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카멜레옹 Jul 16. 2020

버스와 배차간격  

BUS STOP.  멈춤은 새로운 여정을 위한 출발임을.

2018.9.4.


오늘은 정말 정말 보고 싶던 동생 세원이를 만나기로 한 날이다. 


내가 서른 살이라는 나이에 신입 사원으로 입사한 회사에서 만난 세원이는 같은 팀 대리로 일하던 나의 선임이었다. 조그마한 입이 마치 새로촘해보이는 참새 같기도 하고 얼굴은 새하얀 세원이는 1년간 회사 생활을 하면서 나에게 많은 힘을 준 고마운 동료였다.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하는 야근 문화 속에서 내가 칼퇴할 수 있도록 먼저 문을 열어주기도 했고 할 말은 하면서 팀의 분위기를 이끌어가기도 했다. 한마디로 나에겐 우산 같았던 존재랄까. 


직급은 세원이가 더 높았지만 나이는 나보다 세 살 아래인데, 내가 결혼을 하고 아일랜드 더블린으로 가게 되면서 퇴사를 하자마자 '언니 언니~' 하며 먼저 다가와 주었다.


결혼을 하고 해외에 살면서도 우리는 계속 연락을 이어갔다. 만날 수는 없었지만 편지로, 선물로 서로의 마음을 전했다. 그러다가 내가 다시 한국에 돌아오게 됐지만 세원이도 두 아이의 엄마가 됐고 나의 가정에도 생명이 태어나면서 시간 맞춰 얼굴 한 번 보기가 그렇게 어려웠다. 세원이는 서울에, 나는 평택에 살아 더 보기 힘들었지만 우리는 어떻게든 시간을 맞춰 오늘 만나기로 한 것이다.


처음 남편과 데이트할 때에도 이렇게 설레었던가. 아침 일찍 일어나 씻고 정성스레 화장을 했다. 아이를 챙겨 어린이집에 보낸 뒤 재빨리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정말 빨리 보고 싶다!'


육교 하나를 건어야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는데, 육교를 건너는 순간에 내가 타야 하는 버스 두 대가 연달아 지나가 버렸다. 아무리 뛰어도 탈 수 없는 시간과 거리. 


'아 저걸 탔어야 했는데...'


아쉬움도 잠시, 저 멀리서 몇 번인지 잘 보이지 않는 버스 한 대가 또 달려오고 있었다. 나도 같이 달렸다.


'일단 뛰어!'


저 버스가 내가 타야 할 버스 일 수도, 아닐 수도 있지만 나는 일단 뛰었다. 50%의 확률이 있다면 기꺼이 시도해보는 것이 맞다고 본다. 특히 이렇게 1분 1초가 아까운 때에는 더더욱. 가까스로 육교 계단을 내려가며 보니 다행히 내가 타야 하는 버스가 맞다. 정류장에 사람이 없어 지나치려던 기사 아저씨를 향해 손을 흔들며 뛰었다. 다급한 내 마음이 솟짓에서도 느껴졌던 걸까. 기사님이 버스를 세웠고 나는 아슬아슬하게 버스에 탈 수 있었다. 


목동에 사는 세원이가 수원까지 내려와 주고 나는 평택에서 수원으로 가고, 그렇게 우리는 중간 지점에서 만나기로 했다. 오후 3시면 아이를 어린이집에서 찾아야 하기에 시간이 빠듯했다. 


만남에 대한 간절함. 그 간절한 마음이 나를 뛰게 했다.




버스에 몸을 싣고 세원이를 만나러 가면서 나는 '꿈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미 버스가 지나갔다고 해서 풀 죽어있거나 주저앉는 게 아니라 다음에 올 버스를 기대하며 뛰는 것. 그렇게 뛰다 보면 언젠가 내게 꼭 맞은 버스가 반드시 온다는 것. 일반 버스에도 10분 20분, 길게는 한 시간이 되더라도, 어쨌든 일정 시간을 두고 다시 오는 '배차 간격'이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내가 타야 하는 '꿈 버스'도 1년이든 2년이든, 반드시 다시 오는 배차 간격이 있다는 믿음. 그 믿음을 갖고 버스를 기다리는 것이다. 눈을 크게 뜨고 내가 가야 할 목적지를 다시 한번 분명하게 확인해야 한다. 어물어물하다가 이상한 버스에 올라타면 엉뚱한 곳에 도착하고 말 테니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버스를 놓쳐도 뛰어가며 기다리다 보면 반드시 그 버스만의 배차 시간이 온다. 

#아무 버스나 온다고 생각 없이 타면 대략 낭패다.

#내가 타야 할 버스 번호가 무엇인지, 최종 목적지가 어디인지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보고픈 사람과의 만남에 '늦은 때'란 없고, 꿈을 향한 도전에 '늦은 때'란 없다.


'그래, 난 다니던 직장에서 퇴사했고 지금은 한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야. 하지만 내가 눈을 크게 뜨고 내 갈 길을 명확히 한다면, 반드시 내게 맞는 버스에 올라탈 때가 올 거야. 반드시.' 



BUS STOP. 

'멈춤'은 새로운 여정의 '출발'을 위한 또다른 '시작'임을! 



작가의 이전글 셀프 도배 _ 헌 것과 새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