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너무 많았던 적이 있다. 많다의 기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정의하기 어렵지만 매번 내가 꿀 수 있는 최대한의 꿈을 꿨던 것 같다. 대통령부터 과학자까지, 하고 싶은 것과 되고 싶은 것이 많았던 어린 날, 그리고 제법 어른이 되어서까지도. 모든 것을 다 내 뜻대로만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알아챈 그 순간까지도, 나는 짐짓 모른 척하며 꿈의 크기를 줄이지 않았다.
결국 평범한 직장인이 되었다.
나쁘지는 않다. 일상은 적당히 바쁘고 틈틈이 게으르다. 가장 고민거리는 점심메뉴다. 매일 최선의 점심메뉴를 고르려고 고민한다. 후식으로 커피도 꼬박 챙겨 먹는다.
그 과정을 거치면서, 내가 꿈꾸던 그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기억해 내기는 어려워졌다. 물론 기억 못 할 그 꿈이 현실로 이뤄졌다 하더라도 나는 여전히 바쁘고 게을렀을 것이며 점심메뉴를 고민하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오후에는 졸음과 싸우고 있을 것이다. 큰 틀에서 보면, 꿈은 이미 이뤄졌을지도 모른다.
미래를 기대하는 것을 왜 꿈꾼다고 하는 것일까. 간밤의 꿈처럼 막상 깨어나면 기억에서 흩어질 것이라 꿈인 것일까. 그런 꿍꿍이로 누군가가 '꿈'이라는 말을 중의적으로 쓰기 시작했다면 너무 꿈꿈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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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도 살짝 풀렸겠다, 퇴근하고 지하철 한 정거장만 걸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여유 있게 운동 겸 산책을 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매번 그레이톤으로 휙휙 지나가던 종로 길거리의 풍경이 노랗고 붉은, 다채로운 꽃밭처럼 느껴지는 꿈을 꿨다.
하지만 웬걸, 막상 퇴근 무렵이 되니 급격한 피곤함이 엄습했다. 야심차게 기획한 산책 프로젝트를 다시 떠올렸으나, 출입구에 카드키를 태그하는 순간 꽃밭은 다음으로 기약하고야 말았다. 나는 어제와 똑같은 표정과 속도로,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길 한번 벗어나는 게 이리도 힘들구나.
예전에는 정해진 길로 가려고 해도 자꾸만 벗어나던 발걸음이, 이제는 한 발짝 억지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완전히 꽃밭 꿈을 버린 것은 아니다. 조금 더 의미 있는 삶에 대한 갈망의 빈도는 줄었으나 강도는 여전히 높다.
갈망은 꿈과도 같다. 채우려 하는 순간, 잠에서 깬 직후의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여행을 가면 또 다른 여행을 꿈꾸게 되는 것처럼, 갈망의 형태는 다양하고 반복적이어서 휘몰아친 이후에야 지나감을 깨닫기도 했다.
갈망과 놓침과 알아차림이 반복되며 나의 시간은 흘러왔다. 이제는 크게 동요하지 않으니 조금은 어른이 된 덕분이다. 행복과 불행을 감히 판단하거나 재단하지 않으려 한다. 파도를 억지로 거스르려 하면 안 된다. 흐름에 몸을 맡겨야 수월하다.
꿈꾸는 것은 훌륭한 취미다. 지금보다 한참 더 늙은 순간에도 나는 취미처럼, 또는 점심 메뉴를 고르듯이 미래를 꿈꿀 것이다. 10년 뒤가 아닌 5년 뒤, 1년 뒤로 가시거리가 짧아지더라도 괜찮다. 어디로 가야 할지, 행선지를 찾아 두리번거리는 행위는 꽃밭을 감상하기 위해 고개를 둘러보는 행위와 닮아있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무게중심을 조금 앞에 두기 위한 수단으로 꿈은 그 의의가 있다. 시선은 종종 꽃밭을 향해도 무방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