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정이든

오래간만에 특별한 일정 없는 휴가를 쓰고 늦잠을 잤다. 냉동실의 블루베리 베이글을 1분간 데우고 커피머신에서 커피를 내렸다. 집에 있는 날에도 뒷정리가 귀찮다는 핑계로 커피머신은 장식용으로만 쓰던 나다. 그런 내가 오늘은 푹 잔 덕분인지 기꺼이 커피를 내리는 수고를 하기로 했다.


원두가 갈리는 소리와 뒤이어 커피가 컵에 뚝뚝 떨어지는 모습에 생소한 평화감이 느껴졌다. 오전 10시. 원래 이 시간이면 바쁘게 일을 하면서 점심 약속이 있었나? 하고 일정을 체크할 타이밍이었다.


땡! 전자레인지 소리가 났다. 베이글이 다 데워진 모양이었다. 하지만 언제나처럼 베이글은 아직 서늘했다. 전자레인지 시간 맞추기는 너무 어려운 과제다. 한 큐에 성공한 적이 별로 없었다. 매번 너무 뜨겁거나 차가웠다.


베이글과 커피가 준비되고 나서, 소파에 앉아 OTT 앱을 들여다보던 나는 오래간만에 오래된 미국 드리마를 정주행 하기로 마음먹었다.


'왕좌의 게임'과 '오피스'가 떠올랐다. 두 드라마는 판타지 세계 vs 현대 사무실이라는 판이하게 다른 공간의 드라마지만 내게는 큰 공통점이 있다. 시즌1만 보고 나서 한참을 이어 보지 못한 드라마라는 점이다. 시즌 1은 너무나 감명 깊게(?) 보았으나 거의 10개에 육박하는 전체 분량을 보고 지레 질렸던 때문이다.


'왕좌의 게임'은 오늘같이 평화로운 날 너무 속 시끄러운 드라마니 유쾌한 '오피스'를 보기로 했다. 키득대며 보다가 어느 순간 소파에서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정신을 차려보니 2시가 거의 다 되어가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그래도 헬스라도 좀 해보려고 했었는데 벌써 2시라니. 시간을 허투루 써 버렸다는 후회가 올라왔으나, 곰도 겨울잠을 자는데 나 같은 미약한 인간이 이 추운 겨울에 좀 잘 수도 있는 게 아닌가 하며 합리화해 버렸다.


점심으로는 라면을 끓여 먹었다. 어제 술을 좀 마셨던 탓에 해장도 필요하던 참이었다. 나만의 스트레스 해소용 라면 레시피가 있다. 바로 '폭탄라면'인데, 사실 레시피라고 하기엔 민망한 것이 그냥 소시지와 치즈와 계란을 넣어서 (만두가 있다면 만두까지) 무지성으로 한 번에 끓여버리는 잡탕 라면이다. 재작년쯤 폭탄라면의 칼로리가 2000kcal에 달한다는 것을 깨닫고는 그만뒀었다. 대신 오늘은 오래간만에 쉬는 날이니 조금 치팅해도 될 것이라며 두 번째 합리화를 시작했다. 대신 1,500칼로리가 넘지 않게 소시지 개수를 조절해 라면을 먹었다. 닭가슴살 소시지를 썼으니 몸에도 덜 나쁠 것이었다.


칼칼한 라면 맛을 치즈가 고소하게 잡아주었다. 그 와중에 소시지가 씹히는 맛이 너무 맛있었다. 만약 흑백요리사 결승전에 나간다면 나는 나를 위한 요리로 꼭 폭탄라면을 만들 것이다.


오래간만에 락앤락에 넣어둔 찬밥까지 크게 두 숟갈 퍼서 먹었다. 포만감과 만족감이 올라오고 뒤이어 어김없이 졸음이 밀려왔다.


이대로 잠들어선 안된다고 생각하며 정신을 번쩍 차렸다. 얼마만의 휴가인데 무엇이든 생산적인 일을 해야만 한다는 위기감에 이번에는 미뤄뒀던 책을 읽기로 했다. 밀리의 서재를 작년 말부터 구독 중인데, 올해는 너무 바빠서 1월이 다 가도록 채 한 권을 못 읽었다. '시작의 기술'이라는 자기 계발 서적을 읽다가, 폭탄라면에 수면센서가 폭탄을 맞은 것인지 그냥 의지가 부족했던 것인지 또 스르르 잠이 들어버렸다.


