나, 성장이 멈춰버린 고인 회사이거나.
회사라는 조직이 어떻게 의사결정을 내리고 움직이는지는 개인과는 사뭇 다르기 때문에, 회사의 메커니즘을 이해하면 우리가 선택을 내릴 때 좀 더 나은 선택을 내릴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