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 일 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
“더 이른 시간 표는 모두 매진입니다.”
아침 7시 10분, 첫 출근이라 설레고 긴장되는 마음에 서두르다 보니 기차역에 30분 이상 일찍 도착했다. 앞 시간 표로 바꾸려고 했지만 이미 모든 표가 매진이라고 했다.
이른 시간이었지만 기차역 안에 배치된 의자에는 사람들이 거의 다 앉아 있었고, 종종걸음으로 플랫폼을 향해 걸어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동안 내가 침대에서 편하게 잠자던 시간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구나’
오랜만에 하는 출근이라 감회가 새로웠다. 런던에서도 일을 했지만 2020년 3월부터는 쭉 재택근무를 했던지라, 출근길에서만 접할 수 있는 특유의 에너지를 느껴보기는 참 오랜만이다.
한국에 와서 새롭게 취업해 첫 출근을 하려니, 문득 아이를 낳고 키우며 ‘일 할 수 없는’ 상황을 견뎌야 했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꼬물꼬물 손가락과 발가락을 움직이며 옹알거리던 아이는 이제 ‘엄마 이거 몰라? 나랑 공부 좀 같이 해야겠네?’라고 말할 수 있는 수준까지 성장했다. 여전히 부모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어린이이지만, 영아를 벗어나 유아가 된 아들은 이제 스스로 옷도 입고 밥도 먹는 ‘형아’가 되었다.
긴 긴 터널을 지나다 보면, 과연 이 터널에 끝이 있을까 두려운 마음에 휩싸일 때가 있다. 가도 가도 빛이 보이지 않을 때, 마치 이 터널은 끝없이 펼쳐진 무한한 어두움이라는 착각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결국 인생의 모든 것에는 ‘끝’이 있고 그 끝에는 제각기 다른 빛이 기다리고 있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 걸어가다 보면, 나만의 빛을 만날 수 있다.
군인 시절, 힘든 훈련을 할 때마다 나는 머릿속에서 이 문구를 무한 반복했다.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다,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다,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다,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다.....’
그렇게 내 앞에 선 동기의 전투화 뒷굽만 바라보고 걷다 보면 (혹은 뛰다 보면) 훈련이 끝나 있었다.
결국 나는 출산과 육아라는 ‘악명 높은’ 터널을 지나, 다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처음 영국에서 일을 다시 시작했을 때의 긴장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컸다. 점심시간이 돼도 배가 안고팠다. 하지만 그 ‘긴장감’이라는 녀석은 내가 업무를 익혀감과 동시에 서서히 사라졌고 일이 손에 붙으면서 모습을 감추었다.
다시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포지션으로 일하려니, 주춤했던 긴장감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하지만 나는 이 또한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서서히 사라져 갈 것임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내 가치와 부합하는 새 일터에서 일하게 되어 감사하다. 아이를 봐줄 수 있는 가족들이, 유치원이 있음에 감사하다. 경력이 끊기지 않고 계속 일 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나는 오늘 두려움과 긴장감보다는 ‘감사함’으로 무장하고, 첫 출근을 당차게 잘 해낼 것이다. 일하는 엄마들의 숭고한 밥벌이를 위하여- 오늘도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