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에 대항하는 사회> 피에르 클라스트르
국가는 원래 존재하고, 권력은 인간의 본능이며, 인간은 더 가질 수 있다면 더 가지려고 할 것이라는 것.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니 생각조차 하지 않고, 흡수해 버린 이유는 무엇일까? 국가와 권력이 이미 존재하는 사회에서 태어났고 자랐으며 배웠고 경험했다. 내가 본 것은 그것뿐이다. 그 사회 속에서 나도 그런 사람이 되었다.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를 읽으며 질문하기 시작했다. 이런 나는 진짜 나인가? 나는 어디까지가 나인가. 국가에 의해 형성된 나를 덜어내고 나면 나는 얼마만큼 남아있을까?
피에르 클라스트르의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는 지금까지 당연하게 생각하고 의심조차 하지 않았던 것을 전복시킨다. 국가가 없는 원시사회에서 국가를 가진 문명사회로 자연스럽게 진화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메리칸 인디언의 사례를 반복해 제시하며 증명한다. 그들의 사회는 '아직' 국가가 없는 사회가 아니라 국가를 거부하며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이며, '생계 경제' 수준에 머물러있어 식량을 구하는데 급급한 사회가 아니라 더 많은 잉여를 생산할 수 있지만 더 일하지 않는 사회라는 것을 설명한다.
읽는 동안 아주 쾌적한 공기 속을 걷는 기분이었다. 걸어본 적 없는 길, 실은 있는 줄도 몰랐던 길이었지만, 내가 이 길을 아주 오랫동안 그리워했다는 걸, 걸으며 알았다. ‘너무 재미있다!!!’ 책의 빈 공간에 나도 모르게 느낌표를 찍으며, 신이 나서 읽고 책을 덮고는, 도서관에 가서 저자의 다른 책 <폭력의 고고학>을 빌렸다. 마침 병렬 독서 중이던 <세계 끝의 버섯>과의 공통점을 혼자 찾아내곤 기뻐했다. 당연한 것을 다시 생각하고, 당연하지 않은 것을 따라가 보는 것은 그 어떤 여행보다 짜릿한 여정이었다.
그리고 이 연구를 넘어 아메리칸 인디언 당사자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그들의 시선으로 말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생각하다 조한혜정의 <탈식민지 시대 지식인의 글 읽기와 읽기 2>를 펼친다. 길에서 길로 연결되는 과정이 너무 즐거워서, 나는 만나는 사람한테마다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 이야기를 했다. 듣는 사람에게 미안하지만, 좋은 길은 좋은 사람과 함께 걷고 싶은 법이니까.
공부의 즐거움을 느낌과 동시에 마지막까지도 연구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못했다. 짧게 일하고 오래 쉬며, 자본가를 위해 일하지 않고 나를 위해 일하고, 추장에게 권력이 없는 사회가 정말 존재한다고? 아니 정말, 정말로 추장에게 권력이 없다고? 일부다처제와 언어를 독점하는 추장이, 권력욕을 가지지 않았다고? 혹여 권력욕을 갖더라도 부족 자체에서 그걸 자정 할 능력이 있었다고? 의심했다. (물론 저자는 추장이 권력욕을 갖더라도 “현실에서는 결코 그렇게 될 수 없다.”라고 단언한다.) 의심의 이유는, 권력으로 형성된 사회에서 대대손손 살아온 탓도 있겠지만, 저자가 소개하는 사회가 어느 부분 유토피아 같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생산하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서 생산하는 삶. 내가 필요한 만큼만 생산하는 삶. 권력을 막기 위해 잉여를 남기지 않는 사회. 그래서 풍요로운 사회. 어, 이 부분은 내가 꿈꾸던 삶과 닮지 않았나?
덜 벌고 덜 쓰며 덜 일하고 더 쉬며 자족하며 살고 싶다는 소망. 그 소망이 어쩌면 나를 서울에서 제주로 이끌었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생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아메리칸 인디언의 삶을 꿈꾸는 동시에 나는 돈을 더 벌고 싶고, 명성도 얻고 싶은 야망을 가지고 있다. 단순하게 말해 아메리칸 인디언처럼 살고 싶지만, 가능하다면 존경받는 추장이 되고 싶다. 그로 인해 권력도 조금 가질 수 있다면 좋겠다. 그리고 그게 내 인생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내 불행은 대체로 거기서 온다.
그런데,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를 읽고 생각한다. 앞선 소망이 진짜 나이고, 뒤의 야망이 국가에 의해 형성된 것이라면? 국가에 의해 형성된 나를 덜어낸다면 아주 조금 남은 진짜 나로 다시 살 수 있지 않을까? 국가와 권력을 코페르니쿠스적 시선으로 다시 바라볼 수 있다면, 국가와 권력이 없는 사회를 상상할 수 있다면, 용감하게 대항한다면, 더 이상 갈팡질팡 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이미 사회와 얽히고 얽혀 있어 그 안에서 나를 도려내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겠지만. 그렇지만, 대항하는 상상만으로 약간 해방된 기분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