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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은 May 02. 2021

방구석 댄서

DAY 08. 힘

당신 안에 숨겨진 야성에 대해서 말해주세요. 우리는 겉으로는 부드럽고 상식적이 예의 바르게 주어진 역할을 잘하고 있잖아요. 아무도 보지 않고, 모든 기대와 책임을 내려놓고, 마음껏 자유로울 수 있을 때 당신은 어떤 존재인가요?
  <나를 껴안는 글쓰기 > - 슝슝



나는 아무래도 야성보다 이성이 잘 어울리는 사람이다.  나에게 야성은 나를 그대로 들어내는 글쓰기, 기분이 좋을 때 부르는 노래, 흥이 날 때 절로 몸을 움직여 추는 춤이다. 내가 부끄럼을 타는 겁쟁이여서 그런지 야성을 발휘할 기회가 와도 뒷걸음질 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성에 대한 막연한 로망은 항상 마음에 남아있다.


그중에서 가장 어려운 야성은 역시 춤이다. 나는 리듬이 들어간 모든 것을 잘 못한다. 춤도 노래도 구기 운동도 어렵다. 그래도 야성은 가끔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데, 그럴 때 나는 방구석 댄서가 된다. 이 나이가 되도록 춤을 추러 클럽을 가본 적이 거의 없다. (사실 필리핀에서 너무 궁금해 딱 한번 가본 적이 있는데, 가서 쭈뼛대다가 나왔기 때문에 사람들에게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한다. 그 사이에는 -한국에서는-이 생략되었다고 보면 된다. )


대학교 시 '남자 친구는 떠나도 학점은 남는다.'라는 신조를 가지고 살아와서 학점은 좋은 편이었다. 그런데 유독 스포츠 댄스만 'B-'를 받았다. 나는 몸을 쓰는 곳에 너무 부끄러움이 많다.


기억을 되돌려보면 몸을 쓰는 부끄러움은 초등학교 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당시에 어떤 학급활동 시간에 연극을 했다. 전후의 기억은 없지만, 내가 콩지 팥쥐의 콩쥐 역할을 맡았다. 마지막 장면이 임금님의 잔치에 가서 춤을 추는 장면이었는데, 그 흔한 막춤도 못 춰서 삐걱거렸다.


우리 반 친구들 중 어떤 친구가 '너 정말 연기 잘하더라. 마지막에 춤추는 것만 빼고.'라고 말해줬다. 항아리를 막는  두꺼비와 대화할 때도, 참새를 내쫓을 때도 꿋꿋이 계속된 어린 날의 연기가 춤에서 망가지다니...


그래도 방구석은 괜찮다. 야성을 들어내기 딱 좋은 공간이다. 춤을 추고 땀을 흘려도 부끄러울 필요가 없다.

이곳은 남미의 사람들이 가득 모인 광장이고, 그 가운데 케이팝이 흘러나와 플래시몹을 참여하고 있다는 상상을 한다면, 방구석은 드넓은 초원이 된다.



#나를껴안는글쓰기 #나껴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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