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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멜레옹 Jan 13. 2022

아이는 아프고 엄마는 바쁘고

이 시간도 언젠가는 지나가리라

"어머니! 후찬이가 앉아있다가 갑자기 일어서서 발차기를 하다가 바닥에 떨어졌어요. 팔이 많이 아프다고 우는데 빨리 와주셔야 할 것 같아요."


태권도 관장님이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시각은 오후 5시 40분경. 재택근무로 집에서 일을 하고 있던 나는 부랴부랴 외투를 챙기고 집을 나섰다.


집 앞에 상가에 있는 태권도장으로 달려가니 아이는 도장 사무실 의자에 앉아 엉엉 울고 있다. 관장님이 아이스팩을 데고 빠르게 긴급조치를 취해주셨지만 상태는 꽤나 심각해 보였다.


"어머니, 제가 CCTTV를 지금 보내드렸어요. 팔이 완전히 꺾여서 떨어졌어요. 제가 근처 정형외과 연락처도 같이 보내드렸으니까 거기로 빨리 가보셔야 할 것 같아요."

"네 원장님, 감사합니다. 가보고 연락드릴게요."


"엉엉엉 너무너무 아파. 너무 아파."

힘겹게 울고 있는 아이를 안고 뛰었다. 1층에 기다리는 남편과 차를 차고 서둘러 병원으로 갔다.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오른쪽 팔꿈치 위쪽 팔 뼈가 부러졌단다. 팔이 부어 반깁스를 했고, 며칠 뒤 다시 통깁스를 했다.

통깁스를 하고 이불과 하나가 된 아들

힘든 일은 한꺼번에 닥치는 이상한 마법이 나에게도 작동했다. 아이가 통깁스를 하는 월요일부터 유치원 방학이 시작된 것. 거기다가 대선을 앞두고 회사에서 이것저것 하는 일들이 많아져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아름답게 살아내기란 얼마나 처절하게 힘든 일인가?


나는 이 진리를 다시 한번 깨달으며 엄마 아빠가 계시는 부산행 기차표를 끊었다. 남편과 다 같이 내려가자니 그것도 이래저래 불편할 것 같고, 아이와 나만 친정에 일주일간 머물기로 했다.

 

통깁스를 한 월요일 밤 부산에 도착했다. 평소 매일 아침 아빠와 엄마는 근처 파크골프장으로 가서 운동을 하신다. 하루 만보를 걷는 날도, 이만보를 걷는 날도 있다며 파크 골프를 너무 재미있어하신다.

하지만 나와 아이의 등장으로 엄마는 일주일간 운동을 가지 않기로 하셨다. 운동을 못하는 것과 더불어 삼시 세끼 아이와 나의 밥을 챙겨주시니 엄마에게 한없이 미안했다.


미안한 감정은 아이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됐다. 추운 겨울, 60대 엄마 아빠가 팔이 부러진 7살 손자를 밖에 데리고 다니며 놀아주기란 힘든 일이다. 코로나도 한몫한다. 결국 아이는 거실 TV에서 나오는 갖가지 만화를 섭렵하며 지루함을 견뎌야 했다.


인터넷을 많이 쓰지 않으시는 부모님 댁은 거실에서만 와이파이가 잡힌다. 아이는 거실에서 TV를 봐야 하고 나는 일을 해야 하니, 내가 그 자리를 비켜주는 것이 모두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다. 화요일부터 수요일, 목요일 3일 연속으로 나는 카페로 출근하고 있다.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6시까지 카페 가장 구석자리에 앉아 일을 처리한다. 평소 좀 쉬어가며 일할 때도 있지만, 유독 이번 주 일이 2배 3배 몰렸다. 집에 돌아가면 엄마가 맛있는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있다. 엄마는 진짜 요리를 잘하신다. 부럽다. 그리고 어찌나 요리 하나하나에 정성을 기울이는지. 놀라울 정도다.


"엄마. 어쩜 그렇게 맨날 맛있게 요리를 해? 진짜 이건 존경이다 존경."


엄마는 내 말을 듣고는, 바쁘게 일하는 내가 안쓰러운지 그저 씩 웃고 만다. 그렇게 맛있는 밥을 먹고 아이를 씻겨 재우고 나면, 다시 몰래 거실로 나온다. 해외 독일, 미국 사무소와 연락을 빨리빨리 해야 하는데, 밤이 되어야 이 사람들이 일을 하니 늦어지지 않으려면 내가 밤에 그들에게 바로바로 컨텍하는 수밖에 없다. 몇 가지 일을 처리하고 하니 밤 12시가 가까워진다. 다시 아이가 잠든 방으로 가 잠을 청한다.


아이는 아프고, 엄마인 나는 바쁘다. 힘들다. 그런데 너무 바쁘니 힘들다는 감정에 과몰입되지는 않는다. 다만 그저 마음속으로 이 시간이 언젠간 지나갈 것이라는 믿음만 붙잡고 있다.


‘2주~3주 뒤면 아이는 깁스를 풀 것이고 대선이 끝나면 나도 한 숨 돌릴 수 있을 거야. 시간은 지금도 흐르고 있잖아. 힘든 상황 속에서 하나씩 일을 처리하고 있는 내가 대견해.’


이렇게 혼자서 셀프 칭찬, 셀프 위로를 하며 오늘을 버틴다. 이제 내일은 금요일. 나는 내일도 어김없이 카페로 출근할 것이다. 일이 끝나면 바로 기차를 타고 집으로 올라가기로 했다. 나 때문에 며칠간 운동 못한 엄마에게 미안해서다. 미안함과 고마움의 감정이 뒤섞였지만, 내 감정을 깊이 헤아리기에는 너무 바쁘다. 엄마란 다 그런 존재인 걸까. 내 아이에게 나는 그런 엄마인 걸까. 여러 생각들이 길을 잃고 이리저리 내 머릿속을 방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지금만큼은, 지금 상황에서 내가   있는 최선을  하고 있다고, 너무 자책하지도 말고 너무 괴로워하지도 말라고  자신에게 말해주고 싶다. 엄마도 사람이니까. 엄마의 인생에도 힘든 시간은 오기 마련이니까.


  하고 있어. 그리고  여전히 좋은 엄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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