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1. Chasing the Big Break #8
두 번의 투자 성공 후 유동성의 힘과 성장하는 지표들에 취해 정신없이 사업을 추진했다.
매장은 여는 족족 이용자들이 늘었고 고객 반응도 성공적이었으니 우리는 PMF(제품과 시장의 궁합)를 매우 잘 달성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보다 30년 이상 앞서 시작했던 미국, 유럽, 일본, 호주 등 선진 시장에서도 검증된 산업이었기에 나는 국내 시장의 성공을 의심하지 않았다. 나아가서 시장 개척자로서 사명감까지 느꼈다(지금도 우리는 사내에서 이 spirit을 매우 강조한다).
정말 모든 사업 지표들이 다 좋았다. 매출액과 이용자수, 전환률, 리텐션, 매장 증가수 등 성장지표는 매년 2배 이상 성장했고 전환 지표들은 탄탄했다. 개개의 매장별로 보면 영업이익률도 40%에 달해 더할 나위없이 매력적이었다. 이대로면 금방 유니콘이라도 될 것만 같았다!
그런데 딱 한가지, 기대와 반대방향으로 움직이는 지표가 하나 있었다. 다름 아닌 현금이었다.
탑라인에서 고속성장을 하고 있어도 요술을 부리는 블랙박스를 거친 것처럼 판관비 등 비용을 제외하고 나면 하단에는 항상 마이너스 손실이 찍혔다. 사업에 막 시동을 걸었던 2018년에는 그럴 수 있다해도 3년이 지난 후에도 적자라는 사실에 이제 더 이상은 성장에 따른 피치 못할 비용이라는 면죄부를 줄 수 없을 것이었다.
당시에 나에게 이건 큰 딜레마였다. 그 동안은 빠르게 늘리고 확장하는 것에만 치중했다면 이제 와서는 우리가 도대체 어디다 그렇게 비용을 많이 쓰고 있는지를 살펴봐야했다. 얘기했듯이 분명 매장 단위에서는 큰 폭의 흑자를 실현하고 있었고 매 순간 고민 끝에 최선의 선택이라고 결정한 비용들이었기에 더더욱 수수께끼 같을 수밖에 없었다.
이미 눈치챈 사람도 있겠다. 지금은 익숙한 개념이지만 이 때는 머리로 알고 있어도 가슴으로 깨닫지 못했던 고정비와 변동비라는 매우 기본적인 개념이었다.
내가 여러 차례 검증한 우리의 사업모델은 일정 요소를 충족하면 변동비를 커버할 수 있는 매우 훌륭한 모델이었다. 여기서 변동비는 매장을 늘리면 늘릴 수록 추가되는 비용을 말한다.
그런데 문제는 고정비였다. 고정비는 매장이 늘어나는 것과 무관하게 발생하는 비용들인데 매장들에서 벌어들이는 이익보다 고정비가 훨씬 컸다. 그래서 수익모델이 좋아도 적자를 면치 못했던 것이다.
딜레마는 이 부분에 있다. 예를 들어 성장하기 위해서는 좋은 인재들이 필요한데 좋은 인재들을 채용하려면 급여 수준도 높아야겠지만 번쩍거리는 사무실과 달달한 복지라는 인프라도 필요하다. 소위 '있어빌리티'에 해당한다.
스타트업 채용시장에서는 멋진 건물에 알록달록한 사무 환경, 간식도 무제한으로 준다는 양념까지 얹어야 하는 인재 유치 전쟁이 매번 벌어진다. 스타트업이라고 칭해도 어차피 유명하지 않은 회사들이 대부분이고 우리 회사 정말 최고에요! 라는 겉치장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인건비, 사무실 임대료, 복지 모두 고정비에 해당한다. 좋은 제품을 만들고자 해도 많은 인력과 연구개발비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 제품을 알리려면 마케팅비용이 들어가고 제품을 유지하려면 운영비가 생각보다 많이, 정말 많이 들어간다.
즉 우리는 공헌이익(매출액-변동비로서 성장할수록 이익을 내는지 알 수 있는 지표)을 많이 창출하고 있었지만 고정비를 커버하기에는 아직 많이 부족했다. 수익모델은 검증했으나 돈을 벌기까지는 매출액을 더 늘려야하고 그 기간을 버티기에는 고정비를 충당할 수 있는 자금이 필요했다.
그래, 그러니까 투자를 받는 거 아니냐고? 참으로 맞는 말이다. 하지만 모든 현실이 교과서와 다르듯 서비스와 제품이 시장에 알려지고 이용자들이 늘어나는 것에는 생각보다 시간이 걸린다. 라이프스타일에 변화를 크게 줄 수 있는 새로운 서비스일수록 그렇다.
최초의 자동차도, 최초의 월드와이드웹(WWW)도 익숙해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문제는 우리가 사업을 정상적으로, 아니 초반의 기대 이상으로 잘 해낸다해도 우리를 둘러싼 경제환경의 변화로 시장 전체의 유동성이 줄어들면 투자금도 끊길 수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걸 간과했다.
우리는 우리의 BM을 검증했고 탑라인 지표도 훌륭했으며 시장 반응도 좋았지만 돈을 벌진 못하고 있었다. 스타트업 블로그에 공공연히 등장하는 데스밸리가 뒤늦게, 하지만 저승사자보다 더 무섭게 우리의 통잔잔고를 불태우며 찾아왔다.
식은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흐른다. 이제부터는 대표의 포커페이스가 중요해지는 시기이다.
작은 회사일수록 회사는 창업자와 동일시되고 모든 직원들은 창업자의 표정 하나, 손짓 하나도 정보로 인지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