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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은 May 05. 2021

내 영혼에게 바라는 것

DAY09. 은둔자

내가 기꺼이 감당하고 있는 역할들(자식으로서, 부모로서, 직업인으로, 친구/연인/배우자 등으로)이 모두 사라진다면,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나는 어떤 존재일까요? 내 영혼(마음)이 나한테 바라는 건 뭘까요?
  <나를 껴안는 글쓰기> - 슝슝



어린이 날인 오늘은 하늘이 무척 맑았다. 바람이 쌩하고 불다가도 햇볕이 쨍하게 내리쬐었다. 그야말로 하늘이 아이 같은 날이었다.


나는 오늘 친구와 산책을 가기로 하고 집을 나서다가 집 앞 놀이터의 나무를 한참 바라보았다. 분명 며칠 전만 해도 연두색이던 잎들은 제법 푸르러져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그 나뭇잎들이 사정없이 흘들렸다. 흔들리던 나뭇잎들은 아파트 사이의 그늘에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했다. 그늘로 들어갈 때에는 좀 더 짙은 그늘을 만들었고, 다시 볕으로 나올 때는 반짝이며 빛을 냈다. 


나무는 흔들릴 때마다 사각사각 기분 좋은 소리를 낸다.

나는 흔들릴 때마다 어떤 소리를 내었을까?


잎들은 비를 맞고 바람에 흔들리고, 볕을 쪼이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색도 바뀐다. 분명 얼마 뒤에는 저 짙은 녹색 잎들도 색이 바랠 것이고 사정없이 바닥으로 떨어져 버릴 것이다. 그중 몇 잎은 끈질기게 매달려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눈이 올 때쯤이면 나무에는 잎 한 장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까맣게 잊은 채로 나무는 내년에 새로운 잎을 돋아낼 것이다.


갑자기 흔들리는 나뭇잎 한 장이 한 명의 사람으로 보였다. 흔들리는 것도 자연스럽고 그늘진 것도 자연스러우며, 빛나는 것도 자연스럽다. 그 존재만으로도 사랑스럽다. 나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돋아나고 떨어짐을 반복한다.


나는 나의 영혼을 나뭇잎 같은 존재로 대접해 주고 싶다.

바람이 불면 다른 사람들과 기분 좋게 사각사각 소리를 내는 영혼을 가지고 싶다. 어느 날은 그늘에 영혼을 맡기고, 어느 날은 햇볕에 영혼을 맡기고 싶다. 흔들려도 불안해하지 않고, 떨어져도 괴로워하지 않도록.




#나를껴안는글쓰기 #나껴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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