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추억은 미화된다고 했나. 작년을 돌이켜보면 작가로서 재미있게 글을 쓸 소스들이 많았던 것 같다. 여행도 두 번이나 가고, 또 여러 가지 새로운 것들을 막 찾아다녔던 덕분에 나름 에세이 글쟁이로 가용할만한 글감들이 틈틈이 있었다. 그런데 최근, 특히 '25-'26년 겨울을 지나면서는 너무 추워서인지 내 활동반경이 줄어든 것인지 글 쓸 거리들이 줄어든 느낌이다.
이럴 거면 소설가를 할까 생각이 문득 들었다. 소설이야 상상의 세계를 구축하면 되니 머리는 더 아플지언정, 글감을 찾아 발품을 파는 몸의 고단함은 덜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현실감 있게 제대로 쓰려고 하면 소설가도 몸이 힘들겠지? 이를테면 형사물을 쓰려고 경찰서에 찾아가 인터뷰도 한다고 하니 말이다. 근데 아직 책 한 권 못내 본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정식 경기도 못 나가본 야구선수가 타자를 할까 투수를 할까 하는 거랑 비슷하게 들릴 일이다.
자신의 경험이 글에 조금이라도 녹아들어야 하는 에세이 작가 입장에서는, 신선한 (또는 꼭 신선하지는 않더라도) 경험에 대한 갈증이 항상 존재한다. 아무리 돈과 시간이 많아도 하루의 시간은 24시간을 넘어갈 수 없는 반면 몸은 하나밖에 없다. 내가 직접 마주하고 경험하는 순간의 범위에는 제약이 있게 마련이다. 따라서 에세이 작가 1명에게 할당된 글감은 유한할 수밖에 없다.
*
유한한 경험을 글에 잘 풀어내기 위해서는 항상 다르게, 새롭게 봐야 한다. 유병욱 님의 '인생의 해상도'라는 책에서는 우리가 '인생을 더 높은 해상도로 봐야 한다'라고 한다. 호기심을 갖고, 음미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봐야 한다. 지금의 나는 얼마의 해상도로 세상을 보고 있나. 고화질 4K 영상이 대중화되었음에도 아직 저화질 720p 영상을 찍는 것은 아닐까.
와인을 잘 마시는 사람은 와인 한잔을 마시더라도 잔을 빙글빙글 돌리고, 향을 맡고, (나는 잘 모르지만) 나름의 전문적인 방식으로 입에 넣고 머금고 넘긴다고 하더라. 나처럼 와알못에게는 그렇게 신중하게 식순을 따라 마시나, 그냥 원샷해 버리나 모든 와인이 비슷하게 느껴진다. 조금 더 떫고 덜 떫고 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반면에 와인 전문가들 입장에서는 아마 한 병 한 병이 완전히 다른 와인일 것이다.
와인은 잘 모르지만, 내 나름대로 일을 할 때는 최대한 해상도를 높이려 노력하고 있다. HR 업무는 특히나 해상도가 중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지나가듯 넘기면 아무 일도 아니지만, 일을 벌이면 한도 끝도 없이 벌릴 수 있다.
십수 년 동안 HR을 하면서, 매 순간순간을 어물쩡 넘어가지 않도록 노력해 왔다. 특히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 생각되면 억지로 더 해상도를 높여보려, 더 의미 있게 해결해 보려 애썼다.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또는 누가 보든, 보지 않든 그런 것들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잘했니 못했니 그런 것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고, 가장 시간을 많이 쏟는 직장에서의 해상도를 높이려는 시도들 덕분에 덩달아 인생 전체의 해상도도 높이려 애쓰게 된 것 같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점심 메뉴 하나를 고를 때도 신중을 기하고, 숟가락을 들기 전 사진 한 장을 남기는 번거로움을 기꺼이 감수한다. 사진을 다시 볼 가능성이 높지는 않지만, 순간의 사람과, 대화와, 음식과, 생각을 기억하기 위한 의식이다.
주말마다 글을 쓰는 것도 비슷한 맥락의 시도다. 물론 언젠가 현생의 바쁨에 매몰되어 호기심을 상실하는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 호기심이 사라지면 글쓰기도 멈출 것이다. 그런 불상사가 없으려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이 즐겁고 기다려져야 한다. 글쓰기가 즐거워야 글을 쓸 것이고, 쓰다 보면 새로운 경험을 필요로 하게 될 것이고, 그 필요성을 자각하며 인생의 해상도를 높이다 보면, 그러니까 호기심을 유지하다 보면 글쓰기가 즐거워질 것이다.
*
요즘 드라마 '도깨비'를 다시 정주행 하고 있다. 벌써 네 번째 정주행이다. 서사가 탄탄하면 전생과 현생을 넘나 든다는 판타지조차 이토록 현실처럼 몰입하게 된다는 것이 매번 놀랍다. 얼굴이 주먹만 한 공유의 비율에 감탄하다가, 수천 년을 사는 도깨비에게 세상은 어떤 해상도로 보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순간이 반복되는 일상처럼 흐릿할까, 아니면 매 순간이 간절한 기적처럼 선명할까.
올겨울은 유난히 춥고 광화문의 칼바람은 날카로워 귀가 아리다. 하지만 곧 다시 봄이 오고 꽃이 필 것이다. 도깨비는 날씨를 제멋대로 부릴 수 있던데 근처에 있다면 얼른 봄이 오게 해 주면 좋겠다. 벚꽃이 피는 날에는 슬쩍 근처 꽃구경을 다녀와야지. 그리고 꽃향기를 맡는 척하면서 거리의 냄새와, 불어오는 온기와, 주변에 만개한 삶의 기대감 같은 것들을 속속들이 맡아낼 것이다.
그날이 오면, 에세이 글감이 없음을 아쉬워하기보다는 새로운 글감을 발굴할 기회가 생김에 분명 감사하고 있을 것이다. 혹시나 마음대로 되지 않아 봄비로 땅이 추적추적한 날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괜찮다. 도깨비의 멘트처럼 '날이 좋아서, 혹은 날이 좋지 않아서' 어떤 날씨든 겨울이든 봄이든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순간을 만끽하는 과정은 대부분이 나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