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속도'보다 '방향성'이다.
인생은 속도보다 방향성이다. 하지만 지금보다 덜 영글었던 20대의 내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속도'였다. 남들보다 하루라도 빨리 앞서고 싶었고, 얼른 부자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남들은 미처 찾지 못한 지름길이 어딘가에는 있다고 믿고 요령을 피우곤 했다. 조급했던 것이다.
대학교 때 주식으로 50만 원을 만든 기억이 난다. 정확히는 과외로 모은 돈 100만 원으로 테마주 단타를 쳐서 50만 원을 손해 보고 50만 원만 남겼다. 주식을 정리하던 날, 손실금 50만 원이면 거의 두 달 치 식사를 때울 수 있음을 상기하고는 집 앞 분식집에서 9천 원짜리 돈가스정식을 포기하고 김밥을 먹었었다. 그때 정신을 차리고 나스닥 우량주에 투자해 두었다면 지금쯤 꽤 큰 부자가 되었을 것이다. 물론 그때의 조급한 성격으로는 십몇 년 동안의 주가 부침을 길게 버티지는 못했겠지만.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인생에서 조급하게 뭔가 하려고 했다가 잘 된 경우가 별로 없었다는 사실이다. 인생이라는 마라톤에서는 속도보다 방향성이 중요하다. 골을 향해 방향성을 잘 맞춰나가다 보면, 의외로 속도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인생이란 1등을 가려야 하는 대결의 장이 아니다. 넘어지지 않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순간을 즐기면서 언젠가 다가올 결승전을 웃으며 통과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게 페이스조절은 항상 어려운 일이었다. 매일 뭔가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빠져 무리해서 달리곤 했으니 말이다. 가끔 나의 오버페이스를 자각하면 잠시 숨을 길게 쉬고 완급을 조절하는 것이 효과가 있었다.
남들처럼 뛰지 않고 천천히 걸어가는 것도 하나의 선택이 될 수 있다. 또는 코스를 이탈하여 풍경 좋은 산길로 돌아가도 될 것이다. 삶에는 정답이 없는 만큼 삶의 어떠한 방식도 절대적으로 우월하거나 열등하지 않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모든 삶의 갈래는 존중받아야 한다.
5억 원만으로 파이어하고 지방에 내려가서 텃밭을 가꾸며 최소한의 비용으로 여생을 즐기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인생=달리기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 여유 있고 즐기는 삶을 살겠다고 마음먹은 용기가 대단하다. 그런 삶의 경우에는 완주라는 것이 큰 의미가 없으니 더 이상 마라톤이니 달리기니 하는 형태로 삶을 비유할 수 없을 것이다. 속도 또한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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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속도'보다 '방향성'이다.
때로는 '속도'가 '방향성'보다 중요하다.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면,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 태어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라톤에 출전한 러너들 같다. 특히 초반부에는 부모들의 등쌀에 못 이겨 영문도 모른 채 앞만 보며 달린다. 그러다가 중간쯤 가서는 이탈도 하고 걷기도 하지만 대부분 관성에 의해 계속 달리고 있다.
눈을 뜨면 일자리로 나가서 어떠한 형태로든 생산적인 활동을 수행하며 하루를 보낸다. 적당한 월급과 직장생활의 크고 작은 이벤트들에 정신을 쏟다 보면 내가 왜 달리고 있는 것인지를 생각할 겨를이 없다. 게다가 주변 모든 사람들도 열심히 달려가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러나 5억으로 파이어한 삶이 존중받아야 하는 것처럼, 마라톤 코스에서 이탈하지 않고 달리고 있는 우리의 평범한 인생 또한 존중받아야 마땅하지 않을까? 주변의 직장인들을 면면이 보면 꼭 1등을 해야겠다며 이를 갈면서 뛰는 사람은 별로 없다. 단지 뒤처지지 않기 위해, 가족을 위한 의무감으로, 내 미래에 대한 책임감으로 하루를 달려가고 있다. 이 하루하루도 넓은 의미에서 현 인류 역사의 한 단면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노력하는 사람은 누구나 마라토너로서 인정받을 가치가 있다.
다만 속도를 내지 않고 마라톤을 완주할 수는 없다. 완주하지 못한 마라톤은 의미가 덜할 것이다. 그러니, 방향성도 중요하지만 속도를 내는 법을 알아야 한다. 특히 지치지 않고 꾸준하게 최소한의 속도는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얼마나 더 일을 하고 생산활동을 할 수 있을까? 길어야 20년? 결코 길지도 짧지도 않은 그 시간 동안 작가로서, 코치로서, 그리고 직장인으로서 나는 어떤 성과를 이뤄낼 것인가? 하는 고민을 자주 한다. 하지만 고민만으로는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는다. 인생은 생각이 아닌 행동에 보상한다.
방향성을 얼추 정했다면, 나침반으로 어디가 정북방향인지를 체크하며 1도, 2도를 미세조정하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 일단 자리를 박차고 나가야 한다. 그리고 일단 달려야 한다. 매일 빨리 달릴 수 없지만 언제든, 그리고 꽤 자주 빨리 달릴 수 있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한 번쯤 전력질주를 해본 경험이 특히 중요하다. 한계까지 뛰어본 경험이 있어야 또 필요한 순간에 한계에 근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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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속도'보다 '방향성'이다.
때로는 '속도'가 '방향성'보다 중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함께'하는 것이다.
나는 전문 러너는 아니지만, 올해 달리기를 하면서 오래 평균 속도를 유지하려면 숨 쉬는 템포를 잘 맞춰야 한다는 점을 느꼈다. 루틴하고 일정하게 숨을 쉬고 발을 내딛는 것이 중요했다. 하지만 아무리 연습해도 호흡하는 것이 어려웠다. 적당한 들숨과 날숨의 주기도 잘 모르겠고 코로 숨을 쉬어야 하는지, 입으로 쉬어야 하는지는 여전히 헷갈린다.
나는 이렇게 어려운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저렇게 안정적인 호흡으로 뛰어가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비단 달리기에서 뿐만이 아니라, 회사에서도 일을 하면서도 마찬가지로 가졌던 궁금증이다. 주변 동료들은 언제나 나보다는 더 열심히, 힘차게 달리거나 일하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막상 코칭이나 티타임을 통해 동료들 한 명 한 명의 이야기를 들어보면서, 의외로 에너지가 완벽히 충만한 사람은 없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대부분 그렇지 않은 척하거나 미처 내가 상대방의 힘듦을 캐치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누구에게나 멈추지 않고 달리는 것은 쉬운 미션이 아니었다.
사람들과 얘기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에너지 레벨에 가장 영향을 많이 미쳤던 것은 상사나 동료와의 긍정적 관계, 시너지, 팀워크 같은 것들이라는 것이다. 나도 지난 회사 생활, 아니 전반적인 삶을 돌이켜보면, 호흡과 페이스를 안정적으로 달릴 수 있었던 순간들은 서로 의지할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달리고 있는 순간들이었다.
좋은 속도란 빠르고 느림의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임의로 설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같은 방향을 향해 뛰어줄 수 있는 동료들과 합을 맞추며, 온기를 느끼며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속도가 가장 좋은 속도였다.
서로의 가치를 더하기 위해, 타인이 속도를 조금 더 내더라도 시기하기보다는 기꺼이 응원의 환호를 보내줄 수 있어야겠다. 우리 모두가 최선을 다해, 안전히 완주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번진다면 더 큰 물결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2025년 끝자락, 지금 이 순간에 내 주변의 물결을 함께하는 모든 이가 편안하고 따뜻한 시간들을 보내며 힘차게 다음 걸음을 내딛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