다시 눈을 뜬 것은 오후 늦게였다. 하루에 두 번 낮잠을 자다니. 너무 오랜만이다. 보통은 어떻게든 나가서 운동이든 글쓰기라도 하려고 아등바등거렸는데, 오늘은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이미 시계가 오후 4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상쾌함과 찝찝함이 공존하는 상태로 부스스하게 몸을 일으켰다. 그래, 그래도 이렇게 시간을 써서는 안 된다. 이제는 움직여야 할 때다. 마치 태엽이 다 풀린 인형처럼 축 늘어져 있던 몸을 억지로 일으켰다.


*


내 인생의 시계를 24시간이라고 보면, 지금의 내게는 몇 시간이나 남은 것일까. 회사에서의 일상에 비유하자면, 지금은 점심시간이 끝나고 다시 사무실에 앉아 슬슬 졸린 타이밍 정도가 되었다. 일과를 잘 마치려면 이 시간을 잘 버텨야 한다는 위기감이 다시 올라왔다.


무작정 밖으로 나왔다. 카페에 앉아 2시간에 걸쳐 책을 완독 했다. 신기한 것은, 어제까지만 해도 에너지가 없다고 느꼈었던 내가 책을 읽는 동안 생각이 또렷하고 집중이 잘 되었던 것이다. 영상으로 따지면 HD 화면에서 Full HD 화면을 보는 느낌이었다. 마치 안개가 걷힌 것처럼 세상이 선명하게 보였다. 평소 일할 때 카페인으로 억지로 꾸며내던 집중력과는 달랐다.


쉼에는 힘이 있나 보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다. 나는 의식적으로 내가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잠깐의 졸림조차 이겨내지 못하는 보통의 사람일 뿐이다. 그러니 나 자신에 대해 너무 기대하거나 채찍질하지 말고 가끔은 달콤한 휴식으로 보듬을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여전히 DNA 각인된 한국인 특성 때문인지 쉼에 대한 죄책감이 마음 한편에 남아 있다. 언젠가는 편하게 쉬려고 달려온 것 아닌가? 왜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처럼 쉬는 날에도 쉬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지.


'노력한 만큼 얻는다'는 명제는 대체로 참이다. 무엇이든 노력한 만큼 그것이 돈이든 명예든 사회적 성공이든 인기든 무엇이든 더 돌아올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렇게 믿고 살았고 지금도 그 생각은 유효하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씩 깨닫곤 한다. 매 순간 항상 남들보다 노력할 필요는 없다. 인생은 계속해서 담금질해야 할 금속이 아니라 무엇이든 만들 수 있는 초등학교 시절 미술용품 같은 것이다.


*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가 일이 너무 힘에 부치던 시절에는 동화에 나오는 유랑악단처럼 천천히 마을을 옮겨 다니며, 사람들 앞에서 재주를 부리며 지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가진 재주도 쥐뿔도 없으면서 말이다. 술로 목을 적시고 영웅담을 퍼뜨리고, 별을 보며 사막을 옮겨 다니는 낭만이 있는 삶은 참 멋질 것 같다.


그런 삶을 산다면 그때는 쉼을 쉼으로써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휴식은 재충전을 위해, 그리고 재충전 너머의 생산적인 그 무엇을 위한 것이 아닌 그 자체로서 야생의 동물들이 동굴에서 웅크리고 안전과 회복을 꾀하듯 그 자체로서의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또는 속세의 사람들이 혹할만한 특별한 의미는 없다 하더라도 은은한 별빛을 이불 삼아 벌레 소리에 잠들며 자연의 일부가 되는 경험으로 충분히 가치를 더할 것이다.


쉬는 것은 삶의 의무이자 존재의 유한함을 인정하는 과정이다. 어떤 하루는 의무를 벗어나 오롯이 쉼에 집중하는 날로 꾸려봐야겠다. 매일 그럴 수는 없겠지만 1년에 며칠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그래도 폭탄라면은 적당히 먹어야지. 저녁까지 한참 배가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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