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디 크레딧>을 읽고
<레이디 크레딧>을 읽는 지난 2주 간 책을 읽지 않는 시간에도 잔잔한 우울감에 휩싸여 지냈다. 시작은 쉬웠다. 노동과 폭력, 소득과 부채 이분법을 넘은 새로운 시각으로 성산업을 분석한 책이라니! 기존 담론을 벗어나는 문제의식은 늘 흥미로우니까, 힘차게 책장을 넘겼다. 경제 용어가 나올 때면 좀 많이 어려워 속도가 느려졌지만, 그건 뒤에 닥칠 어려움에 비하면 사소한 것이었다. 저자가 오랜 시간 깊이 관여해 촘촘하게 취재했을 정보를 한 장 한 장 읽어가는 동안 점점 마음이 무거워졌다. 저자는 성산업 안에서 벌어지고 있을 구체적인 폭력이나 질병, 개인사, 일상의 괴로움 등에 대해서는 상세히 서술하지 않는다. 사연으로 소개하기보다는 부채, 수입 등 숫자와 그래프, 통계나 팩트를 중심으로 이야기한다. 이런 글에 감정을 몰입하기는 쉽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읽는 동안 마음을 넘어 몸이 아팠다. 실은 지금도 그렇다. 팔이 따끔따끔하다. 이 독후감을 다 쓰고 나면, 오로지 즐거움만을 주는 신나는 소설을 꺼내 읽으려고 한다.
영화 등 콘텐츠에서 성매매는 단골 소재다. 조폭, 룸살롱, 성매매, 매춘 여성. 아 또, 이 얘기야? 지겹네. 한국 영화는 당최 저 얘기 없이 진행이 안돼? 그렇게 치부하고 넘어갔다. 콘텐츠 밖 현실 세계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는 걸 굳이 떠올리지 않았다. 그렇다. 성매매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지 않고 살았다. 피하려고 했다. 노동, 성폭력 문제 등에 비해 성매매는 나와 먼 곳, 그저 한 구석 '음지'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희진 선생님은 흐린 눈을 한 내 손을 끌고 매번 지나쳤던 정거장에 데려가 나를 세운다. 백번도 더 지나쳐 너무 익숙한, 가령 신도림역이나 신길역 같은 데서 내려 보자고 한다. 손에 이끌려 내려서야, 이 역 바깥으로 한번도 나가보지 않았다는 걸 깨닫는다. 도망치지 않기로 했으니 직면하기로 한다. 선생님이 가이드해 주는 길을 따라가다 보면 익숙한 길이 낯설게 느껴진다. 그게 늘 괴롭고 즐겁다. 그러다 보면 낯선 길이 익숙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레이디 크레딧>이 열어준 길은 어땠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괴롭고 괴로웠다.
성매매 당사자 등 연구참여자들의 진술과 신용 정보회사와 대부업체, 은행과 카드사, 추심 업체, 성형외과와 임대업... 등등 성산업에 넓게 펼쳐진 그물과 그 안의 물고기, 해초, 플랑크톤 등등을 죄다 건져다 촘촘히 엮은 이 책을 읽으며, 고통스러웠던 이유는 미처 몰랐던 성산업의 현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수요를 만드는 남성에 대한 혐오 때문이기도 하고, 세상 전체에 대한 환멸 때문이기도 했지만, 사실 가장 괴로운 건 이 일이 나와 무관하지 않다는 걸 깨달아서다.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성산업에 종사하는 여성들 만의 일이 아니다. 신자유주의 시대 우리는 충분한 자유를 누리는 것 같지만, 내 자유의지로 사는 곳과 직업과 가족과… 등등을 선택한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 자본주의와 가부장제 틀 안에서, 자유인 줄 알았지만 사실은 구조가 설계해 둔 대로 고분고분 살고 있었다는 것.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성매매 문제는 해결되지 않으며 그 구조 안에는 매춘 여성들만 있는 게 아니라 나도 함께 있다는 것.
지난 기수 수업 때 읽은 <피해와 가해의 페미니즘>이 떠오른다. 권김현영 선생님은 “법정에서는 강간 ‘범죄’를 다루지, 강간 ‘문화’를 처벌할 수 없다. 강간이라는 범죄를 없애려면 반드시 강간 문화를 변화시켜야 하지만, 법정에서 문화를 처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점이 공동체 차원의 해결이 여전히 우리의 선택지 중 하나가 되어야 하는 이유다”라고 썼다. 나는 그때 독후감에서 <피해와 가해의 페미니즘>이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썼다. 글쎄, 독후감 제목도 ‘희망’이다. 가해자를 깡그리 다 죽여 없애야 성폭력이 해결될 거라고 생각해 왔는데, 이 책은 문화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다 죽이는 건 불가능하지만 문화는 오, 변화시킬 수 있을 것 같다. <레이디 크레딧>에서 김주희 선생님은 “성매매 경험을 가진 여성들에 한정된 구제 활동과 임파워 활동을 넘어 성매매 문제를 이 시대의 ‘여성 문제’로 적극적으로 구성해야 한다. 동시에 금융화, 부채 경제, 신용의 민주화라는 최근의 변화가 여성들의 몸을 본원적 토대로 삼고 확대 재생산하는 현실을 다양한 방식으로 문제화하는 후속 연구와 실천이 필요하다. 앞으로 현실 경제 체제에 대한 여성주의적 비판을 통해 성매매 문제 해결이 모색되길 바란다.”라고 책을 마무리한다. 희망을 느꼈냐고? 희망은 개뿔. 이번 독후감의 제목은 ‘절망’이라고 지어야 할 것 같다. 차라리 여성 한 명 한 명을 구조하는 게 낫겠다. 이 단단하게 뿌리내린 자본주의와 가부장제 구조 안에서 우리는, 성매매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내 삶을, 우리의 삶을 나아지게 할 수 있을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니 나는 '자본주의'가 무언인지부터 다시 공부해야할 것 같은데, 그래도 될까? 그러는 동안 그들의 삶은 괜찮을까? 한없이 무기력하다. <피해와 가해의 페미니즘> 속 권김현영 선생님의 글과 김주희 선생님의 <레이디 크레딧>이 결국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왜 다르게 와닿았을까? 왜 하나는 희망으로 읽히고, 다른 하나는 절망으로 읽혔을까?
<레이디 크레딧>은 세상이 그렇게 단순하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걸 알게 해 줬다. 그리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동료 여성들에 대한 나의 상상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성산업에 종사하는 여성들에 대해 그들의 노동에 대해 나는 손톱만큼도 몰랐다. 나는 나와 비슷한 여성들의 입장만 상상할 수 있다. 모르는 세상이 너무 많고, 알아야할 세상도 너무 많고... 무엇보다 나를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건, 그 세상과 내 세상이 결코 다른 세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모두 나의 일이다. 강남역 살인사건 후 많은 여성들이 말한 "나는 너다."의 의미와는 다르다. 성매매 산업을 뜯어 고치는 일이나, 강간 문화를 변화 시키는 일, 가사 분담 문제를 개선하는 일이나 여성 임금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다른 일이 아니라 결국 같은 일이라는 의미다. 다른 일이었으면 좋았을텐데.
끝으로, 수많은 참고자료와, 통계와, 판례와, 인터뷰와... 이 방대한 자료를 일반 대중들도 읽을 수 있는 책으로 담아낸 김주희 선생님에게 존경의 마음을 보낸다. 화내지 않고, 감정에 호소하지 않고도, 온 마음을 흔들 수 있다는 걸, 그게 가장 설득력 있다는 걸, 이 책을 통해 알았다. 많이 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