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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도 Oct 31. 2021

욕망의 위계

난 내가 오랫동안 음악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홀로 재즈 공연도 보러 가고, 글을 쓸 때도, 일을 할 때도, 음악을 들을 때가 많았다. 그런데 올해 초 재즈 공연이 시큰둥해지기 시작했다. 정확히 드럼을 시작하고 나서부터였다. 무대 위에만 있던 악기를 내가 직접 소리 낼 수 있게 되고, 평생 듣기만 했던 '남의' 음악에 '내' 리듬을 얹을 수 있게 되자, 음악에 대한 환상이 조금은 사그라들었다. 뮤지션들에 대해 갖고 있던 막연한 동경 역시 거의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 언젠가는 일렉 기타 소리가 너무 매력적이길래 한 달을 고민 끝에 일렉 기타도 한대 장만하고 레슨도 시작했다. 드럼 연습하는 게 좋아 집에서 합정까지 왕복 30킬로미터를 달려가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비가 오지 않는 날이라면 매일 연습했고 늦은 밤 12시에 연습실을 찾은 적도 많다. 일렉 기타를 주문했을 때는 기타가 언제 배송되는지 주말 내내 초조해했고, 레슨도 하기 전에 각종 이론 공부를 너무 많이 해서 기타 선생을 당황케 하기도 했다.



글쓰기도 그렇다. 글쓰기 수업을 듣기도 전에 인문공동체 비공개 카페에 잔뜩 글을 써 올리고, 수업이 끝난 이후에도 그렇게, 지난 2년간 난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아니, 멈출 수 없었다. 글 잘 쓴다고 하는 칭찬이 듣기 좋았고, 가끔은 좋은 글이라고 하는 인정이 좋았기 때문이다. 또 언젠가 글을 쓰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그렁그렁 눈에 맺힐 때, 그러다 글이고 뭐고 다 내팽개치고 엉엉 울어버릴 때, 한참을 그러다 퉁퉁 부어버린 눈을 가늘게 떠 다시 글을 밀어 부칠 때, 도무지 표현할 수 없는 진한 기쁨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글쓰기는 내 삶의 일부가 되었고 난 더 이상 글 쓰지 않는 나를 상상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런데 한 달 전, 여느 때와 같이 카페를 보다가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언제까지고 이런 안락한 곳에서만 글을 쓸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올라오는 글마다 열심히 읽어주고 관심 갖으려 노력하는 사람들이 가득한 그곳은 인큐베이터가 아닐까, 단 한 번도 누군가에게 꺼내보지 못한 내밀한 아픔조차 눈치 안 보고 자유롭게 토해낼 수 있는 이곳은, 그 아픔이 읽는 이들마저 아프게 하는 이곳은, 따뜻한 엄마 품속이 아닐까. 세상에 이런 곳이 또 있을까. 한편, 엄마 가슴팍에 파묻혀 바깥세상을 외면하고만 있는 것은 지금의 나에게 수치스러운 일이다. 엄마 품이 필요한 사람들이 마음껏 엄마 젖가슴에 얼굴을 비벼야 할 때, 내가 그 옆에 파고드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나는 그간 충분히 많은 사랑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힘으로 이젠 조금 살만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브런치에 글을 써보고 싶어졌다. 카페와 다르게 브런치는 야생이다. 카페처럼 관심 갖고 읽어주는 사람도 없고 내 삶의 맥락을 알고 있는 사람도 없다. 스승이 예전에 글을 쓴다는 건 바다에 편지를 담은 유리병을 띄우는 것과 같다고 표현했었는데. 글쎄, 그건 아직 잘 모르겠다. 브런치는 사실 거대한 관종의 세계일지도 모르겠다. 유튜브에 유튜버들이 있고 브런치에 작가들, 작가 지망생들이 있듯이. 뭐가 되었든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관심받고자 하는 그 거대한 욕망이 들끓는 곳이 브런치 아닐까. 그런데 관종욕도 나쁜 게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관심받고 싶으니까. 브런치에서 몇 년간 대갈통 깨지는 경험을 몇 번 하고 나면 그 관종욕도 나름의 방향으로 수정되어 나아가겠지. 그래도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 내가 정말 잘하고 싶은 것으로 관심받을 수 있다면 기쁨은 기쁨이겠다.



