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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멜레옹 Sep 06. 2023

나의 두 번째 유산 일기

한 생명이 얼마나 귀하고 귀한지

만 37세가 되던 지난해 겨울, 7주째 품고 있던 생명이 내 곁을 떠났다. 기다리던 둘째였는데 그렇게 허망하게 심장소리 한번 듣지 못하고 이별을 했다.


한동안 힘들었지만 조잘조잘거리는 만 6살 아들이 있어 견딜 수 있었다. 아이가 잠들면 머리를 쓰다듬으며 내게 와준 이 존재에 한없이 고마워하며 눈물을 삼켰다.


“여보, 우리 평강(태명)이가 효자야. 우리 더 건강해지라고 교훈을 주고 떠난 거야. 그러니까 운동 열심히 해보자. 분명히 우리를 다시 찾아와 줄 거야. “


유산으로 마음 아파하던 남편이 내게 건넨 위로였다.  우리 부부는 더 건강해지자 다짐했고 새롭게 크로스핏이라는 운동을 시작했다. 무언가 새로운 배움을 시작한다는 것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음으로써 내게 다시 몰입하고 이겨낼 힘을 주었다. 새롭게 사귄 운동 친구도 생겼고, 땀을 흘리고 난 뒤 찾아오는 개운함과 뿌듯함이 좋았다.


그렇게 운동하고 일하며 바쁘게 살다 보니, 7개월만에 다시 아기 천사가 찾아왔다. 올해 7월 초의 일이다. ‘기쁨’이라는 태명을 지었다. 정말 기뻤고, 앞으로 쭉 기쁨만 가득하고 싶었다.


여름휴가철이라 병원 원장님도 휴가를 가고 나도 휴가를 가고 하다 보니 검진이 늦어졌다. 아기집만 확인하고 2주가 흘러 주수로 8주가 다되어 산부인과를 찾았다. 유산되었을 때 혼자 산부인과를 갔다가 심장소리를 듣지 못하고 벤치에서 엉엉 울었던 기억이 있다. 이번에도 아주 살짝 걱정은 되었지만 그래도 별일 없을 것이라고 믿었다.


아이에게 동생 심장소리 들려주겠다며 온 가족이 산부인과를 찾았지만,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젤리곰같이 귀여워야 할 아이조차 보이지 않았다. 병원을 가지 못한 2주간 틈만 나면 ‘8주 초음파’, ‘심장소리’ 같은 키워드를 검색했던지라 나는 내 배에 초음파 기계가 닿자마자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걸 직감했다.


“내려와서 설명드릴게요”


지난번 유산 이력을 알고 있는 의사 역시 당황하며 또 비슷한 상황이라고 알려줬다. 3일 뒤 재방문에서 난황의 모양이 달라지고 선명히 보인다며 주수에 맞지는 않지만 심장이 뛰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그렇게 나는 다시 이틀을 기다렸다. 희망고문이라는 표현은 이럴 때 쓰는 것일 테다. 보이지 않는 작은 생명이 숨을 쉬기를 기다리는 48시간의 기다림. 제발 살아달라고 제발 숨을 쉬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며 버티는 인내의 시간.


1분이 하루 같던 시간들이 지나 다시 병원을 찾았고 나의 ‘희망’ 고문은 끝끝내 희망 ‘고문’으로 끝나고 말았다. 수술을 하고 집에 돌아와 남편과 나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참 많이 울었다. 결혼 9년 차, 남편의 눈물을 거의 본 적이 없는데. 나만큼 많이 속상했던 모양이다. 그렇게 기쁨 이의 존재는 큰 슬픔이 되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유산으로 수술을 한지 약 4주가 지난 시점이다. 글을 쓰는 중간에 갑자기 눈물이 터져 울기도 했다. 왜 내게 이런 일이 생긴 걸까 왜 나만 이런 일을 겪어야 할까 억울하고 원망스러운 마음이 올라왔다.


사실 두 번째 유산은 첫 번째 유산보다 더 마음을 새로 다잡기가 힘겹다. 다시는 아이를 가질 수 없을 것만 같은 두려움, 또 아이를 갖더라도 다시 아이를 잃을 것 같은 두려움이 나를 압도한다. 당장 내 몸부터도 완전히 회복이 안되었고 마음의 회복은 더욱 더디다.



요즘 매일같이 칼부림 사건으로 무고하게 희생된 사람들을 뉴스에서 본다. 안타깝다 정도로 생각하고 넘길 기사도 남 일 같지 않다. 도대체 저 사람들이 무슨 잘못이 있다고 저런 변을 당했을까. 저들의 가족은 마음이 얼마나 찢어지게 아플까. 이 세상에 아픔과 한을 안은 채 살아가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


슬픈 마음은 슬픈 마음을 먼저 알아보는걸까. 그냥 눈물이 났다. 내 아픔의 크기가 커진 만큼 다른 사람의 아픔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사람들의 마음에는 말못할 크고 작은 아픔이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됐다.


문득 같은 아파트에 사는 한 언니가 생각났다. 결혼하고 첫 번째 임신을 했다가 5개월 정도에 아이가 잘못되어 잃고 두 번째 아이 역시 유산했다고 했다. 그렇게 힘든 마음고생 끝내 낳은 아들이 벌써 초등학교 6학년이다. 언니의 이야기를 들었을 땐 그냥 힘들었겠다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아이를 잃는 슬픔이 무언지 경험하고 나니 그 언니가 겪었을 고통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해됐다.



나는 여전히 내 마음을 추스리기 위해 애쓰고 있다. 괜찮냐는, 힘내라는 가족과 지인의 위로를 받았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내 마음에 가장 큰 위로룰 준 사람은 예전에 영국에서 살 때 알게 된 남편의 그리스인 친구다. 왓챕 보이스톡으로 전화를 하는데 그 친구는 너무 안타까워하면서도 그런 일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다고,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담담히 말해주었다.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 그 일이 내게 일어났다. 평강이 도 기쁨이도 떠났지만 MBTI에서 극 T성향인 아들이 “그럼 평강이는 천국에서 안 외롭겠네. 기쁨이가 있어서.”라고 내뱉는 말에 어이가 없어 웃음을 짓는다. 아들까지 동생이 떠나 슬퍼했다면 내 마음은 더 찢어질 듯 아팠을 것 같다. 다행히 T형 아들은 “엄마 그럼 이번이 연속 두번째 실패야“라고 말해줘서 “응 맞아. 연속 세 번이 되면 안 될 텐데”하고 맞받아칠 수 있다.


슬픔이 기쁨이 되어, 다시 새 생명이 찾아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제는 꼭 그렇게 되게 해달라는 기도또한 내려놓았다. 혹여 그렇지 않더라도, 두 번의 유산은 내게 한 생명의 소중함을, 한 생명의 고귀함을 진정으로 깨닫게 해 준 사건이었으니 이 또한 감사하려 한다. 힘든 여정 다 이겨내고 이 세상에 태어난 나라는 존재부터 더 많이 아끼고 사랑해주려 한다.

식물이 자라듯 내 마음에도 다시 시작할 힘이 자라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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