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같이 예쁜 빛이 내 삶도 비추기를
나와 남편은 여행이나 나들이를 갈 때 꼼꼼하게 계획을 하지 않는 편이다. 금요일 밤 중에 갑자기 맑은 공기가 필요하다며 강원도로 가기도 하고, 볼 일 보고 돌아오는 길에 훌쩍 한두 시간 거리의 지역으로 놀러 가기도 한다.
토요일인 오늘, 남편은 오전에 운동을 하고 나서는 차량 엔진오일을 갈러 가더니 갑자기 카톡으로 “여보 우리 어디 놀러 가자.“라고 툭- 던졌다.
보통은 먼저 충동적으로 발동을 거는 쪽은 남편이다. 일단 말이 나오면 특별한 이유가 없는 게 아닌 한, 여기에 응하는 편이다. 무계획으로 싸돌아다니다 보면 늘 새로운 곳을 발견하게 되는 재미가 있기에 그냥 남편을 믿고 따른다.
우리는 곧바로 나갈 채비를 마치고 차에 탔다. 집에서 약 1시간 20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세종 수목원을 가보기로 했다. 2021년에 남편이 세종에서 연구원으로 1년 남짓 일을 했는데, 당시 처음 입사한 날 선임 연구원이 세종 여기저기를 드라이브해 줄 때 수목원의 존재를 알았다고 한다.
“세종이 나무도 많이 심고 참 잘해놨어. 한번 가보자. 여보가 꽃도 좋아하고 나무도 좋아하잖아.”
본인이 가고 싶지만 어쨌든 나를 앞세우며 이쁜 말을 하니 기분은 좋았다. (여자들은 이렇게 상대방이 나를 생각해 주는 말과 행동을 할 때 행복을 느낀다) 그렇게 우리는 화창한 날씨를 눈으로 즐기며 세종 수목원에 도착했다.
한산할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생각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수목원을 구경하고 있었다. 우리도 키가 큰 야자수와 특이한 선인장, 아들이 좋아하는 파리지옥까지 희귀한 갖가지 식물들을 구경하며 사진을 남겼다.
그. 런. 데.
평소 같으면 까불거리며 신나게 뛰어다닐 아들이 영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이마를 짚어보니 살짝 열이 난다. 우리는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채 식목원을 나왔다. 밖은 어느새 천천히 해가 지고 있었는데, 사방에 갖가지 나무와 식물들이 노을빛을 받으며 반짝이고 있었다.
아들을 업고 걸어가는 남편의 발걸음을 따라 나도 천천히 걸어갔다. 그때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이 있었으니 바로 주차장 앞에 핀 강아지풀이었다. 분명 그것은 내가 살면서 처음 보는, 불그스름하면서도 핑크빛이 감도는 달콤한 솜사탕같이 사랑스러운 강아지풀이었다. 어린 시절, 누군가 간지럽혀줄 요량으로 몇 가닥 뽑아 놀던, 흔하디 흔한 강아지풀이 노을빛을 만나니 아름다운 꽃보다 더 예쁜 자태를 뽐내는 것이 아닌가.
집으로 돌아가는 차에서도 이 사진을 몇 분째 보았다. 너무 평범해서 남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는 강아지풀이 우리의 인생과 닮아보이기도 했다. 독특한 모습과 특징을 가진 희귀 식물들이 식물원 안에서 그 자태를 뽐낼 때, 주차장 앞에서 부는 바람에 몸을 살랑이는 강아지풀.
하지만 이 평범한 강아지풀도 노을 지는 그 시간만큼은 찬란히 빛나지 않는가!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는가! 아무리 평범하고 흔한 존재라 할지라도, 온몸으로 빛을 품으면 이야기가 달라지는구나. 보잘것이 없어 보이던 존재도 빛을 만나 그 어떤 존재보다 더 당당하고 우아하게 자태를 뽐내는구나.
언젠가 해가 자취를 감추고 어둑어둑한 밤이 찾아올 것이다. 어쩌면 강아지풀은 매일 자신을 가장 빛나게 해 줄 노을만을 손꼽아 기다릴지도 모르겠다. 내 인생이 평범한 강아지풀이라면, 나를 가장 아름답게 해 줄 노을을 만나고 싶다. 나도 저렇게 내가 가진, 꼭꼭 숨겨진 아름다움을 환하게 비춰보이고 싶다. 어쩌면 그 빛은 기다려서 우연히 만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둠이 아닌 빛의 자리로 나아가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스스로 나를 당당하게 해줄 그 빛을 향해 걸어갈 때, 나는 가장 나답게 빛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