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1. Chasing the Big Break #7
2019년에 우리가 처음으로 시리즈A 투자를 받을 때부터 2022년 상반기까지는 유동성 호황이었다. 2020년 코로나를 맞으면서 전무후무한 유동성이 풀려나왔고 이런 자금들은 저금리를 피해 높은 수익을 쫓아 이동했다.
그들의 수익처는 부동산, 주식뿐만 아니라 벤처기업도 있었던 것 같다. 정부는 중소기업육성이라는 명제 하에 모태펀드(정부에서 출자하는 벤처투자 재원)로 돈을 쏟아 부었고 벤처캐피탈 등 민간자본 또한 쉽게 모였다.
무엇보다 우리 생활을 바꾼 음식배달, 중고거래, 새벽배송 등의 서비스들이 출시되며 세상을 바꾸는 서비스는 돈이 된다라는 흐름도 유행에 한몫했다.
어쩌면 나도 이런 유동성 호황의 혜택을 입었다고 볼 수 있다. 그 때는 물론 내가 PT를 잘해서 투자를 받았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큰 돈의 흐름에 올라탔을 뿐이었다.
코로나 임팩트에 익숙해진 2021년 1월 두번째 투자로 100억원을 유치시키며 회사는 승승장구하는 것처럼 보였다. 100억원이라는 세자리 숫자도 회사의 성취를 알리기에 기막히게 좋은 숫자였다.
이때까지도 나는 투자금으로 열심히 회사를 키울 생각만 했다. 캐시버닝 전략은 하지 않으면 바보가 되는 스타트업 시장의 스탠다드이자 영원히 유효할 것 같았기에 투자금도 공격적으로 사용했다. 1년 안에 투자금을 소진하지 않으면 '왜 돈을 안 쓰세요? 성장 안 하실 거에요? 라고 묻는 투자자들도 종종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이가 없다.
하지만 이렇게 돈을 태워서 성장하는 기조는 2022년 하반기 들어서면서 완전히 바뀌게 된다.
미국이 2022년 하반기에 기준금리를 연거푸 75bp씩 올리면서 자금시장은 급속도로 경색됐다. 금리부담이 높아지니까 기업들도 이자비용이 커졌고 무엇보다 스타트업 회사들에게는 더 이상 투자가 이뤄지지 않았다. 돈을 쥔 기관들은 돈이 있어도 시장이 불확실했기 때문에 은행예금에 넣어놓고 추이를 지켜보기만 했다. 당연하게도 문을 닫는 스타트업들이 생겨났다.
그야말로 살얼음판 같았다. 22년 1분기만 하더라도 다들 유동성 파티를 즐기고 있었고 나 조차도 다음 투자에서는 200억쯤 받아야겠다고 생각하던 터였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불과 두세달 사이에 완전히 뒤집혀 버린 것이다. 한주 한주 투자자들의 스탠스가 달라지는게 피부로 느껴졌다.
"사업은 좋은데 지금 우리 회사는 자금 집행을 안 해요."
"지금은 이익 내는 회사 아니면 보지도 않습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저축은행 정기예금에 넣어놔도 8%를 줘요. 망할지도 모르는 벤처투자를 왜 하나요."
OH. MY. BLOODY. GOD.
VC(벤처캐피탈)투자자가 스타트업한테 이익을 기대한다고? 중소기업육성이고 모험자본이고 원래의 취지는 다들 어디 갔단 말인가. 운영자금으로 투자금을 다 태워서 투자를 받아야할 시기가 도래한 스타트업들은 유동성 파티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다가 결국 헐값에 팔리거나 폐업신고를 해야했다.
이 모든게 내가 속한 세계에서 하루가 다르게 들리던 소식들이었다. 심지어 우리 건물 윗층에 있던 스타트업도 사무실을 줄인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많은 스타트업들이 자금난에 허덕이며 폐업을 했다. 나는 이 때 문을 닫은 회사들이 결코 서비스가 좋지 않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몇 가지 변수가 충족되면 분명 수익도 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금이 말라서 죽어가는 회사를 바라보며 창업자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남얘기가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아이러니했던 건 구조조정으로 인해 많은 회사들에서 우수한 인력들이 이탈해서 우리 회사의 지원자 퀄리티가 오히려 올라가는 해프닝마저 벌어졌다는 점이다.
당시 우리는 충분하진 않았지만 40억원의 전략적 투자를 유치하며 조금은 숨통이 트인 상태였다. 하지만 매달 급여로만 나가는 돈이 3억원이었으니 단순 계산해봐도 1년을 넘기기 힘들어 보였다. 이제부터 저승사자가 조금씩 목을 조여오는게 느껴졌다.
조금씩 야금야금 타들어가는 계좌.
나는 이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불면증을 얻게 되었고 탈모까지만 가지 않기를 마음 속으로 바랐다.
그리고 회사를 운영한다는 것이 생각처럼 되지 않는다는 현실의 벽에 강하게 부딪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