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the Company Thinks #2
행복한 직장 생활을 위해 오늘도 회사라는 묘한 존재에 대해서 좀 더 탐구해 본다. 회사는 왜 태어나서 어디로 달려가는 것일까?
회사를 운영하면서 자세히 관찰해 보면 추상적인 개념이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행동하는 모습에 소름이 끼칠 때가 많아진다. 회사라는 것은 어쩌면 사람과 철학과 문화와 서비스와 고객과 브랜드가 뒤범벅된 복합적인 상(像)에 가깝다.
그런데 마치 생명을 갖고 움직이면서 기쁠 때도 있고 슬플 때도 있는 것처럼 보인다. 대부분의 회사가 법인이라는 말을 쓰는데 이때 사람 인(人) 자를 쓰는 것도 우연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회사는 사람을 담고 있는 그릇이자 사람들로 구성된 집합의 총체다. 그러므로 그 회사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면면이 모여 회사의 모습을 형성하는 한편, 회사도 그 자체로 개별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즉 회사와 이를 구성하는 개인들은 생각보다 긴밀하고 빈번하게 상호작용을 하게 된다.
예를 들어 한때 유행했던 무제한 휴가제도를 보자. 직원 입장에선 힘들게 고생한 만큼 회사에서 쉴 수 있는 시간을 제한 없이 주니 회사가 나를 아끼는구나 라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막상 누군가 길게 휴가를 떠나버리면 항상 인원이 모자라는 회사에서는 공백을 메우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리소스를 가져다 쓰면서 조직 전체의 속도가 느려지게 된다. 그럼 다시금 회사는 휴가제도에 대해서 재검토할 것이다.
이처럼 구성원들과 서로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는 유기체인 회사는 미시적으로는 각종 사건사고들을 겪게 되지만 큰 흐름에서는 예외 없이 향하는 한 방향이 있다. 마치 무엇에라도 홀린 듯 모든 회사들은 본능적으로 모든 리소스를 쏟아부으면서 하나의 좌표점을 향해 가는데, 그 좌표는 바로 '성장'이라는 방향이다.
고전적 의미의 기업의 본질은 주주들의 이익 극대화라고 했던가(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 그리고 이제는 ESG의 가치 아래 사회적 책임도 기업이 짊어지고 가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배당을 해서 주주들의 배를 불려주기 전에, 사회적 책임을 다하면서 세상을 더 살기 좋게 만들기 전에, 더 중요한 기업의 본질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건 바로 멈추지 않는 성장이다.
기업의 성장에는 여러 가지 속성들이 포함되는데, 경제적 이익을 기본으로 하지만 내부적인 문화, 규범과 같은 무형의 것과 사람들의 역량과 같은 인적자원, 효율적으로 업무가 처리되는 프로세스, 브랜드 위상과 같은 소비자 인지까지도 포함한다. 이런 여러 가지 것들 중에서 적어도 무엇 하나는 성장하고 있어야 기업은 존속할 수 있다.
성장이 멈추면 그 순간부터 그 기업은 죽어간다. 혹여 창업자가 어느 정도 기업을 키워놨으니 이제 적당히 유지나 해볼까 하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 아무리 돈을 잘 벌고 있던 기업이라 하더라도 성장을 멈추는 그 순간부터 기업의 방향은 성장에서 죽음으로 180도 바뀌어 한발 한발 움직이게 된다.
왜 회사에게는 잔인하게도 유지라는 개념이 없이 성장 또는 죽음이라는 두 가지 길밖에 없을까?
근본적으로 우리 회사가 가만히 있어도 경쟁사가, 국가가, 또 전 세계가 움직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숨만 쉬어도 매년 물가는 오르니까.
그러다 보니 구성원인 회사원들은 한시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회사가 계속 '더더더'를 외치기 때문이다. 성장하려면 더 영업해야 하고, 더 작성해야 하며, 더 기획해야 한다. 남들보다 빨리 성장하기 위해서 창의적인 방식도 요구된다. 그래서 우리 회사원들은 피곤하다.
하지만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이 있다. 만약 어느 날 회사가 미안한 표정으로 '당신들이 그렇게 힘들어하니까 회사는 이제 성장을 멈추기로 했어'하고 한다면? 그럼 다 같이 죽는 거다. 배가 가라앉기로 했다는데 승무원들이 별 수 있나. 회사와 회사원 사이엔 이런 애증의 관계가 있다.
미시적인 스타트업의 세계에서는 좀 더 흥미로운 일이 벌어진다. 상술한 것처럼 스타트업은 구성원들이 합쳐진 집합체에 창업자 마인드 몇 방울이 더해진 유기체인데 회사가 성장을 멈추는 순간 구성원들은 마치 뉴런으로 연결된 듯 이를 감지한다.
제가 이렇게 스스로를 갈아 넣고 있는데 회사의 성장이 연간 2배밖에 안 된다니, 제가 이걸 계속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어요.
회사가 기반이 없을 때 조인해서 기본적인 프로세스를 세팅하고 좋은 인재들을 발탁하는데 1등으로 기여한 지원팀장의 말이었다. HR 담당자로 시작했지만 나중엔 회사의 모든 살림을 도맡아 할 정도로 성장한 몇 안 되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처음으로 회사가 계속 이런 저성장 상태면 떠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다. 이때 회사의 연간 성장률은 100%였는데도 불구하고!
본인의 야망에 비해서 우리 회사가 성에 차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정말 절묘하게도 저런 대화가 오갔던 시기에 회사의 속도는 기존보다 느려진 상태였다. 8년 차 회사가 되니 새로운 아이디어는 나오지 않았고 관성이 생겨나고 있었다. 이걸 귀신같이 감지하다니 정말 무서운 뉴런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나름 구독 형태의 Recurring Revenue(반복적인 매출)에 기반하여 수익모델이 분명치 않은 다른 스타트업들보다 탄탄한 매출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회계장부 상 영업이익 흑자를 목전에 두고 있었던 터라 대외적으로는 꽤 좋은 점수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새로운 성장동력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것이 Linear(직선적)한 사용자곡선이 아닌 J-Curve의 사용자곡선이어도 좋고, 기존에 없었던 대규모 투자여도 좋고, 새로운 사업모델의 거듭되는 성공이어도 좋을 터였다. 하지만 추가 투자를 바랄 수 없었던 금리 인상기의 매크로 경제와 타이트한 회사 자금상황은 섣불리 새로운 도전을 하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이것이 유기체의 뉴런을 통해 일잘러들에게 감지된 것이었다.
"어? 이 회사 지금 성장이 좀 주춤한 것 같은데? 여기에 내 미래를 맡겨도 될까?"
어떤 의미에서는 새로운 시도나 J-Curve가 없는 그 자체가 성장이 멈춰버린 것과 같은 동의어다. 스타트업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먹어치우며 끊임없이 변화해야 스타트업이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의 명대사에 기대서 표현하면 회사는 언제나 성장하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