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삶을 돌아보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아직 못다 한 이야기도 많고, 아직 기억나지 않지만 그중 괜찮은 이야기도 조금은 있을 것이다. 앞으로도 꽤 오랜 기간 이어나가야 할 작업이다. 이 작업은 과거의 나를 조금 더 잘 이해해보기 위해서다.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나와 조금은 비껴있고 틀어진 각도만큼 과거의 나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에 전착하기 위한 노력은 아니다. 과거를 근사하게 닫기 위한 노력이다. 제대로 닫지 않은 과거는 현재의 내게 짐이 되기 때문이다. 과거의 짐을 계속 지고 가는 것은 내가 더 멀리 나아가는데 그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다. 언젠가 내 이야기, 나를 위한 이야기가 그치면 그땐 너의 이야기, 너를 위한 이야기를 쓸 수 있을 것 같다.
난 지난 평생을 삶과 싸워왔다. 짧다고도 길다고도 볼 수 없는 37년의 삶. 난 삶과 싸우며 삶에 저항하며 살아왔다. 삶과 싸우는 만큼 난 나 자신과 친하게 지내지 못했다.
내 집착 때문이었다. 이건 이래야 하고, 저건 저래야 하고, 이건 이랬으면 좋겠고, 저건 저랬으면 좋겠고, 이러면 행복할 것 같고, 저러면 불행할 것 같고, 얘가 이렇게 해주니까 좋고, 쟤는 이렇게 안 해주니까 싫고, 얘는 이러니까 싫고, 쟤는 저러니까 싫고. 내 안에 좋고 싫음의 두터운 편견의 벽을 세웠다. 편견으로 배척했다. 들어오려는 것을 막고 나가려는 것을 붙잡았다. 한편 난 그 무엇에도 들어간 적 없었고 그래서 그 무엇으로부터 나온 적도 없었다.
내 소유욕 때문이었다. 이걸 갖고 싶고, 이걸 가지면 행복할 것 같고, 이걸 갖게 되면 잃을까 노심초사하고, 이걸 잃으면 불행하다 하고, 불행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다른 걸 가져야 할 것 같고, 그걸 가지면 행복할 것 같고, 그걸 갖게 되면 다시 잃을까 노심초사하고, 그걸 잃으면 다시 불행하다 하고. 불행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또 다른 걸 가져야 할 것 같고. 내가 소유한 것이 나를 표현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소유한 것이 나의 가치라 믿었다. 하지만 난 그 어느 것도 소유한 적 없었고 내가 소유한 것이 나를 표현해주지도 내 가치가 되지도 않았다.
내 아집 때문이었다. 넌 이래야 하고, 넌 이래야만 하고, 그건 이래야 하고, 또 그것이 당연하고, 당연하니까 넌 다시 이래야 하고, 저래야 하고, 그렇지 않은 넌 잘못되었고, 그렇지 않은 넌 못난 놈이고, 그렇지 않은 넌 가해자고, 그렇지 않은 넌 이기적이고, 그렇지 않은 넌 폭력적이고, 그렇지 않은 네가 밉기만 하고. 내 아집만큼 내가 옳다 믿었다. 난 잘못한 게 없다고, 난 못난 놈이 아니라고, 난 가해자가 아니라고, 난 이기적인 사람이 아니라고 믿었다. 하지만 난 그런 놈이었다.
내 두려움 때문이었다. 두렵기 때문에 피하고, 두려워서 묻어두고, 두려워서 거짓말하고, 두려워서 아는 척하고, 두려워서 아닌 척하고, 두려워서 맞는 척하고, 두려워서 숨고, 두려워서 안 하고, 두려워서 말하고, 두려워서 속이고, 두려워서 내뱉고, 두려워서 침묵하고, 두려워서 책임지지 않고, 두려워서 물러서고, 두려워서 미루고, 두려워서 맞서지 않고, 두려워서 떠나고, 두려워서 도망가고. 내 두려움만큼 난 안전하다 믿었다. 안전한 만큼 불안하지 않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난 여전히 불안했다.
지난 내 삶은 집착의 역사, 소유욕의 역사, 아집의 역사, 두려움의 역사다. 집착, 소유욕, 아집과 두려움만큼 난 삶과 싸워왔다. 고고하게 흐르는 삶에 맞서며 삶을 역행했다. 삶이란 물결에 내 몸 싣지 않고 흐름을 거슬렀다.
지난 내 삶은 괴로움의 역사였다. 집착과 소유욕, 아집, 두려움만큼 난 괴로웠다. 괴로움이 자연스러움이라 믿었다. 괴로운 만큼 미래엔 덜 괴로울 줄 알았다. 괴로운 만큼 미래는 좀 나을 줄 알았다. 하지만 삶은 단 한 번도 괴로움을 낳지 않았다. 괴로움을 만든 건 나다. 괴로움에 질식한 건 나다. 내 괴로움으로 너마저 질식케 했다.
삶과의 지난한 싸움에서 난 패배했다. 이제 삶과 싸우지 않는 삶을 살고자 한다. 삶에 역행하지 않는 삶, 삶을 부정하지 않는 삶, 삶에 내맡기는 삶, 삶을 긍정하는 삶, 삶과 친구가 되는 삶. 그런 삶, 그런 자연스러운 삶을 살려고 한다. 삶과의 부질없는 싸움은 이제 이곳에서 멈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