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연재 세 번째 산문집, '깨달은 순간의 메모들'을 마무리합니다.
글이란 무릇 읽는 분들을 위한 글이어야 하는데, 이번 산문집에서는 유독 제가 제 자신에게 남기고 싶었던, 저를 위한 글들을 써내려 왔음을 자백합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사람들을 만나며, 좌절감과 만족감을 왕복하며 매 순간 얻은 깨달음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 깨달음들은 조금만 시선을 돌려도 신기루처럼 사라지곤 했지요. 순간의 깨달음들을 붙잡으려 끄적거리던, 일기장인지 메모장일지 모를 묶음이 세월이 쌓여 벌써 수십 페이지가 되었습니다.
이번 산문집은 그 메모들의 일부를 발췌하고 각색하여 써 왔습니다. 20회가 된 지금까지도 여전히 평범하고 부족한 제 기록들을 읽어주신, 같은 시대를 함께 살아가고 계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에세이인지 자기계발서인지 모를 정이든씨의 글들은 누구에게나 타당하고 필요한, 정답지가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연습장에 써 내려간 풀이의 흔적에 가깝습니다. 각자는 각자의 장면에서 너무나 다양한,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정의하며 존재하고 있습니다. 정이든씨의 좁은 식견에서 비롯된 몇 마디 말과 단어가 정답을 정의하려 한다면 그것은 오만한 시도입니다.
'~해야 한다'라는 성급한 결론에 도달해서는 안 됩니다. 세상은 앞으로도 계속 바뀌고 인간은 누구나 실수와 성공을 반복할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모든 것들은 가설이고 과정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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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무엇이라도 내뱉어 보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서툰 글과 말이지만 세상에 내보이다 보니 조금씩, 아주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번 산문집도 제게는 나아감에 의의가 있었습니다. 글을 쓰는 과정은 구불구불한 삶의 굴곡의 깨달음들을 되새김질하는, 바람직한 과정이었습니다.
깨달음을 쌓아 올려 삶의 낮은 봉우리에라도 근접했냐고 묻는다면 물론 그렇지는 않습니다. 저는 늘 부족하고 깨달음을 갈망하는 사람으로서 별로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성공이니 하는 거창한 어떤 것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입니다.
중요한 것은 인생의 온기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깨달음은 창고에 쌓아두기만 하는 재화가 아닙니다. 불을 지피는 땔감이 되어야만 비로소 그 의미가 있습니다. 꾸준히 우리를 데워주는 모닥불로 피어날 때 깨달음은 텍스트 너머의 의미를 되찾습니다. 멈추지 말고, 계속해서 깨닫고, 기억하고, 되뇌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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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집을 마무리하는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니, 제게는 선명하게 기억하고 싶은 특별한 순간의, 깨달음을 비롯한 모든 구성 요소를 기록하고 싶다는 태생적인 욕심이 있는 것 같습니다. 특정한 시간과 공간 속에 살아있었다는 흔적으로서, 그 순간 자체를 온전히 남기려는 시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듯합니다.
온전함 속에서, 몇 마디의 깨달음은 일부에 불과합니다. 그 순간을 요약해둔 제목 같달까요. 제목만큼 대표성을 지닐 수 있는 것도 없겠지만, 제목만으로 모두를 대체할 수는 없음을 깨닫습니다.
더욱 능동적으로 기억해 내야 하는 것은 편안한 주말 오후에 마시는 커피 한잔과, 맑고 포근한 봄날씨, 그리고 우리가 나눈 대화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메모만 하지 말고 사진을 많이 찍어야겠어요. 정든 순간, 정든 사람과의 정든 대화를 더 기억해 내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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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메모장에는 여전히, 미처 완성된 글로 담지 못한 수많은 생각과 메모들이 잔뜩 쌓여 있습니다. 나아가기 위해, 언제든 어떤 형태로든 저는 계속해서 글을 쓰게 될 것입니다. 그 길에서 마주할, 깨달은 순간의 메모들, 정든 순간의 말들 또는 빛나는 그 모든 순간들을 기대합니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