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정은 May 10. 2021

이혼에서 독립하는 중입니다.

DAY 10. 운명의 수레바퀴, 심판

당신은 지금 어떤 과정 중인가요? 혹은 어떤 과정의 결과를 맞이하는 중인가요? 원하는 결실을 위해 힘들지만 꾸준히 뿌리고 일구고 있는 것이 있다면 써주세요. 결과의 때는 멀고 막막한데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고생 이야기도 좋아요.
  <나를 껴안는 글쓰기> - 슝슝



나는 이혼에서 독립하는 중이다.

결혼을 하면 결혼이라는 테두리에 묶여서 살게 되는 것처럼, 이혼을 하면 이혼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살게 된다. 나는 결혼한 상태의 7년과 이혼한 상태의 3년 동안 한결같이 이런 테두리에 갇혀 살아왔다. '결혼한 상태'에서는 남편 밥은 잘 챙겨주는지, 시댁에 연락은 얼마나 자주 드리는지에 대하여 고민해야 하고, '이혼한 상태'에서는 친척 어른들께는 어떻게 말씀드리는 것이 좋은지 고민해야 한다. 이런 상황은 어른들께서 흔히 말씀하시는 '흠이 있는 사람'이라는 프레임에 스스로가 갇혀있는 것이다.


독립이라는 말이 조금 거창해 보일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소박하고 개인적이다. 독립은 나를 숨기거나 부정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누가 무엇을 말하든 내 마음은 독립한 상태가 되었으면 좋겠다. 브런치에 글을 쓰게 되면서 과거를 돌아보고 울던 날들이 많았다. 나는 눈물에 위로를 받았다. 그러면서 점점 슬픔이 무뎌져 갔다. 이제는 무슨 이유로 이혼을 했느냐가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이혼이라는 경험으로 내가 얻게 된 것이 더 중요하게 되었다.



지금부터 4년 전 나의 심리 상태로 거슬러 올라가 보겠다.


* 4년 전. 무아 無我

  불교에서 말하는 내가 없고, 세상과 일체 되는 그런 감정은 아니었다. 말 그대로 '나는 없는 상태'였다. 돌이켜보면 대체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없던 그 시절, 며느리로서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을 마친 상태였다. 그 결과 나는 '요즘 그렇게 사는 사람이 어디 있어?'라는 친구의 말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나는 회사원이고, 결혼한 여자였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떻게 가슴을 뛰게 하는지를 전혀 몰랐다. 그냥 내가 없었다.


* 3년 전. 시선

 이혼을 결심하고 마무리를 짓는 동안 9개월이 흘렀다. 나는 시선의 바다 한가운데에 빠져 있었다. 타인으로부터 흘러 들어오는 시선은 걱정과 불쌍함이었고, 나로부터 흘러 들어오는 시선은 죄책과 불행함이었다. 나의 모든 행동과 말에 불쌍한 시선과 걱정이 따라왔고, 나는 그 시선을 통해 죄책감을 더욱 쌓아갔다. 그 결과 나는 한결같이 불행한 사람이 되었고, 앞으로도 불행할 사람이었다.


* 2년 전. 오산

 엄마의 '인생 살아보니 별거 아니더라'라는 말을 항상 되새기면서 살았다. 그러다 보니 아무것이나 용기 내서 하게 되었다. 회사에서 하고 싶은 말을 하고, 하고 싶은 일에 도전을 했다. 자연스럽게 이별하는 법을 알게 되었다. 나에게 상처 주는 친구들과 멀어졌고, 손에 쥐고 있던 일, 진급, 체면, 잘 보이고 싶은 마음과 이별하였다. 어느 날 내가 닮고 싶어 하던 빨간 구두가 잘 어울리는 선배가 이렇게 말해 주었다. "정은 씨는 이제 오산 이정은 선생님이라고 불러야겠어요. '오늘만 산다' 이정은 선생!" 나는 그 말이 참 마음에 들었다. 이전까지 나의 쓸데없는 걱정은 오산이었다.


* 1년 전. 독립

 회사에서 독립을 했다. 마음 맞는 사람들과 팀을 꾸려 우리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새로운 곳에서 나를 회복하기 시작했다. 내가 행복하기 위해 꼭 알아야 할 것들을 하나씩 찾아냈다. 꼭 알아야 할 것들은 내가 원하는 것과 버려야 할 것을 모두 포함한다. 어떤 말을 듣는 것이 행복한지를 알게 되었고, 시선에 집착하는 마음을 알게 되었다. 미래를 꿈꾸는 방법을 알게 되었고, 사람들에게 위로를 받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모든 것을 실천할 수는 없어도 그때마다 알아야 할 것들을 알아낼 용기를 알게 되었다. 독립을 위한 마음의 준비를 천천히 해나갔다.




* 현재,

 예전과 다른 새로운 가치관을 만들게 되었다. 시대에 따라 가치관도 변하게 되겠지만, 지금 당장 행복을 위해서 나는 아래와 같이 생각을 정리했다.


1. 결혼은 서로 다른 사람이 만나서 두 개의 세상을 함께 하는 것이다.

 나는 그동안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 하나의 가정을 이루고, 두 사람이 한 몸처럼 세상의 고난과 역경을 이겨나가는 것이 진리라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최근에 내 안의 결혼은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나는 나를 온전한 인간으로서 대하는 사람을 사랑한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온전한 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그 사람을 통해 그 사람의 인생을 바라보며, 비록 한 사람으로 태어났지만 두 개의 세계를 충분히 공감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결혼은 서로를 통해 지속적으로 인생의 공감대를 넓히는 것이어야 한다. 


2. 날마다 쿨한 사람은 많아진다.

 2016년 SBS의 미운 우리 새끼의 관찰 주인공들은 싱글 아들들이었다. 그러다 미운 우리 새끼가 다양해졌다. 아들과 딸을 가리지 않고, 싱글과 돌싱도 가리지 않았다. 시작 후 1-2년이 지나니  이상민을 시작으로 많은 돌싱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2021년 현재에는 내가 가장 즐겨보는 이태성 부자부터 '돌싱 포맨'까지 그야말로 다양한 사람들이 나온다. 날마다 쿨한 사람은 많아진다. 점점 쿨해지는 세상에서 내가 스스로 프레임에 갇히지 않아야 한다.


3. 다른 사람은 생각보다 소문에 관심이 많지만, 생각보다 나에게 관심이 없다.

 나와 친한 몇 명의 선배들은 이혼한 이야기를 가능하면 회사에서 하지 말라고 했다. 언제 어떻게 그 소문이 돌아서 나에게 불이익을 가져올지 모른다는 이야기였다. 누군가 남편은 잘 지내냐고 물어보거든 '네'하고 대답하고, 적당히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실제로 소문은 바람과 같다. 어디서 흘러나올지 모른다. 기본적으로 조심을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구더기가 무서워 장을 못 담근다면 나로서 살 수 없다. 그냥 솔직하게 '이혼했고, 행복하게 잘 삽니다.'라고 말하는 편이 지금의 나에게 어울린다. 바람은 새로운 바람이 불어오면 밀려 나가니까.



 언젠가는 흔들릴지 모를 나의 독립된 마음을 기록할 기회가 되어서 참 다행이다.


#나를껴안는글쓰기 #나껴글

매거진의 이전글 내 영혼에게 바라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