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

by 정이든

한참 중2병에 지배당하던 중학교 2학년 시절, 나는 세이클럽과 천리안이라는 채팅 프로그램을 번갈아가며 전국의 여학생들을 상대로 광역 플러팅을 시도하곤 했다. 소기의 성과는 달성하지 못했지만 얼굴도 모르는 다른 지역의 사람들과 텍스트로 대화하는 경험은 어린 나에게 생소하면서 신기했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초창기 초고속 인터넷이 생기기 직전에는 모뎀이라는 기기를 유선으로 전화선에 연결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뭣도 모르고 오래 사용해서 인터넷 요금이 거의 10만 원 가까이 나와 누나와 함께 집에서 쫓겨날 뻔한 적이 있다. 지금은 휴대폰만 열면 1~2초 만에 인터넷 뉴스를 확인할 수 있으니, 세월이 많이 흐른 건지 기술의 진보가 빠른 건지 잘 모르겠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이 어디 즈음에서 '지잉 지잉' 소리를 내며 연결되던 그 순간의 설렘과 기대감을 여전히 기억한다. 그 시절의 나는 무엇이 그렇게 기대되었을까?


인터넷에 접속해서 주로 내가 찾은 것들은 채팅이나 게시판 사연, 습작 소설과 같은 사람이 생성한 부산물들이었다. 세상과의 연결은 곧 사람과의 연결을 의미했다. 사람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 그 느낌이 주요했다. 그 기대감만으로도 도파민이 나왔던 것 같다.


시간이 훌쩍 지나 AI가 득세하기 시작하는 현재에도 연결의 본질은 여전히 유효하다. 사람은 사람과의 연결을 지향한다. 혼자만의 시간과 단절을 추구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것 또한 태생적으로 타인과의 관계를 전제한 단절이다. 우주 안에 혼자만 남아서 아무와도 상호작용 할 필요가 없는 세상이 온다면, 그때는 혼자만의 시간이라든지, 단절이나 고독 같은 것들은 애초에 무의미한 개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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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을 읽었다. (어려운 책이다. 원문도 어려운데 번역도 친절하지 않았다. 하지만 생각할거리가 정말 많은 책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인간은 누구나 연결되고자 한다. 인간의 스킨십 또한 타인과 하나가 되고 싶은 우리의 욕망을 드러낸다. 근본적으로 하나가 될 수 없기에 역설적으로 연결된 느낌을 끊임없이 갈구하는 것이다.



사랑은 평생을 거쳐 헌신적으로 연습해야 하는 '인간 일반'을 대하는 성격적 특성이자 기술



하지만 연결은 영원하지 않다. 이를테면 평생 배우자의 손을 꼭 잡은 채 일하고, 화장실 가고, 밥을 먹을 수는 없다. 설령 그렇게 한다 해도 누구도 그것을 진정한 의미의 연결이라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연결되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것은 순자산 100억 달성과 같이 정량적이거나 yes or no로 대답할 수 없는 것이다. 책은 일시적인 합일이 아닌, 자아를 잃지 않고 타인에게 능동적으로 다가가는 '성숙한 연결'이야말로 사랑의 본질임을 강조한다.


에리히 프롬은 타인을 진정으로 사랑하기 위해 먼저 자신을 돌보고 존경하고 책임지며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한다. 타인과 자신에 대한 사랑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둘 중 하나라도 없으면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 이는 내 첫 번째 정이든 산문집 『위로연습』에서 했던 이야기와 비슷해서 더 공감이 되었다. 우리는 타인을 위로하려 노력하지만, 스스로를 위로할 줄 모르는 사람은 진정한 위로를 할 수 없다. 나 또한 사람이며 큰 틀에서의 '우리'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나와 타자를 구분하려 하지만 그것은 자연계에서의 생존을 위한 구분으로서 더 큰 의의가 있다. 중요한 것은 나 또한 위로와 감사를 받아야 할 평등한 존재라는 사실이다. 평등하다는 것은 더 중요하거나 더 열등하다고 느끼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그 지점에서부터 비로소 인류애는 발현되고 보편적이고 유효한 의미로서의 사랑이 생겨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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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송년회가 많아서 오랜만에 대학/고등학교 동창들을 만나 편안하고 즐거운 모임을 가졌다. 오랜만에 만나는 동창들은 폭풍 같은 학창 시절을 함께하며 많은 부분이 동기화되어 있던 존재들이다. 이후 사회생활을 하며 많은 것이 덧붙었지만, 여전히 이해관계보다는 과거의 추억에 묻혀 있다. 그로 인해 억지로 관계를 이어갈 동기부여가 조금 덜 하다 하더라도, 속 알맹이가 영글어 가던 그 시절 함께 동기화되고 연결되었던 경험들이 존재하는 것 만으로 나에게는 소중한 관계들이다.


평소에는 코칭을 하면서, 또는 1:1로 대화를 나누면서 타인과의 연결을 느끼곤 한다. 단순히 식사와 커피를 함께 한다는 것을 넘어서, 동기화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종종 있다. 그것은 짧게 스쳐가는 복도에서의 대화든 진지한 고민상담이든 상황과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나와 결과 생각이 비슷한 사람과 서로를 의도 없이 공감해 줄 수 있는 그 순간에 찌릿- 하고 생각이 각성될 때가 있었다. 각성의 순간들이 모여 나를 성장시키고 시야를 넓혀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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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연결에 너무 집착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도 든다. 사람은 연결이 좌절되었다고 느끼는 순간 지레 포기해 회피형이 되거나 만회하려고 무리수를 두기도 한다. 나도 때로는 그러했을 것이다. 모든 연결은 끊어질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지.


게다가 미래에는 연결이라는 것이 더 어려워질 것 같다. 기술이 더 발달하면 세상은 더 각박해지고 사람들은 유대감을 잃어갈 것이다. 관계의 역치는 높아지고 접근성은 현격이 줄어들어, 천리안 시절과 같은 단편적이고 초보적인 연결로는 어떠한 감흥도 얻지 못하는 시대가 올 지도 모른다.


그러니 오히려, 지금 나와 연결되어 있는 모든 소중한 존재들에 더 열심히 감사하며 살아야겠다. 나의 시간과 에너지가 유한한 반면 고마운 존재들은 너무나도 많아 아쉽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해 감사하고 그동안 나눈 이야기와 정을 항상 기억해내고 싶은데 말이다.


하지만 대체로 괜찮을 것이다. 우리가 종종 연결된 끈을 흔들어 서로의 연결을 확인하고 온기를 나누는 용기를 잃지 않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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