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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도 Jun 04. 2023

헤드락

동대문 러시아 거리에서 샤슬릭 먹는 걸 좋아한다. 특히 저녁 노상에서 시원한 바람맞으며 먹으면 즐겁다. 그날도 부른 배를 두드리며 늦은 봄 저녁의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노상에는 나 말고도 여러 테이블에 중앙아시아, 러시아에서 온 사람들이 밥을 먹고 있었다.



그러던 중 나이 70에 가까운 한국인 취객이 한 테이블에 가서 행패를 부리기 시작했고 불쾌감을 느낀 식당 손님들은 쫓기듯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식당 매니저가 뛰쳐나오더니 짧은 한국어로, 그리고 어쩔 수 없는 그 궁색하고 난처한 미소로, "손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고 물었고, 취객은 그에게도 행패를 부리기 시작했다.



바로 옆 테이블에 앉아있던 난 또 무슨 의협심이었을까. 그곳에서 유일한 한국인 손님이었던 나는 취객에게 내가 여기 한국인 사장이니(물론 거짓말이다.) 꺼지라고 했다. “뭐? 꺼져?” 취객은 내게 다가오더니 위협을 가했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취객 앞에 섰다. 말로만 하지 말고 한판 붙자고 했다.



이제 세상 무서울 게 없는 나지만 그와 몸싸움하려는 마음은 처음부터 없었다. 30대 후반의 건장한 내가 아버지뻘 나이의 취객과 몸싸움하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고 무엇보다 경찰이라도 출동하면 인근에서 식사 중인 외국인들, 특히 불법체류자들, 그러니까 이 사회의 주변인들에게는 날벼락같은 일이 아닌가.



취객에게 조용히 타일러서 쫓아내려는데 그와 눈이 마주쳤다. 그의 눈동자는 내가 어디서 많이 본 듯했다. 술에 잔뜩 취해 동공마저 풀려버린 눈동자, 생기 대신 외로움과 절망감이 자리한 그것, 언젠가 나도 거울 속에서 무수히 보았던 그것. 아, 당신도 힘들구나, 아, 당신의 삶도 녹록지 않구나, 아, 당신도 외롭구나.



몇 분간 얘기 끝에 취객은 기분이 풀려 웃어버렸고 나도 덩달아 웃었다. 난 기분 좋게 헤드락 한번 걸려주고 그가 떠나는 걸 자리에서 지켜봤다. 다시 부는 산들바람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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