무엇보다 "글을 통한" 관종욕은 도저히 포기할 수 없다. 지난 한 달간 이 사실을 절절하게 깨달았다. 도무지 포기가 안된다. 작가 신청하면 되겠거니 했는데 떨어지고, 다시 신청하면 되겠거니 했는데 다시 떨어졌을 때도 브런치는 포기가 안됐다. 오기가 뻗쳤다. 그 욕망의 크기가 엄청나다는 걸 알았고 그 방식은 맹목적이었다. 그렇게 드럼 레슨도 일렉 기타 레슨도 다 멈췄다. 악기 할 여력도 관심도 욕망도 사라졌다. 아니 사라졌다기보다 더 큰 욕망이 팩맨처럼 씹어먹은 것 같다. 악기는 다시 생각나면 그때 또 하지라는 생각이다. 음악도 안 듣는다. 그래서 지금 내 머릿속엔 뚱뚱한 브런치 팩맨이 다른 욕망들을 다 잡아먹고 혼자 배 두드리면서 어슬렁거린다.



인생에 삼수는 진리인가. 어찌어찌 세 번째 시도 끝에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진짜 기뻤다. 한 달 묵은, 아니 어쩌면 그것보다 훨씬 더 긴 체증이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처음에는 말이다. 그런데 하루가 지난 오늘은 미쳐버릴 것만 같다. 두렵다. 갑자기 얼굴 없는 타자들이 어른거리고 잠잠했던 초자아가 발동하고 그간 내 글은 진짜 별로인 것만 같다. 지금껏 쓴 글이 100개도 훨씬 넘는데 모두 쓰레기 같다. 그래서 점심 잘 먹고 소화가 안되더니 설사를 했고 오후 내내 누워만 있었다. 1년 반전 글쓰기 수업 전날이 딱 오늘 같았다. 친구가 브런치 선배로서 이런저런 조언을 해줬다. 하지만 오늘 갓 입사한 신입한테 선배의 조언이 귀에 들어올 리 있겠는가. 아. 역시 인생은 실전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좌초할 수는 없지 않은가. 뭐라도 써서 올려야지. 당황스럽긴 하지만 팩맨이 자잘한 욕망들 싹 다 정리해줘서 시원하기도 하다. 안 그랬다면 몇 년간 뻘짓을 하고 나서야 "내가 원했던 건 이게 아니었나 봐" 하면서 질질 짜고 있을게 아닌가. 어쩌면 내 인생 전체가 뻘짓의 연속, 뻘짓의 시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당황스럽다. 음악에 대한 관심, 드럼과 기타를  치고 싶다는 욕망, 이제와 그건  무엇이었나? 한동안 다른 것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맹목적이었는데, 누구보다 열심히 했었는데 갑자기 브런치에 글을 쓰고 관심받고 싶다는 욕망에 밀려 이젠  모습을 찾아볼  없다. 드럼과 기타 욕망은 악기  자체보다 어쩌면 악기를 통해 관심받고 싶다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그럼 악기 욕망이 컸던 과거나 브런치 욕망이 압도하는 현재나, 어쩌면  시간을 관통하고 있는 것은 관심받고 싶다는 마음 아닌가.  얼굴만 바꿨을  사실 욕망은 언제나 같은 자리에 있었구나. 비단 음악 뿐인가. 모터사이클은 어떻고, 스타트업은 어떻고, 모터사이클 여행은 어땠으며, 미국 유학은 어땠나. 지난 내 삶의 궤적은   관심을 받으려는 몸부림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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