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

by 정이든



쓸모의 검토


무슨 일을 하든, ‘일의 결과물이 어떤 쓰임새가 있을지’ 상상해 보고 시작하는 것은 일의 최종 성과에 도움이 된다. 당연한 말처럼 들리겠지만 의외로 주변을 보면 눈앞에 닥친 당장의 일만 생각하며 일하는 경우가 많다. 주니어때의 나 또한 선배들 눈에 그랬을 것이다.


아무런 상상 없이 무작정 시작한 일은 중간에 어떤 형태로든 낭패를 겪게 되어 있다. 실패해도 수정하고 보완할 시간이 충분하면 무방하겠으나 대부분의 일은 제한된 시간 내에 최대한의 성과를 거둬야 하므로 일이 산으로 가지 않기 위해 전략과 구상을 잘 짜두어야 한다.


좋은 전략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마지막에서 도달하는 지점-그것이 외부고객이든 상사이든 또는 일의 다음 프로세스이든- 에서 어떤 쓸모가 있는지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이것만 미리 해 보아도 정답에서 크게 벗어날 일이 없다.


쓸모의 검토는 단순히 최종 산출물(end image)을 그려보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다.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그들이 내 일에 대해 기대하고 있는 가치와 수준을 충족시켜 줄 것인가 하는 것들까지 한발 더 나아가 고민해 보는 것이다.


물론 다양한 변수와 운, 심리가 작용하는 자연계 특성상, 100% 계획한 대로 진행되는 일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따라서 전략을 짠답시고 시간만 끌기보다는 일단 시작해 보는 것이 오히려 나을 때도 있다. (유튜브를 하기로 마음먹고 구상만 몇 년째 하는 나만 봐도 그렇다.) 실행을 통해 작은 실패들을 거치고, 수정과 보완을 해 나가는 과정에서 성공확률이 조금씩 높아진다.



쓸모의 무쓸모


누군가가 나를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부른다면 슬플 것이다. 그런 불안감을 쫓아내려 주로 남들의 기대를 충족시키려고 살아왔다. 그러나 타인에게 나눠줄 쓸모에 집착하다 보니 나 자신에게 할당한 쓸모가 부족함을 느끼기도 한다. 막상 나 자신에게는 하등 쓸모없는 것들로만 시간을 채우고 있다면 타인에게 어떠한 쓸모가 있는 것이든 그 시간은 무쓸모하다.


돈이나 명성, 사회적 지위 등에서 타인보다 상대적 우위에 있다는 사실로 자기 자신이 더 쓸모 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삶의 쓸모란 서열이나 우위를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카페에서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내리며 손님의 추운 손을 데워주는 일에도 소소하면서 확실한 쓸모가 있다. 사회적인 파급력이나 부, 권력 같은 것들을 생각하기 전에 우리 모두는 딱 한 번의 삶만 거쳐간다는 보다 근원적인 동질성을 본다면 우리 모두는 쓸모 있는 삶을 살고 있다 할 수 있겠다. 그러니, 당신도 참 쓸모 있는 사람.



쓸모있는 관계


오래된 테이프로 벽에 붙여둔 종이처럼 툭하면 떨어질 듯한 위태로운 쓸모로 이어진 관계라 하더라도, 종이가 붙어있는 동안만큼은 종이에 쓰인 글들을 읽을 수 있다. 접착력 없이, 아무런 쓸모 없이 유지되는 관계란 없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서로에게 쓸모를 증명해 나가야만 한다.


다만 언제든 다른 사람으로 대체될 수 있는 형식적이고 사회적인 쓸모만으로는 관계를 유지하기 어렵다. 그런 관계는 쓸모가 없어지거나 사회적 위치가 바뀌면 바로 끊어질 수 있다는 태생적 한계를 가진다.


진정으로 쓸모 있는 관계란 아주 조금이라도 서로에 대한 호기심을 내포하고 있는 관계다. 크기가 크든 작든 관계 없이 서로의 존재에 대한 관심이 한스푼이라도 있다면 진정으로 쓸모 있는 관계가 될 수 있다. 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상호간의 수고로움이 부담스럽지 않은 수준이 어느 수준인지, 관계의 적정성을 찾아 합의해 나가는 노력도 필요하다. 합의된 수준의 관심과 노력을 서로 주고받는 것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나눌 수 있는 가장 큰 쓸모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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