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관생도 시절 _ Chapter 1. 입교
# Chapter 1 입교
이야기는 17년 전, 내가 눈을 떠서 감을 때까지 공부만 하던 고3 시절로 돌아간다.
'하늘을 날 수 있는 비행기를 타고 싶다.'
이것이 내가 사관학교를 가게 된 공식적 이유였다.
물론 하늘을 정말 날고 싶었다. 하지만 이보다 조금 더 근본적인 이유를 말하자면, 솔직히 당시 집안 형편이 어려웠다. 내가 중학교 1학년 때부터 IMF가 시작됐고 나는 그 흔한 새 교복 한 번 입어보지 못했다. 선배들이 3년을 입고 남겨놓고 간 헌 교복에서 사이즈에 맞는 것들을 골라 입었다.
한 살 위 오빠는 1년 전 부산에 위치한 한 사립대학교에 진학했고, 이제 내가 대학을 갈 차례인데 부산에 있긴 싫었다. 서울로 상경하자니 내가 갈 수 있는 국립대학교로는 서울대가 있지만 수시에서 보기 좋게 낙방했다.
'부산대는 가기 싫은데.'
엄마, 아빠가 들으면 속상할지 몰라도 난 어쨌든 집을 떠나 어른으로서 맞이하는 새로운 모험을 즐기고 싶었다. '난 어느 대학교를 가야 할까?'라는 고민 속에서 기계적인 공부를 계속해 가던 어느 날. 공군사관학교에 재학 중인 선배가 입학 홍보를 위해 나의 고등학교를 방문했다.
'사관학교?'
친구들과 나는 멋진 제복을 빼입고 빤짝이 구두를 신은 채 등장한 학교 선배의 모습을 호기심 가득한 눈망울로 바라봤다. 공군사관생도 2학년에 재학 중이던 그 선배는 학교가 제공하는 갖가지 혜택과 장점에(만) 중점을 두고 홍보를 시작했다.
"일단 학비가 무료예요 여러분. 그리고 매달 품위 유지비라는 걸 지급해주는데, 이걸 모아서 책도 사고 또 교통비 같은 생활비로도 사용하고요."
뭐라고?
학비가 무료라고?
부산 북구에 위치한 한 촌동네에서 아침부터 밤까지 닥치는 대로 공부만 해대는 '공부 머신'이었던 나는 사관학교의 존재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었다. 이 날 모교 선배의 학교 홍보 덕분에 몇 가지 정보를 주워 담을 수 있었고 학비가 무료라는 그 선배의 말이 하루 종일 귓바퀴를 맴돌면서 '내가 만약 사관학교에 간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뇌의 한 부분에 자리잡기 시작했다.
생각이 시작되면 몸이 움직인다. 관련된 입학 전형을 살펴보고 1차 필기시험을 봤다. 2차 체력검정과 신체검사까지 운 좋게 통과했다. 수능을 쳤고 결과를 기다렸다.
"귀하의 지원과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온라인 홈페이지에서 수험번호를 치자 대략 저런 문구가 나왔다. 그냥 "떨어졌습니다."라고 하지 감사하긴 뭘 감사해.
'어떡하지. 그럼 난 계속 부산에 살면서 부산대 다니는 거야?'
'비행기 타보고 싶었단 말이야. 재수는 하기 싫단 말이야.'
눈물이 핑 돌았다.
사관학교는 전체 선발 인원의 10%만을 여학생으로 뽑는다. 내가 지원한 해에는 172명 중에 16명이었다. 이 16명은 또다시 문과와 이과로 각각 8명씩 나뉜다. 이 8명은 시력이 기준 미달인 비조종 자원 2명과 시력이 좋은 조종 자원 6명으로 다시 한번 나뉜다. 그래서 문과이면서도 양쪽 시력 1.5를 자랑하던 나는 공사에 지원한 전국의 여자 문과 수험생 가운데 못해도 6등은 해야 했다.
'그래. 6명 안에 드는 것은 힘든 일이지'. (받아들여)
'그래도 싫어. 싷다고!!! 난 이 학교를 꼭 가야겠다고.' (현실 부정)
이렇게 2~3일 현실 부정과 망상에 시달리고 있던 찰나, 051로 시작하는 집 전화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받은 사람은 엄마였는데, 잠시 후 엄마는 침대에서 나뒹굴고 있던 나를 다급한 목소리로 불렀다.
"정은아, 네가 대기자 중에 있다 칸다. 대기자 3명한테만 전화를 주는데 네가 몇 등인지는 안 알려주고 기다려 보라 칸다!!!"
"진짜가...?"
"그래! 퍼뜩 일어나라. 단디하고.(그래. 어서 일어나. 마음 단단히 먹어.라는 뜻)"
그로부터 또다시 일주일이 흘렀다. 입교 날짜를 3일 앞둔 날이었다. 학교 측은 다시 051로 시작하는 집 전화로 전화해 여자 합격자 1명이 입학을 포기하면서 내가 자동으로 최종 명단에 들어가게 됐다고, 3일 뒤 청주에 위치한 학교로 오라고 전했다.
사람이 코가 깨지려면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더니 학교에 들어가려면 이렇게라도 들어가는구나.
여자 1명이 입학을 포기한 것은 또 무엇이며, 나는 왜 대기자 1번에 있었던가.
'이것은 운명이다. 내 운명은 청주에 있나 보다.'라는 생각이 강하게 스쳤다.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는 가보면 알게 될 것이다. 가보자.'
'3일만 기다려라. 내 운명아.
내가 문 닫고 대학 간다. 꼴찌면 뭐 어때. 가서 잘하면 되지!'
기초 군사 훈련 4주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다른 대학교보다 한 달가량 빨리 가입교를 시작하는 사관학교.
내 나이 열아홉에 아직 고등학교 졸업식도 못했지만 그래도 마냥 기분이 좋았다.
이렇게 나의 사관학교 생활은 조금은 특별하게 시작됐다.