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오독노트

<사당동 더하기 25>와 <최선의 삶>

by 정다운

누군가 직업이 뭐냐고 물으면 “아, 글을 써요.”라고 대답한다. 어떤 글을 쓰냐고 질문하면 “에세이 같은 거…” 라며 말끝을 흐린다. 처음엔 여행 에세이로 시작했다. 남미 여행을 다녀와서 그걸 책으로 묶었고, 바르셀로나에서 거주한 이야기로 또 책을 냈다. 제주로 이주해 살며 제주에 대한 책을 또 몇 권 냈다. 음, 그렇다면 에세이를 쓰는 일이 주업인 것 같지만, 사실은 지금 나는 이름이 드러나지 않는 글을 제일 많이 쓴다.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여기에 할애하고 있다. 인터뷰하고, 취재하고 글로 정리한다. 글은 외주 용역 계약을 체결한 회사 이름으로 나간다. 어? 그런데 이 일이 꽤 재미있다. 다른 분야의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듣고, 그 삶을 상상하는 일이 흥미롭다. 나는 이런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계속 하고 싶다, 고 생각한다. 하지만 계약이 종료되면 끝나는 일이다.


남미와 바르셀로나, 그리고 제주라는 내가 발을 디딘 땅의 특별함을 빌미로 글을 써왔다. 이제 제주에 산지 10년이 훌쩍 넘었고, 여행을 가지 않은지도 오래되었다. 사실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는 날이 더 많다. 새로운 사건은 없다. 내가 쓴 글이 지겹다. 내 삶이 지겹단 이야기이기도 하겠다. 나는 계속 쓸 수 있을까. 어떻게 살아야하지. 고민이 많아졌다.


이러다 아무것도 쓸 수 없겠다. 안 되겠다 싶어, 소설 수업도 듣고, 시 쓰기 수업도 신청했다. 철학 수업도 찾아 들었다. 시인이 되고 싶다기보다는, 시를 쓰는 마음이 궁금했다. 소설가가 되고 싶다기보다는, 소설을 쓰는 마음이 궁… (아, 솔직해지자.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은 종종 한다). 그리고 수업을 통해 새롭게 읽는 책이 나를 두껍게 만들지 않을까. 그걸 통해 내가 놓친 내 안의 나를 발굴할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멀리 여행을 가는 대신, 내 일상에 몸을 붙이고 책상 앞에 앉아하는 일들이다. 어떻게든 계속 쓰고 싶어서. 더 잘 쓰고 싶어서. 이걸로 먹고 살고 싶어서.


그러다, <사당동 더하기 25>와 <최선의 삶>을 연달아 만났다. 내가 쓰고 싶은 종류의, 하지만 쓰지 못한 두 종류의 글이 양손에 주어졌다. 그래서 두 책 모두 읽는 동안 나는 독자였다가 저자였다가 했다. 책을 읽는 시간이 꼭 내가 나와 하는 토론 혹은 진로 상담 같았다.



<사당동 더하기 25>는 사당동 재개발 현장과 금선할머니 가족을 25년간을 기록한 이야기다. 아주 아주 구체적인 이야기까지 담겨 있어서 정말 정말 좋았다. 한 문장도 놓치지 않고 읽으려고 했다. 회사에서 하고 있는 일과 일면 닮아서 더욱 그랬다. 물론 나는 한두 시간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 두 장 짜리 글을 쓸 뿐이지만. 언제나 느껴지던 갈증이 이 책을 통해 해소되었다. 최근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를 읽었고, 읽는 동안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인터뷰어와 인터뷰이 사이의 어정쩡한 거리 때문인가, 인터뷰 ‘당하고’ 있는 듯한 아이들의 수동성 때문인가, 나도 모르게 아이들을 대상화해서 보게 되었고 그래서 읽는 동안 내내 몰래 아이들의 가난을 훔쳐보는 기분이 들었다. 불편한 마음으로 책을 덮었다. <사당동 더하기 25>도 그러면 어쩌지 하는 우려를 가지고 시작했다. 하지만 이 책은 그렇지 않다. 이 책의 주인공은 저자가 아니라, 사당동 사람들이고, 금선 할머니를 비롯한 등장인물들은 모두 능동적이다. 그래서 사당동의 사소하고 거대한 이야기들을 누구의 시선도 빌리지 않고 그대로 흡수할 수 있었다. 대상화하지 않고, 다만 읽는 사람이 저 삶을 상상하게 만든다. 그렇지, 나는 이런 글을 쓰고 싶었다. 이런 글을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인류학을 공부해야 하나. 아, 또 옆길로 샌다.



<최선의 삶>은 어디까지가 실제 저자가 경험한 일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구분하기가 어렵다. 꼭 구분 지을 필요는 없지만 읽는 동안 궁금한 마음을 멈출 수가 없다. 그건 내 경험 때문이기도 하다. 대학 때 국문과를 부전공하며 ‘단편 소설 쓰기’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소설을 써 보고 싶어 신청한 수업이었지만, 어떤 이야기를 써야 할지는 잘 모르겠어서 고민하다가, 나의 첫 연애 이야기를 썼다. 하하. 처음부터 끝까지 구석구석 모두 내가 직접 경험한 일이었지만, 학우들 앞에서 뻔뻔하게 허구의 소설인 척 발표했고, 어떤 학우가 ‘PC 통신 게시판에서 볼 수 있는 글 같다’는 평을 했다. 예리하다. 학점은 C+을 받았다. 그 후로 소설은 내 분야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야기를 새롭게 만들어내는 능력이 없는 나는 소설가 자질이 없다고 일찌감치 체념했다. <최선의 삶>을 읽는 동안 나의 C+ 짜리 첫 소설이자 마지막 소설이 떠올랐다. <최선의 삶>은 임솔아 작가의 초기 소설이고, 초기라서 용감하게 쓸 수 있었던 글일 거라고 생각한다. 임솔아의 이후 소설을 읽어보진 못했지만, 아마 작가는 조금씩 자기 안에서 밖으로 걸어 나가고 있을 것 같다. 음, 나에게도 그런 용기가 있었다면 좋았을 지도 모르겠다. 지금쯤은 내 바깥 어딘가를 걷고 있을 수도 있었을텐데


내 이야기가 지겨운, 에세이를 쓰는 사람은, 어디로 가야할까.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써야 할까, 내 이야기를 다른 형식으로 풀어내야 할까. 그나저나 독후감에 내 이야기를 쓰지 않기로 다짐 해놓고서는, 이번에도 실패했다. 대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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